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자연이 선물하는 달콤한 위로

by 심온

들꽃은 내게 시를 선물한다. 바람 한 자락이 지날 때마다 꽃잎들이 서로의 어깨를 두드린다.


숲길에서 마주치는 이 순간들은 누구도 복제할 수 없는 그림이다. 자연은 늘 새로운 경이로움으로 내게 말을 건넨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과일의 맛이 좋다. 반듯하게 정렬된 마트의 진열대보다, 자연이 빚어낸 들판의 굽이굽이가 내 발걸음을 붙잡는다.


일곱 살, 큰집으로 가는 그 한 시간의 길. 과수원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바람맞은 자국, 벌레의 발걸음이 남긴 흔적. 큰엄마는 그중에서도 햇살을 가장 많이 받은 사과를 골라주셨다.


내 두 손에 담긴 그 사과는 어린 내게 작은 세상이었다. 돌아갈 때면 검은 봉지에 담아주신 사과를, 집으로 가는 길에 하나씩 꺼내 물었다.


여덟 살의 여름, 나는 작은 모험가가 되었다. 산과 들을 누비며 자연이 숨겨둔 보물들을 찾아다녔다. 산딸기, 보리수, 개복숭아, 머루, 다래...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열매를 발견하는 순간의 설렘은 지금도 생생하다. 달콤한 것도, 쓴 것도 있었다. 낯선 열매를 들고 왔을 때 어머니의 한숨 소리는 내게 자연의 경계를 가르쳐주었다.


어느 날 발견한 특별한 순간이 있다. 큰집 담장 너머로 늘어진 뽕나무, 그 가지마다 영롱하게 매달린 오디들. 까맣게 익은 것보다 빨강과 검정 사이를 오가는 오디가 가장 달콤했다. 덜 익은 오디는 새콤한 맛으로 혀끝을 간지럽혔다.


손바닥에 한 움큼 담아 입 안 가득 넣으면 그것이 곧 여름이었다. 손바닥과 입술, 옷자락에 물든 보랏빛 자국은 그날의 증거였다. 그 자국이 마음에도 남아있다.


지금도 홍제천을 걸으며 냇가에 늘어선 뽕나무와 마주친다.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의 비밀처럼 한두 개를 따먹는다. 달콤함은 희미해졌지만, 그 맛에 담긴 기억은 선명하다. 까맣게 물들어가는 손끝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저녁이면 홍제천을 찾는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눈이 마주친 강아지들과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나누다가, 문득 부드러운 털을 어루만지고 싶은 충동을 삼킨다.


각자의 리듬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를 걷는다. 깡충거리며 엄마 손을 벗어나려는 아이, 강아지와 산책하는 젊은이, 두 손을 꼭 맞잡은 연인들,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천천히 걷는 노부부까지. 저마다의 이야기가 흘러간다.


물살을 가르는 오리들, 수면 위로 잠깐 모습을 드러내는 잉어, 바람 따라 흔들리는 갈대까지. 도시의 밤은 이렇게 작은 쉼표를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