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흉내

by 심온

아버지의 마흔아홉은 어른이었을까?


세 살 때 목마를 태워주던, 다섯 살 때 낚싯대를 잡아주던, 일곱 살 때 자전거를 태워주던 때에도, 그리고 몇 년 전까지도 아버지는 분명 어른이었는데, 나는 왜 여전히 다섯 살 연못 앞에 앉아 있는 소년 같기만 할까?


생각해 보면 아버지도 어른 흉내를 내며 살아오신 게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어른처럼 보였을까?


마흔아홉의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처럼 보였다. 그런데 내가 외형상 어른이 되어보니, 나의 마음은 여전히 다섯 살 때의 그 소년 같은 철부지다.


마음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 같다. 회의 중에 다리를 흔들거나 긴장할 때마다 머리를 긁적이는 습관이 그렇다.


친구들이 "너 아직도 대학생 같아"라고 말할 때마다 웃어넘기지만, 사실 그 말이 맞다.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입어도 어색함이 느껴진다. 어떤 날은 거울을 보며 깜짝 놀란다. '이 중년의 얼굴은 누구지?' 내 마음속 이미지는 여전히 스물의 청년인데.


물론 어른이던 아버지의 모습도 노인이 되면서 변화하고 있다.


아버지의 마음과 표정이 소년을 향해 돌아가고 있다. 한때 굳건했던 그의 어깨가 이제는 구부러지고, 확신에 찬 목소리가 때로는 떨린다. 나는 아버지의 눈빛에서 연약함을 본다.


지난 설날, 아버지가 짐을 챙기는 내게 다가와 난데없이 안아주었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아버지를 안아본, 안겨본 기억이 몇 년, 아니 몇십 년 만이었을까? 그 순간 우리는 두 명의 어른이 아니라, 서로를 필요로 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의 품에서 어린 시절 느꼈던 안전함과 함께, 이제는 내가 그를 지켜야 한다는 새로운 책임감을 느꼈다. 아버지는 나를 얼마나 안고 싶었던 걸까? 이 생각을 하면 미안함과 후회가 밀려온다. 표현에 서투른 나는 돌아서며 "건강하세요"라는 한 마디가 전부였다.


단 둘이 낚싯대를 드리우며 앉아 있던 그 수십 번의 시간들이 아버지께 얼마나 그리울까?


소년으로 돌아가려는 아버지 대신, 이제 내가 어른 흉내를 내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 같아 종종 시도해 본다.


아이들에게 낮은 톤의 목소리로 어른스러운 조언을 건네본다. 그러나, 조언에는 어른스러운 확신이 없다. 나는 정말 어른이지도, 어른 흉내는 내지도 못하고 있는 것만 같다.


아마도 아버지도 나와 같았을 것이다. 겉으로는 당당하고 확신에 찬 모습이었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어른인 척하는 삶은 때로 너무 무겁다.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 실수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 언제나 옳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감. 이 모든 것이 어깨를 짓눌러 왔다.


직장에서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의견을 내지만, 집에 돌아와 혼자 남으면 그날의 결정들이 옳았는지 끝없이 고민한다. 아이들에게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면서도, 내가 정말 세상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서야 요즘은 완벽한 어른이 되려는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대신, 실수를 하며 배우는 과정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예전만큼 두렵지 않다. 아이들에게 "아빠도 답을 모르겠어"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함께 알아가는 기쁨을 나눈다.


물론 여전히 불안하다. 내가 보여주는 불완전함이 아이들에게 실망을 줄까 두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점차 깨닫고 있는 것은 완벽하지 않은 내 모습을 통해 아이들이 더 중요한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는 법, 틀려도 괜찮다는 용기, 그리고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자세를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서도 책임을 다하는 것임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어쩌면 아버지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어른처럼 보였던 것은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인정하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셨기 때문일터다.


나는 구속이 싫고 책임이 두려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말해서도 안 될—어떤 다른 삶을 꿈꿔본 적이 있다. 그 생각은 여전히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 생각을 그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어른 흉내를 내는 것이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나는 이제 내 안의 다섯 살 소년에게 말을 건넨다. "괜찮아, 우리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어. 아버지도, 나도, 그리고 언젠가 어른이 될 내 아이들도."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른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용기 없이 살아온 수십 년이 쉽게 바뀔 리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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