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퇴근의 쓸모
괜찮지 않아서 괜찮아마을에 왔다. 병든 마음으로 왔다. 그때는 늦여름이었는데, 오래된 동네 어디를 걸어도 끝없이 불어오던 선선한 바람, 같은 숙소에서 살았던 리오와 한나의 시도 때도 없는 따뜻한 포옹과 원도심 가게 사장님들이 툭툭 던져주시는 정 때문에 얼어붙은 마음이 죄다 녹아버렸다. 그래서 목포를 사랑하게 됐고 목포에 남았다.
마음이 활짝 열린 나는, 동네를 걷기만 해도 좋아서 웃음이 나는 날들을 보냈다. 하지만 직장에서 점점 더 많은 일을 맡게 되면서 내가 좋아했던 일상 속 작은 웃음들과 따뜻함은 힘이 약해졌고 ‘일’에만 너무 많은 무게를 두게 됐다. 내 건강보다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난생처음 위경련이 난 날에도 웃으며 야근을 했다.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푹 쉬어야지,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푹 쉬어야지를 반복하다가 몸과 정신에 다시 병이 들었다. 정신이 약해지니까 자꾸 힘든 것만 생각하게 됐고 어느 순간 퇴근하고 집에 혼자 있으면 불안한 지경이 됐다. 몇 년 전에 만났던 우울과 공황을 다시 만났다. 세상 모든 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어두운 생각을 많이 했다. 퇴근이 싫었다. 퇴근이 무슨 쓸모가 있나 싶었다.
마음이 새까맣게 타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매일 하던 작년 말, 내 십년지기 친구는 전화기에 대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본 것 중에 내 상태가 제일 안 좋다고, 제발 그 회사 그만두라고. 내가 느끼기에도 나의 상태는 무척 좋지 않아서 정말 떠나야겠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당장 갈 곳도 없었다. 지금이라도 ‘그런 식으로 사는 것’ 그만두고 공무원 준비하라는 부모님 댁에서 편하게 쉴 수 있을 리가 없었고, 당장 일을 그만두면 먹고살 돈도 없었다. 무엇보다 여기는 내가 너무나 어렵게 찾은 나의 터, 이곳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싶다는 욕심을 놓고 싶지 않았다.
화를 내던 친구는 '고민 끝에 떠나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나의 말에 슬픈 목소리로 답했다. 그럼 너가 좋아하는 거 작은 거라도 하나씩 해보라고. 그 말이 작은 힌트가 됐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일 생각이나 무서운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나에게 의미있는 일을 하면 집에 가는 게 무섭지 않겠다 싶었다. 이렇게 보면 정말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 당시에는 이 생각도 못 할 만큼 상태가 안 좋았다. 그리고 이 결심을 할 때쯤 정말 하늘이 도우사, 조상님이 도우사, 업무가 많이 줄었고, 야근이 거의 없어졌다. 7시에 정시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하며 집에 가서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일단 쉬운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래서 퇴근 후에 나를 위해 따뜻한 밥을 해 먹기 시작했다. 오직 나만 생각한 한 끼를 해 먹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가 찾은 퇴근의 쓸모 첫 번째.
- 다음 달에는 ‘2편. 나만 생각한 한 끼’로 돌아옵니다. 세상 사람들~! 다음 달에도 정시 퇴근 많이 합시다~!
* <여기 사람 있어요>가 더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