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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ri Lee Apr 04. 2020

탐라할아방 이야기

제주 4.3 사건 Part 1.

어떤 방법으로 제주 4.3 사건을 다뤄야 복잡한 당시 정세를 조금 더 쉽게 설명하고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름 고민을 (엄청) 하다가, 아무래도 1인칭 입장에서 내가 마치 겪은 것처럼 이야기를 해야 읽는 독자 입장에서 더 몰입을 할 수 있고, 쓰는 입장에서도 그 당시 느꼈을 제주도민들의 공포와 울분을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오늘 글을 1인칭 시점에서 써보려고 한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을 오마주 하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제주도의 옛 이름 탐라를 따서 ‘탐라할아방 (할아방: ‘할아버지’의 제주 방언)’이란 가상 인물을 만들었다. 탐라할아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탐라할아방은 4.3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 20대 중반의 제주 인민위원회의 간부였다. 때문에 당시 4.3 사건이 일어나게 된 전말과 배경에 대해 잘 안다. 그러나 미군정이 본격적으로 인민위원회를 탄압하기 시작하자 탐라할아방은 죽은 듯 숨어 살았고, 다른 동료들과 달리 극적으로 살아남아 당시의 상황을 오늘날 회고하는 설정이다.  


탐라할아방의 이야기를 듣기 전, 잠깐 탐라할아방의 탄생 배경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 사실 나는 순이삼촌에 영감을 받고, 제주 4.3 사건과 관련된 수많은 영상과 다큐멘터리 등을 보면서 당시 아무것도 몰랐던 평범한 여성을 가상 인물로 설정하기로 마음먹고 “동백할망”이라는 인물을 만들었다. 그런데,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목적은 제주 4.3 사건에 대해 아직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또 내가 쓰면서 사실적 내용들을 익히기 위해서다 보니 당시 평범한 할머니들이 느꼈을 법한 막연한 공포감과 억울함을 표현해 내기엔 부족했다. 쓰고 나서 나시 읽어 보니 내가 상상했던 동백할망의 나레이티브라고 하기엔 조금 어색함이 보였다. 내가 기존에 염두했던 '아무것도 모르다가 갑자기 이념 논리에 휩싸여 억울한 상황을 당한 할머니'라고 하기엔 구체적인 정황들을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설정을 탐라할아방으로 바꿨다. 당시 혈기왕성한 나이에 인민위원회 소속으로 누구보다 당시 제주도의 사정을 잘 아는 설정으로.  


간접적으로만 4.3 사건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듣고 그분들 속 안에 있는 울분과 혼란스러움 그리고 그 당시 기록 밖의 내용들을 다 형상화해내기엔 내겐 아무래도 좀 무리였다. 동백할망을 염두에 두고 이틀간 쓰면서 제법 동백할망과 정이 든 나로서는 설정을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꾸면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내가 미처 형상화해내지 못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이번 편 끝에 달아 놓을 유튜브 영상들을 통해서 만나보기를 바란다. 부디 그대들의 동백할망을 각자의 마음속에 탄생시키길 바라며 이도리는 이만 탐라할아방을 만나러 가봐야겠다.   


아아, 근데, 이 탐라할아방은 4.3 사건 이후 후유증으로 더는 제주도에서 못살고 육지로 나와 서울말을 아주 잘한다. (는 설정이다) 


그럼 이야기 스타트. 



해방 이후는 내 나이 이십 대 초반이라 다 기억이 나. 


1945년 8월에 우리가 해방을 하고 제주도에 들어와 있던 일본 놈들이 다 나갔어. 

이제야 우리가 우리 손으로 뭔가 해볼 수 있겠구나 하고 즐거워하던 게 난 아직도 생생해. 

그런데, 일제한테 빼앗긴 우리나라를 다시 찾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이랑 소련 놈들이 갑자기 들어오는 거라. 

지네들끼리 38선을 띡 그어놓고 ‘너네는 여기 넘어오지 마. 우리도 안 넘어갈 테니까!’ 하더라니까. 

어이가 없었지. 

일본 놈들이 식민 통치할 때도 안 갈라놓았던 우리 땅을 생전 처음 보는 놈들이 들어오자마자 남의 집에서 지네 멋대로 들어오네 마네 허니께… 

그러나 뭐 우리가 힘이 있나? 힘센 놈들이 총부리 겨누면 별 수 없제.  


남한에는 미군들이 들어와 있었어. 

미군들이 와서 우리나라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데, 그걸 좋아할 우리나라 사람이 어디 있어. 

이제 막 해방의 자유를 느껴보겠다는데, 이건 또다시 식민지가 아니고 뭐야.  


우리 나름대로도 자주독립 국가를 세우기 위해 건국준비위원회라고 하는 거를 중앙에 세웠던 것 같아. 

이게 이름이 기니까 그냥 건준이라고 할게. 

중앙에서 건준을 만들었으니, 우리 제주에서도 1945년 9월에 제주도 건준을 세웠지. 

그게 나중에 인민위원회로 바뀌었어. 내가 여기 소속이었구.

무튼 우리는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열심히 치안 활동도 하고, 교육도 실시하고, 제주 내 마을 행정 주도도 하고 그랬단다. 

제주 사정을 육지 사람도 제대로 모르고 우리 사정을 우리가 제일 잘 아니께, 제주 인민위원회 사람들이 주도하는 방식은 우리에게 가장 잘 맞고 필요한 것들 중심이었지.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자율적으로 잘하고 있는데, 

미군들이 들어와서 9월 말부터 갑자기 지네가 우리를 통치하겠다는 거야. 기가 맥혀. 

아니 한 언어 쓰는 육지 사람들도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모르는데, 말도 안 통하는데 미국 놈들이 와서 뭘 하겠다는 거야.  


예상한 대로 미국 애들이 섬으로 들어오긴 했는데 내부 사정도 잘 모르니까 어쩔 수 없이 제주 인민위원회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지. 

근데 웃긴 게, 얘네들이 우리 제주 인민위원회 도움은 받으면서 자존심은 있는지, 우리를 공식적인 행정 기구나 통치 기구로 인정하지 않았어.  


약아빠진 놈들… 얘네들이 우리 제주 인민위원회가 세력이 커지는 것이 무서웠는지, 일제 강점기 때 일제 앞잡이 했던 놈들을 친미파로 둔갑해서 그대로 관리로 쓰고, 우리 제주 인민위원회에 맞설 수 있는 우익 애들을 점점 키워 나갔어. 그러니까 우리 도움을 받는 동시에 뒤로는 우리를 언제든 없앨 수 있는 세력들을 조직적으로 만들고 있었지.     


우리는 해방하고 어떻게 일본 앞잡이 노릇을 했던 인간들을 혼내 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해방 전이랑 후랑 일제 앞잡이 놈들은 박쥐처럼 잘도 여기저기 붙어서 잘 살대? 

그러니 우리는 진짜 기가 맥히지. 




1946년 8월에, 그니까 해방된 지 아직 1년도 채 안되었을 때, 미군정은 본격적으로 우익 세력의 입지를 단단하게 맹글어주기 시작했어. 제주도 내 경찰 병력이 우익 세력들로 교체되고 조선경비대 9 연대인가 뭔가 하는 그런 것도 맹글어지고... 아휴 난 몰라. 


미군들이 그냥 말 그대로 인민위원회에 대항할 수 있는 우익 세력의 덩치를 엄청나게 키운 거지. 

이렇게 되면서 1946년 말부터 미군정은 본격적으로 우리 제주 인민위원회를 탄압하기 시작했어.  


우리 섬사람들 입장에서는 하도 이 상황이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지. 

당연히 미국 놈들이 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좋아할 사람 아무도 없었어.

그때 미군정이 내놓은 미곡 수집이라는 정책이 또 실패로 돌아가면서 우리 섬사람들 생활은 더 힘들어지고, 

점점 더 미군정에 화가 났더랬지.  


그러다가 진짜 난리가 난 거는 1947년 3월 1일이었어. 야야 3월 1일은 좋은 날이지 않니? 

생각해봐라 해방을 하고 나서 맞는 3.1 절이니 우리는 얼마나 기뻤겠어. 

그래서 그때 여기서도 28주년 3.1절 기념 제주도 대회가 열렸다. 

온갖 사람들이 나와서 기뻐했어. 태극기 들고 만세 불고. 진짜 기뻤지… 

그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아니 우리가 이제 만세를 다 하고 돌아가려는 길에 어떤 꼬마 아이가 말을 타고 가던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치인 거라. 

아니 아무리 살았다고 해도, 어린 애고, 그 큰 짐승이 친 거면, 보통 인간이면 내려와서 아이 괜찮은지 보고 살피는 게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도리 아니여? 

근데 이 기마경찰이란 놈은 다친 아이를 그대로 두고 그냥 획 지 갈길 가버리는 거라. 

이 상황을 우리가 다 지켜봤지. 

아이 없는 사람들도 이 모습에 너무 화가 나서 옆에 있던 돌들을 집어던지며 사과하라고 항의했지. 

근데 그때 사방에 있던 무장한 경찰들이 우리가 폭동을 일으키는 줄 알고 우리한테 막 총을 쏴대는 거라… 

이때만 생각하믄 난 진짜 속이 벌렁벌렁 혀. 

이때 죄 없는 우리 섬사람 6명이나 죽었다… 

죽은 사람들 중에는 15살짜리 국민학생이랑 젖먹이를 안은 어멍('엄마'의 제주도 방언)도 있었다… 

이들이 무슨 죄여…무슨 죄… 


우리 섬사람들은 조용한 것 같아도 잘못 건들면 끝장을 보는 사람들이라. 

이 사건을 보고 속에 큰 불이 부글부글 안 끓었던 제주민들은 없었다 야. 

그래서 이제 그때부터 제주 4.3 사건이 시작이 된 거지… 이때부터…


해방 후 우리 민족 모두가 하나 되어 기뻐해야 할 3.1절이 7년간 있을 그 끔찍한 학살의 도화선이 된 거라… 


28주년 3.1절 행사 때 죄 없는 우리 섬사람들을 쏴 죽인 경찰 놈들이 너무 괘씸해가 우리는 3월 10일부터 진짜 대대적인 민. 관 합동 총파업을 시작했다. 

내가 말했제? 우리 섬사람들 화나면 무섭다. 우릴 잘 못 건드렸어… 


아니 그렇게 잘못한 점에 맞서 정당하게 총파업을 하는데 미군정은 진상조사를 하기는커녕 갑자기 우리를 

“붉은 섬”으로 지목하고 총파업 주도자들을 색출하기 시작하는 거라. 

그때 생각해보면 미국 놈들은 아주 뭐에 단단히 씌었는지, 

걔네들 눈엔 빨간색 아님 빨간색이 아닌  이 두 가지밖에 안보였나 봐. 


아무튼, 미국 애들이 갑자기 우리 섬을 빨갱이라고 하고 육지에서 경찰들을 엄청 보냈다. 

그리고 지금도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 서북청년회 애들도 보냈지 여기로. 

서북청년회(서청)도 뭐에 단단히 씌었어 분명히. 그렇게 잔인할 수가 없다 야. 

미군정이 파견한 경찰이랑 서북청년회들이 우리 섬으로 도착하자마자 경찰, 행정기관, 교육기관 같은 공공시설들을 다 장악하고, “빨갱이 사냥”을 한다고 우리 섬 전체를 들쑤시고 다녔다. 피바람이 시작된 거지.  


이 사건 직후 미군정 보고서에는
“제주도는 70%가 좌익정당에 동조적이거나 가입해 있을 정도로 좌익의 본거지”라고 기록되었다.
또한 미군정은 3월 15일부터 파업 주모 혐의로 민전 간부들을 연행하기 시작하여 4월 10일까지 500명을 검속 했다. 검속 된 자들 가운데 5월 말까지 328명이 재판에 회부되고, 52명이 실형을 언도받아 목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7년 3·1 사건 이후 1948년 4·3 발발 직전까지 1년 동안 2,500명이 검속 됐다.
출처: 제주 4.3 평화재단 (https://jeju43peace.or.kr/kor/sub01_01_02.do



우리 제주 사람들은 진짜 불쌍해. 

늘 섬이라 외면받고 차별받다가 일제 때도 우리 예쁜 섬을 지네 전초 기지로 맹근다고 다 망가뜨려 놓고, 

미군정 때는 빨갱이 섬이라고 지목되가 매일 그렇게 피바람이 부는데 우리 속은 멀쩡하겠나? 

울분이 쌓여버렸지. 가득.  


한창 이러고 있을 때 남로당 제주도당이 있었어. 

남로당은 서북청년회의 탄압에 분노했고 당시 육지에서 이승만이가 남한만이라도 단독 선거를 하자고 5.10 총선을 하려 했었는데, 이를 반대해서 무장봉기를 일으켰지.  


야야 너네야 태어났을 때부터 남북이 갈라져 있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겠지마는, 

우리야 이렇게 분단될라고 그렇게 피 흘려 독립운동한 줄 아니? 

우리는 꿈에도 분단될 거라 생각을 안 했다 야. 

기껏 해방을 했는데, 해방하고 나서 어떻게 찾은 땅을 반으로 똑 나눈다고 생각하면, 

저승에서 곡할 사람 한둘이 아닐 거다. 

이런 민심이 대부분이었어. 

5.10 남한만의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사람은 우리 섬사람 만이 아니었다고. 

그런데 우리를 마녀 사냥하듯 섬 전체를 빨갱이라고 해버리고 만날 족쳐대니 우리도 무장봉기를 일으켰지.  




1948년 4월 3일. 4월 3일. 이때 시작된거여. 

4월 3일 새벽에 한라산 기슭 오름마다 남로당이 봉화를 태우면서 무장봉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어. 

남로당은 그동안 제주도민을 탄압했던 경찰지서랑 서북청년회 놈들이 사는 집을 습격했지… 


다음은 무장대가 도민에게 보내는 호소문이다.
시민 동포들이여! 경애하는 부모 형제들이여!‘4·3’ 오늘은 당신님의 아들 딸 동생이 무기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매국 단선 단정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조국의 통일독립과 완전한 민족해방을 위하여! 당신들의 고난과 불행을 강요하는 미제 식인종과 주구들의 학살 만행을 제거하기 위하여! 오늘 당신님들의 뼈에 사무친 원한을 풀기 위하여! 우리들은 무기를 들고 궐기하였습니다. 당신님들은 종국의 승리를 위하여 싸우는 우리들을 보위하고 우리와 함께 조국과 인민의 부르는 길에 궐기하여야 하겠습니다.
출처: 제주 4.3 평화재단 (https://jeju43peace.or.kr/kor/sub01_01_02.do)


    


탐라할아방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


간판 사진 thanks to 보고 싶은 양쏘 (너의 insight/feedback에 다시 한번 깊은 감사)


당신의 동백할망을 만나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Tr167gorh4A


https://www.youtube.com/watch?v=g7SbVI_jhI4&t=19s


https://www.youtube.com/watch?v=lvsWqcXZ_FE


https://www.youtube.com/watch?v=6S8hjrvQZzc


https://www.youtube.com/watch?v=Fnhh4SLMo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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