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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ri Lee Apr 03. 2020

무거운 마음으로

제주 4.3 사건 프롤로그

나는 선택적 아싸다.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미국에 와서 이곳 생활에 적응을 해가면서 선택적으로 취하게 된 삶의 방식인 것 같다. 내가 선택한 선택적 아싸의 삶에는 그렇게 많은 인간관계가 필요하지 않다. 

딱 내 사람. 혼자서 숨기고 있던 못난 모습들을 보여주면 진심으로 걱정을 해주거나 쌍욕을 해주는 그런 진정한 친구 딱 두 세명만 있으면 된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small talk를 병적으로 싫어하는 내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미국 사회는 나에게 있어서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고 오지랖이 넓다. 한국에서는 어영부영 아는 사이 혹은 그냥 얼굴만 익숙한 사이라면 꼭 필요한 일이 아니고서는 굳이 말을 걸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오늘 처음 본, 어쩌다 옆에서 밥을 먹게 되는 사람이라도 “Hi, how are you”로 시작해 궁금하지도 않은 본인의 강아지 이야기로 시작해 강아지 사진도 보여주고 (점점 대화의 흐름이 걷잡을 수 없어진다) 사는 이야기, 친구 이야기, 때로는 가족 이야기, 그러다가 페이스북을 주고받고 그 주말에 있을 파티에 초대한다. Introvert에 속하는 나로서는 정말 이런 관계가 너무 피곤하고 힘들다. 그래서 생긴 습관이 누군가 나에게 “Hi, how are you?”라고 하면 한국인이라면 반사적으로 나오는 “아임 파인 땡큐 앤드 유?”가 아니라 “I am fine. Thanks.”로 내 선에서 대화를 끝내버린다. 상대방의 안부가 정말 미칠 듯이 궁금하지 않은 이상 그냥 씽긋 웃고 빠른 걸음으로 내 갈 길을 간다.  


석사를 들어가서 학부 때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학생 수를 보고 난 곧장 마음먹었다. 

‘여기서 괜히 막 여러 사람 얽히면 말도 많고 더 피곤해 질게 뻔하니 진짜 마음에 맞는 친구 아니면 철저히 아싸로 지내자’ 해서 첫 몇 주 동안은 고요하게 투명인간처럼 지냈다.  


그런 나를 완전 인싸로 만든, 정말 원치 않는 인싸로 만든 사건이 있었다. 




여느 때처럼 나는 학생들이 점심도 먹고 떠들기도 하고 공부도 하는 그런 common area에서 이어폰을 끼고 (말 걸지 말라는 뜻이다) 혼자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에 꼭 동양 여자 애들한테만 집적거리는 미국인 M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동선이 비슷해 학과 건물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오고 가는 길에 몇 번 마주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마다 자신이 중국에서 살 때 어느 클럽을 갔고 중국 여자 애들한테서 인기가 많았다는 그런 궁금하지도 않고 그다지 듣기 좋은 주제가 아닌 이야기를 늘어놓아 나는 M을 기피했었다.  


그런 기피 대상이 평화롭게 혼자 점심을 먹고 있는 나에게 와서 눈치도 없이 이어폰으로 막고 있는 내 귀에 대고 뭐라고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진짜 너무 귀찮았지만, 그래도 예의상 이어폰을 빼고 “Sorry? (뭐라고?)” 하니까 내 앞에서 같이 밥을 먹어도 되냐는 거였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철저히 폐쇄된 공간에서 문을 닫고 밥을 먹게 되었다). 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Sure.” 


앉고 나서 M은 늘 그랬듯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M은 미군이었다). 진심 반응해주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영어 듣기 연습한다 셈 치고 그냥 들으며 건성건성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공부도 하고 수다를 떠는 동기들이 앉아있었는데,  M의 다소 msg가 첨가되었을 법한 무용담에 동기들이 M의 이야기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관종과 허세의 기질을 골고루 갖춘 M은 주변에서 반응을 보이니 한껏 더 흥분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댔다.  


'들어줄 사람이 생겼으니, 나는 여기서 슬쩍 빠져도 되겠군' 하고 조용히 내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기려는데 갑자기 M이 나에게 (사실 그전까지 무슨 이야기를 하다 나한테 말을 한건 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Jane, 한국은 진짜 미국한테 감사해해야 해.
미국 아니었음 너네도 다 공산화가 되어 북한처럼 살고 있을 거 아니야.
네가 미국에 와서 공부하게 된 것도 다 우리 덕분이야”  


지랄도 풍년이다.

아니, 왜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게 너네 덕이야? 우리 엄마 아빠 덕이지.  


평소 조용하고 혼자 다니던 내가 되게 온순한 성격이라 이런 소리를 들으면 그냥 얼굴이나 빨개져 웃고 넘길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사람 잘못 봤어 이 새끼야.  


순간 언제든 다시 귀에 꼽으려고 만지작 거리던 이어폰을 내던지며, 

SAY IT AGAIN. SAY IT WHAT YOU JUST SAID. SAY IT. (너 지금 한말 다시 말해봐)” 하니까 M이 그제야 상황 파악이 갔나 보다. 그런데 지켜보는 눈은 있어서 사과하기는 자존심이 상하니까 또 횡설수설 아주 도를 넘는 이야기를 잘도 지껄여댔다.  


M의 아무말 대잔치는 급기야 2차 세계 대전까지 거슬러갔고, 난 단 한마디도 질 수가 없었다. M의 머릿속에 대한민국은 미국에 아직까지 넙죽넙죽 절을 하며 조공이라도 바치며 은혜를 갚고 살아야 하는, 힘이 없어서 미국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나라로 인식을 하고 있었다. 단연 나는 뚜껑이 열렸고, 본의 아니게 석사 시작 3주 만에 M과 나의 말싸움이 붙었고, 그 사건 이후 나는 굉장히 유명해졌다.  


(그 후 M은 나 말고 다른 중국 친구들과도 트러블이 많았다. 그러다 결국 1년째 되던 해에 학점 미달로 퇴학을 당했다. 석사에선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내가 M의 말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6.25 전쟁 때 많은 미군이 우리나라에 와서 인명피해를 입었다. 또 1.4 후퇴 때 무기를 버려가며 배에 사람들을 태우고 전쟁고아들을 살뜰히 챙겨 대피시킨 미군들도 있다. 전쟁 후에는 미국의 원조로 버틸 수 있었다. 어려운 시기 미국의 도움으로 우리 현대사의 위기들을 잘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공만 보고 '미국은 좋은 나라. 우리나라를 구해준 나라'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미국에 고마운 부분도 있지만, 정말 아닌 부분도 있다. 현대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주먹구구 식으로 대학교 팀 프로젝트하듯 나라의 운명을 제멋대로 결정해버리고 처리하고 덮은 일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난 미국에 고마운 마음도 있지만 정말 분할 정도로 미운 마음도 있다.  


미국이 인격이라면, 나는 너무 분하고 속상해 벌게진 눈으로 미국을 찾아가서 

“너 그때 우리 집에 왜 그랬어?”하고 따지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시기가 해방 이후 미군정 시기다. 갑작스러운 신탁통치부터, 건국준비위원회 불인정, 본인들 편하고자 남의 땅에 임의적으로 그어버린 3.8선, 임시정부 요원들의 개인자격 입국, 친일파 인사 고용, 에치슨 라인, 적색 공포에 휩싸여 자행했던 비인간적 비이성적 처분들... 참 많지만 그중에서도 오늘은 제주 4.3 사건에 대해 다뤄보려고 한다. 미국 시간 기준으로 오늘이 4월 3일이어서 조금 의미 있는 주제를 다뤄보고자 제주 4.3 사건을 골랐다.  


제주 4.3 사건에 관련된 내용에 앞서, 오늘 내가 이렇게 긴 프롤로그를 남기는 이유는, 이전 편 들에서 재차 강조했지만 역사는 입체적이라는 것을 또 한 번 강조하기 위해서다. 역사를 대하다 보면 한 인격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참 많다. 인격에는 단편적으로 선과 악만 있는 게 아니라 선과 악이 공존하고 선과 악의 그 사이 복잡 미묘한 감정과 상태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역사가 그렇다. 수많은 생명을 살려낸 위대한 공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부분도 있다. 이제 와서 공과 실을 따져 대상을 정해놓고 비난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잘못된 역사를 분명히 알아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기에, 그리고 그간 마음속에만 묵혀 두고 살아온 피해를 본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 그 마음을 조금 나누자는 의미에서 이 아픈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려고 한다.  



간판 사진 제공 thanks to 나만의 제주소녀 양쏘


다음 편엔 본격적으로 제주 4.3 사건에 관한 내용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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