황금종려상은 마일리지로?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 하는 쓸데없는 생각
상까지 받아 국위를 선양한 영화이므로 스포일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합의(를 빙자한 무언의 압력)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제 내내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문광의 남편(이름은 모름)까지 모습을 드러냈으니.
덕분에 가련하게도 그 '지하생활자'는 영화제 때 객석에 숨어 있어야 했다고. 웃프지 아니한가.
기생생물이 숙주를 죽게 하지는 않는다. 기생생물은 숙주와 특수한 관계를 유지하며 일정한 종류의 숙주에만 기생한다. 기생관계로 숙주가 죽는 경우는 특별히 포식기생이라고 한다. 암컷이 숙주 몸에 알을 낳으면 알에서 나온 애벌레는 숙주를 먹이로 하여 성장한다. 몇몇 개미가 다른 종의 개미들을 노예로 만들어 부리며 살아가는 것처럼 한 종이 다른 종을 이용하는 경우는 사회기생이라고 한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기생충에 대한 비유는 너무 뻔해서, 식상할 정도다. 그리고 '기생충 같은' 존재일 뿐 실제로 기생충도 아니다. 영화에서 사람 아래 사람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었으나, 결국은 다 사람이고 같은 종(種)이다. 기생충과 숙주는 원래 종이 다르다. 그래야 기생충이다.
지하의 반전(?) 역시 극적 재미를 위한 장치로는 훌륭했을지 몰라도 (그래서 그토록 스포일러를 경계한 것일까?) 문광의 '남편'의 설정은, 드러났을 때 잠시 관객을 경악하게 했을 뿐 사실 그리 놀랍지도 않다. 대단한 은유도 아니다. 지상과 지하의 대비, 뭐 어쩌고 하는 평이 나왔을 것으로 짐작한다.
"잘 지은 집들은 모두 지하실과 다락방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집의 맨끝에 있는 이 장소들은 둘 다 모두 어둡지만 어둠의 성격은 매우 다르다"로 시작하는 미셀 투르니에의 지하실과 다락방에 대한 고찰까지는 기대도 안 한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이 영화는 왜 상을 받았을까다. 상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다들 그 상이 그토록 대단하다고 하니 문득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왜 이 영화가 상을 받았을까.
심사위원들은 양극화나 계층 갈등 같은 사회적 이슈를 배제하고 영화를 보았을 것이고 그리고 상을 주었을 것이다. 반지하는 우리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는, 더구나 고통이기도 한 공간이지만, 혹시 그들에게는 그 공간이 주는 문화적 '충격'이 너무 커서 이를 작가(감독)의 대단한 상상력의 소산이라 착각한 것은 아닐까. 수직, 전락, 이동.
하지만 대단한 비유나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진부하다. 타이틀과 마찬가지로, 나같은 초짜도 눈치챌 만큼이다.
순전히 예술적 시각에서 그들이 상을 주었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스릴러도 아니고 블랙코미디도 아닌 이 어정쩡한 영화라니.
그동안 봉준호 감독의 영화제 마일리지가 쌓여, 더 가혹하게는 그간 한국 영화가 쌓아놓은 마일리지가 특정 감독에게로의 마일리지 전환이 일어나 혹시 수상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 나는 이런 내 깜냥의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선과 악이 아니었으므로 무엇이 죄악인지를 들여다보게 된다.
<오션스일레븐>을 생각나게 하는 일가족 사기단의 활약(디테일과 카메라 움직임이 빛을 발한다)에 쾌재를 부르고 공감하지만, 연민으로까지 갈 수 없었던 것은 거기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저 그 부잣집에 태어났을 뿐이다. 나름대로 태어난 자리에서 사랑 받으며 살고 있었던 아이들은 죄가 없다. 박 사장과 와이프에게도 죄를 물을 수 없다. 귀신을 보았다는 아이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해서, 그걸 천재성으로 믿고 싶어 했다고 해서, 어설픈 상식따위로 회화에 대해 아는 척 했다고 해서 그들이 악인은 아니다. 미술 치료와 과외도 잘못이 없다. 사람이 죽어가는 데 차가 더 중했다고 해서, 아무런 책임감도 없이 눈앞에 벌어진 지옥을 벗어나는 데만 급급했다고 해서 죽음으로 갚아야 할 만큼 잘못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어쩔 수 없이 박찬욱 감독을 떠올리게 된다.
봉테일(감독의 별칭)이라 부르며, 디테일 디테일 하는데, 여기서 무슨 디테일? 다혜가 피투성이가 된 기정을 부축해 나오기까지 지하의 발견에서의 디테일은 무시해도 되나? 지하의 문광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문광의 남편이 손발이 자유롭게 되는 데까지 과정의 디테일은 또? 늘 같은 모습으로 보여지는 송강호보다는 내겐 그 부인의 연기가 더 돋보였다. (배우의 이름은 장혜진이라고 한다.)
영화는 물론 재미있었다. 그 재미라는 것은 멀티플렉스 상영관 102호 말고 옆 103호에서 하는 <알라딘>이 훨씬 더 재미있다고 말할 때의 재미, 딱 거기까지다.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살인의 추억> 이후 나는 봉 감독에게 내내 실망하고 있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