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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Aug 06. 2022

헤어지겠다고 결심하게 하는  <헤어질 결심>

ㅡ박찬욱과 헤어질 결심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이제 박찬욱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박 감독은 설마, 알고 있을 테지.

<기생충>의 봉 감독을 두고 브런치에 “칸은 상을 마일리지로 주는가?”는 글을 올린 적도 있는데 같은 맥락에서 지인이 말한 소위 ‘개근상’의 의심을 거두지 못하겠다.  

그 지인은 탕웨이도 늙었더라고 씁쓸해 했지만 사실 이 영화는 탕웨이가 다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탕웨이 없는 <헤어질 결심>을 상상할 수 있을까. 박해일은 너무 늙어서 가슴이 아플 정도였다. 한석규가 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그대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정훈희와 송창식의 목소리가 안개처럼 오버랩 됐다.

노래 좋구나. 함춘호의 기타인가.

 새삼 정훈희씨는 참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구나 싶었다.

배경으로 말러의 교향곡을 선택한 것은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좋아했다는 히틀러를 염두에 둔 것일까.  장엄함 속에 숨긴 잔인함 같은. 아니 잔인함을 짐짓 장엄함으로 포장한.

<무진기행>의 하인숙을 연상하게 하는 이포와 안개와 바다.


타이틀은 너무 식상하고, 지나치게 한국적이지 않나.  장삼이사의 빈약한 상상력을 배반할 만한 대단한 치정도 불륜도, 심지어 로맨스도 영화에는 없었다.

(칸 사람들에게는 얻어맞고 사는 ‘여자’의 이야기가 참신한 소재였을 수도 있다.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하게 보고, 현실에서는 더 흔하게 보며, 뉴스를 통해 현실보다 더 끔찍한 사건사고로 접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장치를 미안하지만 너무 상투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반전을 거듭하는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버무린 전개도 전혀 새롭지 않다.

여기에 더해지는 몇몇 아이템,

가령 품격 있는 형사, 꼿꼿한 자세, 거의 문어(文語)화 되어버린 우리말이 발화됨으로써 받는 신선함, "바다에 던져버려요 아무도 찾을 수 없게" 라고 말하고 사랑한다로 읽는 시적 장치.

이런 것들로 영화를 좁혀가다가 나는 흔한 스릴러와 알 파치노의 <인섬니아>와 박찬욱 표 금자씨가 나오는 영화라고 냉정하게 결론내렸다.


사족. 아침  9시 30분에 1회가 상영된다는 것을 알았고, 게으르게 널부러져 있던 몸을 부리나케 일으켜 집을 나선 시간이 9시 2분이었으니 2.6킬로를 27분에 주파한 셈.  31분에 티켓팅, 바로 입장.  

아. 재미는 있었다. 러닝타임 2시간 반이 지루하지 않았다. 세 시간 투자와 11,000원을 지불한 대가로는 굿이다.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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