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사랑하는 불치병

by 심온

세상에는 참 많은 희귀 질환이 있다— 인간의 삶만큼이나 다양하고 복잡한.


제약회사에서 일하며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1만 명 중 한 명, 혹은 10만 명 중 한 명에게서 발견되는 질환들. 피가 멈추지 않는 아이, 열다섯 살이 되기 전에 청력을 잃어버리는 아이, 바늘에 찔린 듯 아픈 손발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


7천여 종의 희귀 질환이 알려져 있지만, 아직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더 많다. 대부분은 유전자의 속삭임으로 시작되지만,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삶의 한 순간에 찾아오기도 한다.


상상하지 못할 만큼 독특한 정신과적 희귀 장애도 있다. 예를 들어, 눈앞의 사람이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세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복잡하다.


과학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어제의 불치병이 오늘의 치료 가능한 질환이 되고, 오늘의 난치병이 내일은 완치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나는 이 모든 희귀 질환을 가진 이들이 언젠가는 완전한 치유를 경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의학의 진보가 그들에게 새로운 봄날을 선물해 주길, 그리고 그들의 고통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움은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기를.




비가 온다.


누군가는 흙으로 돌아간 목련꽃잎을 보며 한숨짓고, 누군가는 망가진 주말 일정에 욕을 내뱉는다. 나는 창가에 머물러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가만히 소리를 듣는다.


한 번도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지 않듯이, 매번 새로운 감정으로 다가오는 비. 누군가는 나를 '비 중독증'이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그래, 나는 평생 이 희귀 질환을 품고 살아왔다.


어린 날의 비는 축제였고, 이제는 나를 숨겨주는 따뜻한 장막이 되었다.


일곱 살, 낚싯대를 든 내 손을 아버지가 잡아주시던 날. 연못가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다 보면 어김없이 내리던 비. 처음엔 이슬비로 시작해 가랑비로 이어졌다. "심온아, 어서 들어오너라!" 아버지의 목소리가 세 번쯤 들려야 비로소 일어섰다.


그때는 몰랐다. 연못 위로 퍼져나가는 동심원의 파장이, 스르르 내리는 빗줄기가, 우산 위를 장난치듯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내 인생의 배경음악이 될 줄은.


한여름 저 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올 때마다 내 심장은 조용히 두근거린다. 마치 곧 펼쳐질 자연의 공연을 기다리는 것처럼. 구름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머리 위를 점령하다가, 문득 쏟아내는 소나기로 세상을 적신다. 하늘이 장난을 치듯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그 소나기가 내겐 오늘도 새롭다.


비포장 도로의 등굣길, 비 오는 날이면 동생과 나는 작은 의식을 치른다. 멀리서 버스가 다가올 때면 길가에 웅크려 선다. 웅덩이 옆에서 우산을 펼치고 기다리는 우리를 본 버스 기사님은 묵시적 계약을 이행하듯 큰 웅덩이를 향해 방향을 틀어주신다. 투두두둑—. 어쩌면 그분도 우리만큼이나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오는 무지개는 언제나 다른 얼굴을 한다. 때로는 진하게, 때로는 희미하게. 가끔은 두 개의 무지개가 겹쳐 뜨면 우리는 그것을 '쌍무지개'라 불렀다.


발걸음마다 흥건해지는 양말도, 주차장에서 한참 떨어진 목적지도, 심지어 우산을 두고 온 실수조차도 비 오는 날의 특권이다. 어른이 되어 비를 맞으며 걷는 건 미친 짓처럼 보여서 뛰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게 아쉽다. 그래도 좋다—모든 시선이 빗속에 섞여 스러져버릴 테니까.


밤에도 스피커에선 빗소리가 흐른다. 내 기분에 따라 골라 듣는 빗소리의 종류도 제법 많아졌다. 천둥이 울리는 날, 바람 부는 밤, 잔잔히 내리는 오후, 쏟아지는 새벽, 바다를 때리는 폭우까지. 음악 앱의 한 폴더가 이런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우울은 내 안의 오래된 거주자다. 오랜 세월 나는 그걸 숨겨왔다—나 스스로에게조차. 병원에서 받은 작은 알약들과 잠시 동거도 해봤지만, 그들이 나를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제는 그저 서로를 인정하는 사이가 되었다. 서른세 살부터 귓가에 울리기 시작한 이명처럼—불편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비는 처방된 마지막 약이다. 의사도 약사도 아닌, 하늘이 무심히 던져주는. 낮게 깔린 구름과 희뿌연 공기는 내가 찾던 완벽한 알리바이가 되어준다. 창가에 부딪히는 빗방울들은 각자의 속도로 흘러내리며 제멋대로의 이야기를 쓴다.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나른하게 - 마치 누군가 내 기분을 읽고 작곡한 듯한 멜로디로.


아이러니하게도 이 회색빛 날씨는 내 심장이 아직 뛰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빗소리는 지친 마음의 먼지를 씻어내고, 차가운 빗방울은 오히려 따뜻한 위로가 되어 속삭인다.


누군가는 이런 비에 대한 집착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뭐,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피난처가 있지 않은가. 누군가는 산의 고요함에, 또 다른 이는 호수의 잔잔함에, 혹은 바다의 광대함 속에서 자신만의 안식을 찾아가는 법이다.


나는 이 비를 사랑하는 증후군과 함께 살아간다. 치료가 필요하다면, 나는 평생 치유될 수 없는 환자로 남고 싶다.


비와 우울은 묘하게도 닮아 있다. 둘 다 불청객처럼 찾아와 잠시 머물다 떠나가지만, 우울은 무지개를 남기지 않는다—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비를 기다린다. 내 마음 한편에 작은 무지개를 그려줄 그 비를.


하늘은 오늘 내 증상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어스름한 구름은 내 기분을 담아내지만, 빗방울이 조금 더 필요한 순간이다.


점점 짙어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소 짓는다. 곧 나의 처방전이 하늘에서 내려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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