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없는 첫번째 너의 생일에. 너를 사랑하게 된 순간을 기억하며.
7월 16일. 돌이야! 오늘은 네 생일이야. 14번째 생일이고 그리고....
네가 이 세상에 없는 첫번째 생일.
누나는 오늘도 울고 울고 또 울었어. 이 글을 쓰면서 또 울고 있구나....
너를 잃고 이제 거의 100일이 다 되어 가는데도.. 누나는 아직도 너를 못보내겠어.
네가 떠나고 누나는 참 많이 힘들단다. 너는 너무 깔끔하게 모든 걸 정리하듯. 그렇게 떠나가버렸지만.
누나는 그렇게 깔끔하게 너를 놓지 못하겠단다.
그래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 너를 오래오래 붙잡아 두고 기억하고 그럴 수 있는 방법을.
누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한번도 이런 사적인 글을 써본 적은 없는 것 같아.
의식적으로 사적인 글을 쓰는 걸 피해왔던 것도 같아.
하지만 너를 기억하기 위해 누나는 이제 너에 대해 사심가득한 글을 써보려고 해.
이 연재를 시작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첫 글은 너의 생일에 시작할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정확한 생일을 잘 모르는 강아지도 많다던데 너는 7월 16일이라는 진짜 생일날이 있는 강아지였어.
어쩌면 생일을 제대로 안다는 건 축복일 수도 있겠다.
2010년 7월 16일에 5마리 강아지중 너는 유일한 남자아이이고 막내로 태어났대. 너는 수원시 권선구에서 플루트 학원을 하는 선생님 댁에서 태어났어. 누나가 너를 만난건 그해 10월 말이었으니. 그 전까지 너는 플루트 선생님인 사람 엄마와 진짜 개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함께 태어난 4마리의 다른 강아지들과 함께 무럭무럭 자랐을거야. 누나가 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시기는 안타깝게도 네가 태어나 석달이 될 때까지 였네. 그때 네 이름은 도레미파솔 중에 제일 막내라서 솔이었대. 처음 너를 만나러 간 날, 네 이름을 듣고 역시 플루트 선생님 다운 작명 센스라고 생각했어.
누나는 너와 살면서 가끔 생각했어. 너와의 만남은 정말 전생의 귀중한 인연이 쌓이고 쌓인게 아닐까. 너무나도 과분했던 네가 나에게 와준 건 누나가 전생에 그래도 조금은 착했던 적이 있어서 하늘이 우리 만남을 허락해준게 아닐까... 그만큼 너는 누나한텐 귀하고 귀하고 과분하고 과분한 아이였다.
그래서 항상 너를 낳아준 개 엄마와 너를 돌봐 준 플루트선생님. 그리고 너를 만나게 해준 누나의 지인 제이미씨께 감사했어. 그리고 늘 너의 개엄마와 너의 자매들이 건강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었지.
너를 가만히 쓰다듬고 있을때면 참 불가사의한 인연이 우리를 묶어 주었구나 생각하곤 했어,
너는 어쩌면 누나와 전혀 만날 인연이 없는 아이였을지도 모르는데.... 참 신비롭고 재미있게도 너는 누나에게 왔다.
너를 만나기 전 누나는 엄청나게 강아지를 무서워했어. 말하자만 강아지포비아였어. 큰 강아지든 작은 강아지든 너무너무 무서워했어. 100M나 밖에서 강아지를 봐도 길을 돌아가거나 어쩌다 가까이 보게되면 몸이 뻣뻣이 굳을 정도였어. 언젠간 길에서 우연히 만난 조그만 요크셔테리어가 무서워 도망치다가 내리막에서 구른 적도 있을 정도였지.
그해 봄, 누나의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으신 시어머니께서 혼자 시작하신 양평생활의 적적함을 이기시려고 강아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내가 기를 건 아니니 데려오는 건 무방하지만 이젠 시댁에 못가겠구나 생각할 정도였어.
너를 만나기 전, 우리는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충무로에 있던 강아지를 파는 상점을 방문한 적이 있어. 두려움을 참고 가게에 들어가서 조그만 케이지 속에 수많은 강아지를 보았을 때 누나는 두려움 저 이면에 생명을 이렇게 사고파는게 정당한가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 무력감, 그리고 이상한 공포 같은 걸 느꼈고 이윽고 두통과 구토감 같은게 몰려 왔어. 그렇게 강아지를 파는 곳에 가본게 처음이라서 그랬나봐... 시어머니는 아주 작디작은 닥스훈트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그 아이를 평가하셨어. 태어난지 얼마 안 된 그 아이는 자기가 주인을 찾아야 하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는지 한껏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렸어. 정말 애절할 정도로...그때 그 아이를 데려왔다면 돌이야.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시어머니는 닥스훈트를 한참 바라보시더니 내려놓으셨어. 그러자 그 작은 아이가 보인 반응은 정말 의외였지만 너무 처절하고 마음 아팠어. 아이는 자신이 선택되지 않을 것을 알자 재빠르게 우리를 외면했어. 눈에 뜨일 정도로. 어쩌면 그 작은 아이가 태어나 그 짧은 기간동안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낯선 사람들에게 애교를 부렸을까 생각해보니 눈물겨웠어. 강아지포비아였고 내가 기를 것이 아니었던 누나는 아무 발언권이 없었지만... 그 애를 데려오지 않은 것에 대한 죄의식은 지금까지도 내내 가슴에 남아 있어. 그 후로도 가끔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곤 했는데 그건 아마 너를 만나 누나가 더이상 강아지를 두려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강아지를 이뻐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그 아이의 안위가 더 걱정되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해. 그렇게 처음 강아지를 판매하는 곳에서 난생 처음 겪은 기묘한 죄의식과 무력감을 경험하고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 했어.
그러던 어느날 가을 쯤이었는데. 누나의 지인인 제이미씨가 문득 문자와 네 사진을 보내왔어. 이제부터 너를 만나게 된 경위를 설명하자면 좀 복잡하지만... 차근차근 설명해보자면,
제이미씨가 다니는 직장의 게시판에 누군가 강아지를 분양한다는 게시글을 올렸대. 그런데 그 게시글을 올린 사람이 분양하는 당사자는 아니고 그분이 다니는 플루트학원의 선생님이 기르는 강아지가 5마리의 아기를 낳아서 분양한다는 글이었대. 제이미씨는 그때 '초코'라는 강아지를 기르고 있던 반려인이었고 종종 누나에게 강아지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피력하곤 했었어. 아마 그런 대화속에서 누나는 강아지가 무섭지만 시어머니가 강아지를 기르고 싶어한단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 아마 충무로에서 만난 닥스훈트에 대한 안타까운 소감같은 것도 말했을 지도 몰라. 그 이야기들을 잊지 않고 있던 제이미씨가 게시판에서 본 강아지 사진을 누나에게 보내온 것이었어. 제이미씨는 그 게시글을 올린 분을 잘 아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먼 직장 동료정도였던 것 같아.
그 사진 속에 너는 자매들과 함께 있었어. 그 중에서 너는 남자애답게 표정이 좀 묵묵했달까. 당시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할 때였는데 새기계에 큰 관심없던 누나는 그때까지도 아주 작은 폴더폰을 가지고 있었고 그 작은 폴더 화면 속에서도 너는 귀엽고 이뻤어. 강아지를 무서워했지만 어쩐지 니가 눈에 밞혔어. 그냥 '이제 어머님이 강아지 이야기 안하시네요' 하고 넘겼으면 너를 못만났겠지. 그런데 그때도 여전히 강아지포비아였던 누나는 어쩐 일인지 너를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시어머니께 '그냥 한번 보러 가실래요?' 했지. 그런데 너를 보러 가는 길은 그냥 가볍게 한번 보러 갈 수 있는 길은 아니었던 것 같아.
누나와 형은 목동에 살았고 시어머니는 양수리에 살았어. 열성으로 소개를 담당해 준 제이미씨는 노량진에 살았어. 그리고 너는 수원시 권선구에 살았어.
그날은 10월말의 토요일이었다. 늦가을 같은 날씨였고 커피가 맛있어지는 약간 쓸쓸한 감이 도는 기온이었어. 누나와 형은 일단 전에 시어머니께서 사셨던 용산구에서 시어머니를 만났어. 어머니는 타고오신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우리차에 타셨고 우린 그 길로 노량진에 사는 제이미씨를 픽업했어. 그리고 토요일 오후 수원까지 가는 길은 막혀도 그렇게 막힐수가 없다 싶었단다. 수원시 권선구는 우리 모두 초행이었고. 그러고 보니 그 후로 가본적이 없구나.... 네가 살아있을 때 한번 가볼 걸 그랬나... 이 글을 쓰면서 문득 그런 후회가 드네...
운전을 했던 형부터 누나, 시어머니, 제이미씨까지 모두 차멀미에 시달릴 정도로 차는 가다서다를 반복했고 아마도 잘은 모르지만 차가 안막히면 갈 수 있는 시간의 서너배가 걸려서 네가 사는 곳에 도착했던것 같아.
오후에 밝을 때 출발한 우리는 너무 너무 깜깜할 때 도착했거든.
너를 처음 만난 장소는 플루트학원이었어. 그곳엔 너의 개 엄마와 너와 함께 태어난 자매강아지 한마리, 나이가 있는 요크셔테리어 강아지가 있었고 그리고 네가 있었다. 네 자매강아지와 요크 강아지는 애교가 있었어. 우리를 반겨주고 가까이 다가와주었지. 그런데 너는 방석안에서 좀 뚱하게 있었던 것 같아. 남아있던 너와 자매 강아지 외에 함께 태어난 나머지 3마리는 이미 분양이 되어 떠났다고 들었어. 아마 너도 떠나야한다는 걸 알아서 뚱했던거 같아. 너는 똑똑하고 사리판단을 잘 하는 아이였으니까.
누나는 네가 첫눈에 맘에 들었다. 사랑받고 자라 동글동글한 몸에 뚱한 표정이 좋았던 것 같아. 여전히 강아지포비아였던 누나는 너를 만지지도 못했지만....
시어머니께서 너를 안으시더니, 단번에 데려가겠다고 하셨어. 닥스훈트를 평가할 때와는 달랐어. 먼길을 와서 아무 성과없이 가기 뭣하셨던 걸까도 싶지만... 그보다는 시어머니도 무언가 네게서 가족이 될 인연을 느끼신게 아닐까 싶어. 누나는 강아지포비아인 주제에 너를 데려오겠다는 시어머니의 말씀이 너무 기뻤어. 이상하게 기뻤어. 너를 무서워하지만 네가 우리와 함께 간다는 게 좋았어. 참 이상하지...
네가 시어머니 품에 안겨 학원을 나올 때, 헤어지는 충격을 줄이려고 다른 방음 음악실에 있게 했던 네 어미가 짖는 소리가 들렸어. 방음방을 뚫고 들려올 정도로 그 소리는 컸고 절절했어. 그건 자식을 보내는 모정의 절절한 울음소리, 그리고 너를 잘부탁한다는 부탁의 짖음이었던 것 같아. 누나는 또 한번 마음이 이상했어. 하지만 충무로에서 느꼈던 그런 이상한 감정은 아니었어. 꼭 건강하게 귀하게 키우도록 돕겠다는 다짐이었어. 그때는 겨우 돕는다는 정도의 마음이었어. 그때까지도 누나는 강아지포비아였으니까...
시어머니는 너를 안고 차에 올라 새이름을 지으셨지. '이제부터 너는 돌이다!' 라고 하셨어.
돌이!
너를 만나기전 너를 키울 생각도 아니었던 주제에 누나는 혼자 네 이름을 지어보곤 했어. 왜 그랬는지 몰라. 이런 저런 이쁜 이름이 많았는데.
근데 시어머니가 너를 '돌이'라고 명명한 순간.
너는 정말 돌이 외에 그 어떤 다른 이름일 수 잆다고 생각했어,
너는 정말 돌이! 였거든.
너는 시어머니 품에 안겨 차 앞자리에 앉았어.
제이미씨와 누나는 뒷자리에 앉았어. 네가 좋고 이쁘면서도 네가 무서웠던 누나는 네가 얌전이 시어미니 품에 안겨있길 바랬어.
그런데
너는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시어머니의 품을 벗어나 뒷자리 누나에게 오려고 애를 썼고
결국 고집스럽게 뒷자리로 넘어왔어. 그리고 누나 품에 살짝 안겼지.
그 순간을 누나는 아직도 잊지못해.
그건 낯선 공포! 그리고 이상한 아늑함과 위안이 뒤섞이는 그런 순간이었어.
그때 누나는 나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았고 곁에 있는 제이미씨가 얼른 너를 안아들어 시어머니께 다시 건네주었지. 그런데 그 순간이 공포에서 해방된 기분과 동시에 이상하게 섭섭했단다.
제이미씨를 노량진에 내려주고 시어머니와 네가 살게될 양수리로 가는 길도 참 멀었단다.
그날은 온 동네에 차가 다 나와있는 날 같았어.
우리는 잠시 한강고수부지에 들렀고 너도 잠깐 바깥 바람을 쐬게 하려고 땅에 내려놓았지.
그때 너의 당당함은 누나는 잊을 수 없어.
네 발로 땅을 확인 하듯 탕탕 짚어보고 겨우 3달된 강아지 주제에 늠름하게 서서 주변을 살피던 네모습이
어찌나 믿음직했는지....
그렇게 우리는 겨우 겨우 양수리에 닿았어.
시어머니 댁에 처음 들어가서 네가 한 행동 기억하니...
너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현관 발매트에 '여기가 바로 내 구역이다!' 선언하듯 쉬를 했어.
너무 당당하게 한발을 곧게 들고 시원하게 쉬를 봤단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고 또 나름 너의 각오를 본 것도 같은 순간이었어.
형과 누나는 그 순간을 이후에도 두고두고 이야기 나누곤했어.
그날밤. 너는 시어머니 방에서 자기로 되어 있었어.
몇번이나 말했지만 강아지포비아였던 누나는 네가 누나한테 올까봐 무서워서 방문을 꼭 닫고 잤지.
그런데 그날 밤 네가 누나가 자는 방에 와서 방문을 긁었어. 열어달라고.
누나는 애써 모르척하면서 잠을 청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안 편했어.
그리고 아침이 와서 형이 방문을 열었을때
밤새 방문 앞에서 기다리던 네가 방안으로 들어와 아직 누워있던 누나의 품에 쏙 안겼어.
그때였어.
그순간 너는 누나의 사랑이 되어버렸다!
너를 만난 다음날. 3개월때 돌이
그건 참 신비로운 순간이었어.
강아지를 보기만 해도 몸이 굳었던 누나가 한순간에 너를 품에 안고 너를 만지고 네게 뽀뽀할수 있게 되었단다.
그건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유일하게 경험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순수하게 '사랑에 빠진다!'는 경험이었어,
모든 것이 극복되고 모든 것이 황홀했던 순간....
그날 이후 돌이야.
너는 누나를 변화시킨 유일한 존재. 그냥 사랑이 되었다.
그렇게 2010년 10월 말에 만났던 너.
그렇게 13년 5개월을 누나곁에 머물다 가버린 너....
오늘은 너의 생일.
네가 이 세상에 없는.... 너의 생일...
오늘. 누나는 소고기 미역국을 끓였어.
미역국을 끓이면 너는 유난히 좋아했지. 누나가 미역과 함께 볶은 소고기를 꺼내 식히면 벌써 알아서 부엌을 빙글빙글 돌며 기쁨을 표시하던 너. 식힌 소고기를 한두점 얻어 먹을때 행복해 하던 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단다.
미역국을 끓이면서 누나는 또 울었어. 이젠 고기를 살때 네가 먹을 만큼 조금 더 살 일이 없구나... 미역과 고기를 볶을때 소금 간을 안하고 볶을 필요가 없구나.
볶은 고기 한두점 애써 꺼내 식힐 필요가 없구나......
기뻐서 빙글빙글 돌던 너의 눈에 빛나던 행복을 이젠 다시 볼 수가 없구나.......
돌이야.
누나는 언제쯤 되면 더 이상 울지 않고 너를 기쁘게 감사하게 기억할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되지 않아도 돼. 늘 울어도 돼. 너를 잃은 이 서러움이 천년 만년 가도 돼.
그렇게 늘 너를 기억할래...
이제는 내 곁에 있지 않지만...
돌이야....
생일 축하해...
내. 사. 랑.
2024.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