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베이스기타의 프렛을 누르지 못하고 있다. 왼손가락 마디마디에 동전파스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오른 검지의 물집만 조심한 것이 잘못이었다. 올해 안에 옛 감각을 되찾고 내년 초 직장인 밴드에 합류하겠다는 마음에 무리하게 연습했기 때문이다.
10킬로 마라톤을 뛰겠다고 홍제천길을 달린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빗길에 미끄러져 다친 왼쪽 무릎은 조깅은커녕 한 시간만 걸어도 쑤신다. 수영장을 그만둔 것은 더 오래전 일이다. 접영을 하다 멈춘 어깨는 이제 괜찮아졌을까.
하나씩 멈춰버린 것들을 세어보니 문득 깨닫는다. 무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는 것 자체가 몸에는 무리였다. 익숙하지 않은 움직임을 다시 깨우는 과정에서 몸은 내게 적응할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저 의욕이었을 뿐이다.
오랜만에 베이스를 잡는 손가락, 다시 달리기 시작한 무릎, 한동안 쉬었던 어깨—나는 단지 예전의 감각을 되찾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은 욕심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과도하게 원한 것도, 무리하게 얻으려 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잊고 있던 즐거움을 다시 느끼고 싶었고, 익숙했던 리듬 속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몸은 달랐다.
몸은 이 의욕을 과욕으로 받아들였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변한 근육과 관절은 마음이 기억하는 속도를 따라올 수 없었다. 마음은 "할 수 있어"라고 말했지만, 몸은 "아직이야"라고 답했다.
의욕과 욕심의 차이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의욕은 하고 싶다는 마음이고, 욕심은 당장 해내야 한다는 조급함이다. 나는 의욕만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조급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올해 안으로", "내년 초에는"—이런 시간의 제약이 나도 모르게 압박이 되어버렸다.
아픈 손가락과 무릎, 쑤시는 어깨가 가르쳐준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다시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의욕을 잃지 말되, 욕심은 내려놓으라고.
몸의 시간과 마음의 시간은 다르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지금 내가 배워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롭지 않은 것, 오래전부터 해온 것들은 무리 없이 해내고 있다.
이 익숙한 습관들은 몸도 마음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아무런 저항 없이 반복된다. 어쩌면 이 익숙한 것들이 더 문제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몸은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오래된 습관은 신호조차 보내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듯 계속될 뿐이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술을 마시는 것, 전자담배를 곁들이는 것, 온라인에 익명의 낙서를 남기는 것, 몰래 한숨을 내쉬는 것, 그리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