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번도 솔직하지 못했다. 동생은 교회 안에서 모든 것을 맡기고 결국 목회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에게 신앙은 안식처였고, 교회는 집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부러워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랐는데 왜 나만 이토록 숨이 막히는지.
목사의 아들이라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주일마다 교회 맨 앞자리에 앉아야 했고, 찬송가를 부를 때마다 입 모양이라도 맞춰야 했다. 내 마음은 신앙에 다가서지 못했고, 여전히 그렇다. 기도 시간에 눈을 감으면 신이 아니라 어둠만 보였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혼자였고, 그것이 두려웠다.
스무 살, 집을 떠나서야 큰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대학이라는 핑계로 서울로 올라왔다. 처음으로 일요일 아침에 늦잠을 잤을 때의 그 해방감. 하지만 자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었고, 모태신앙자의 모습을 보여야 할 때도 많았다. 대학 친구들 사이에서도, 직장 동료들 앞에서도 나는 여전히 '그런 집안 출신'이었다.
이 솔직하지 못함이 내 행동이 되었고, 성격의 바탕이 된 것이 아닐까. 나는 사람들 앞에서 다른 얼굴을 쓰는 법을 배웠다. 상황에 맞는 표정, 기대에 부응하는 말투, 적당한 거리감. 그것들이 자연스러워질수록 진짜 내 모습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누군지 모를 때, 그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가 말하는 '옳은 것'이 세상의 전부였고, 교회 어른들의 칭찬이 나의 가치를 증명했다. 그때 타인의 시선이 곧 나였고, 그들의 기대가 내가 되어야 할 모습이었다.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처음으로 '나는 믿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을 때, 그 생각은 죄악처럼 느껴졌다. 나는 급히 그것을 마음 깊은 곳에 묻었다. 하지만 한 번 싹튼 의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조용히, 천천히 자라났고, 결국 나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이 거짓은 트라우마가 되었다. 누구에게도, 세상에게도 솔직할 수 없게 됐다. 사람들은 나를 진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몇 겹으로 쌓인 위선의 가면 덕분이다. 두터운 가면은 나를 숨 막히게 하고 옥죈다. 벗어버리고 싶지만 두렵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되는 곳을 찾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타인을 바꿀 수도, 과거를 지울 수도 없다면 내가 있을 곳을 선택하는 것이 유일한 답이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집은 내가 도망치는 곳일까, 도망쳐 나오는 곳일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는 곳이 있다면, 그게 집이려나. 내 진짜 모습으로 살 수 있으니까.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 그곳이 물리적인 공간인지, 특정한 사람들과의 관계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것을 찾고 싶다.
가끔 상상한다.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 와서 일하듯, 낯선 나라의 한 곳에 섞여 일하는 모습을.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내 이름도, 내 집안도, 내 과거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낯선 곳에서 오히려 나다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역설적이게도, 완전히 이방인이 되어야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퇴근 후에는 바다를 찾는다. 맥주가 싼 곳. 비를 맞아도 감기에 걸리지 않을 날씨가 있는 나라. 해변의 작은 의자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듣는다. 아무도 내게 질문하지 않는다. 아무도 내게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거기 있을 뿐이다.
다른 나라의 지도를 꾸준히 살핀다. 지금의 작은 여유로 당분간 정착할 수 있는 곳—동남아, 그리고 주변의 작은 섬들. 단순한 여행의 꿈이 아니다. 진짜 나로 숨 쉴 수 있는 곳, 가면이 필요 없는 그 어딘가를 찾는 여정이다.
그곳이 지구 반대편이든, 아니면 내 안 어딘가이든. 어쩌면 그 장소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진짜 '가면 없는 곳'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오늘도 구글 지도를 펼친다. 낯선 지명들을 눈으로 따라간다. 그리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