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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ri Lee Apr 05. 2020

"속슴허라이!"

제주 4.3 사건 마지막 편.

이전 편 '탐라할아방 이야기'에 이어서, 계속 탐라할아방이 이야기해주는 설정




4월 3일 새벽녘에 그렇게 제주 무장대가 우익 세력들이랑 서북청년단 놈들의 집을 그렇게 들 쑤시고 나니까 미군들이 놀랐던 모양이야. 이튿날 갑자기 육지에서 경찰들이랑 서북청년단들이 더 들어와 진압을 하려고 해댔지. 


그런데 이미 무장대는 불이 붙었고, 미군들은 그냥 계속 짓밟으라고 했어. 

그 내가 앞서 말한 국방경비대 9 연대 인가 그거 있지? 

그 사람들한테 무장대를 그냥 무참히 짓밟아 버리라고 했었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같은 민족인데 막 그렇게 짓밟겠니? 

9 연대는 경찰 놈들에 비해서는 그래도 양심이 좀 있었는지 민족적인 성향이 강했는지, 

이거는 무장대의 이유 없는 폭동이 아니라 서북청년단과 같은 놈들의 망나니 짓으로 인해 야기된 거라 무장대를 짓밟는 건 순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거봐. 미국 놈들보다 낫지. 암 그렇고 말고. 

그래서 이 9 연대가 일단 평화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자고 해서 4월 28일에 극적으로 무장대랑 평화적 타협이 이루어졌지. 

 

꼭 근데 뭐가 될라하믄 미국 새끼덜이 와서 초를 치더라니까. 

중앙에 와 있던 하지 사령관이라고 하는 놈이 있어. 아주 마음에 안 들어. 

아주 우리나라에 대해 쥐뿔 아는 게 하나도 없이 와가꼬는 애들 놀이 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제멋대로 해집어 놓고 가서 지금 그 새끼 때문에 꼬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여. 

무튼 그 하지라는 놈이 무장대와의 평화협정에 찬물을 끼얻고 무력 진압을 하자고 그냥 결정을 내버리더라니께.  


협상을 맺고 나서 사흘 만에, 그니께 5월 1일에 우익 세력들이 제주읍 오라리 마을에 불을 질렀어. 

분명 그 오라리사건은 우익 놈들이 했어. 

오라리 마을 주민들은 그냥 가만히 있다가 봉변을 당한거제. 

근데, 이걸 그냥 미군놈들이랑 양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경찰 놈들이 제주도 무장대가 한 행위라고 조작을 해버리더라니까. 이 사건을 빌미로 미군은 기냥 강경 진압을 해댔지.  


들으면서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우리 섬사람들은 무장대도 아니었고, 우익도 아니었고, 당연 미군도 아니었고… 우린 아무것도 몰랐어. 뭐가 뭔지, 이념이 뭔지, 뭐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럴 새가 어딨어. 당장 내 새끼가 배고프다는데… 그냥 암것도 모르고 있다가 당허기만 한거여 당허기만…  


내가 저번에 잠깐 말해서 기억할랑가 모르겠지마는, 당시 육지에서는 이승만이가 주장하는 5.10 총선거 때문에 중앙에서 엄청 시끄러웠던 모양이야. 아 여기도 무지하게 시끄러웠어. 

아효 이걸 우찌 설명한담. 잉, 그러니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이런거시여.  


내가 우리 엄마 아빠랑 소박하지만 작은 집에서 평화롭게 오손도손 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악질 도둑넘들이 우리 집을 쳐들어온 거지. 여기서 도둑넘들이 일본 애들이여. 이 도둑넘들이 우리 집에 있는 물건들을 막 깨부수고 지네 멋대로 갖다 팔고 하고 있었어. 물론 이 놈들이 들어오자마자 우리 엄마 아빠랑 나를 밧줄로 꽁꽁 묶고 입에 테이프를 붙여놔서 우리는 눈물만 흘리지 옴짝달싹을 못했지. 나는 속으로 하늘이 도와서 이 도둑넘들이 우리 집에서 빨리 꺼지고 난 예전처럼 우리 엄마 아빠랑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아파트에 불이 난 거야. 그래서 온갖 소방대원들이 아파트에 들어와 사람들을 구조해내기 시작했어. 불이 무서웠던 건지, 소방대원들이 무서웠던 건지  결국 이 도둑넘들도 도망갔어. 불이 나서 집은 풍비박산이 되었지만, 나는 그래도 도둑넘들이 없는 집에서 엄마 아빠랑 다시 오손도손 살 수 있겠다…싶었는데, 불이 다 진압이 되고 나니까 갑자기 엄마 아빠가 갈라서겠다는 거야. 그래서 나보고 엄마 집에 갈 건지 아빠 집에 갈 건지 선택하래. 이런 황당한 경우가 어딨어! 난 이제 드디어 다 같이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이게 당시 우리나라 상황이었어. 어이없고 억울하고 황당한… 


5.10 총선거는 남한만의 단독 선거라서 이 선거를 한다는 의미는 이 기점으로 남북이 정식으로 분리된다는 것을, 그러니까 엄마 아빠의 이혼 서류에 도장을 꽉 찍어 버리는 그런 셈이지. 

그래서 육지에서도 5.10 총선을 기를 쓰고 반대하고, 제주에서도 무장대들이 거부 투쟁을 해댔지. 

무장대들이 선거사무소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선거 관계 공무원들을 납치 하고 살해도 하고 하면서 아주 좀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선거를 방해하려고 했어. 

무장대가 이렇게까지 폭력적으로 선거를 방해를 해대는데 어떤 간 큰 놈이 가서 선거를 하겠니? 

그래서 제주도의 선거구들 중에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 처리가 된 곳들이 있었어. 

사람들이 너무 무서워서 선거구에 못 간 거지. 

그래서 이렇게 선거가 무효화되었으니, 미군은 또 엄청 당황한 모양이야. 다시 한번 더 기회를 주겠대. 

그래서 6월 23일에 또 재선거를 실시를 한다고 했지. 근데, 이것도 실패를 하니까 더는 안 되겠던 모양이야. 

이제 그때부터 토벌이 시작되었어. 토벌.  



해안에서부터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그냥 무조건 무장대로 간주해 다 쏴 죽여 버리겠다고 발표가 났어. 무슨 이런 근본없고 무식한 발표를 해대냐 그래. 

이 발표 이후에는 군경토벌대는 중산간에 있는 모든 마을이란 마을엔 다 불을 지르고 제주도민들을 집단으로 학살하기 시작했지…이 초토화 작전은 미국 애덜이랑 같이 협상해서 진행되었던 모양이야. 

미국애들이 소련이랑 그때 뭔 바람이 불어 그렇게 경쟁을 해댔는지, 우리나라가 공산주의로 넘어갈까 혈안이 되어가지고는 미국 뜻에 반대하는 애들은 공산주의로 여기고 그냥 다 쓸어버렸지 뭐.  


11월에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중산간 마을은 물론 해안으로 내려간 사람들까지도 무차별적으로 죽임을 당했어. 당시엔 뭐 믿을 놈 하나 없었다 야. 


정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말도 못 해. 

우리 집 건너편에 살던 김서방네는 하도 먹고살기가 힘들었는데 애가 줄줄이 딸려 내가 좀 도와주고 그랬었어. 근데 나도 도망 다녀야하는 신세니까 내가 없어지고 나니깐, 뭐 애는 줄줄이 있지, 도와줄 사람은 없지. 하니까 좀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야. 그런데 어디서 무슨 종이에다 이름을 쓰면 쌀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나봐. 그땐 워낙 쌀이 귀했기도 했고, 주변에 한집에 꼭 한 두 명은 다 그 종이에 이름을 적었으니까 그냥 의심 없이 이름을 적었지. 그러다가 며칠 있다가 쌀 받으러 오란 소식에 자식덜이랑 부인을 두고 혼자 신나게 쌀을 받으러 갔나봐. 근데 알고 보니 그 사인 한 곳이 무장대에 이름을 올린 거였더라고. 다신 돌아오지 못했어. 나중에 김서방 부인은 자기 서방 시신은 찾겠다고 나섰다가 하도 죽은 시신 더미가 많아서 결국 찾지를 못했어. 갔다 오고 나서 그 어멍은 말을 못 했어. 뭐 그 실어증인가? 그거에 걸렸대.  


남자만 그런 게 아니야. 여자들 중에도 당한 사람은 말도 못 해. 여자들은 에효…. 전쟁 때 죽어나간 수많은 여자들 보면 대충 내가 무슨 말하려는지 알거라 생각하고 굳이 깊이 있게 들어가진 않으련다. 내가 남자로서 이런 이야기 하기가 참 더 마음이 아파. 딸 있는 아비 입장으로서… 그렇게 희롱 당해 죽은 여성들 말고도 수많은 여자들이 당시 억울하게 감옥에 가기도 하고 죽임을 당했더랬어. 그 아가씨들도 다들 먹고살라고, 일자리 준다니까. 물질 (해녀 일)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이름 적으라고 적었더니 그게 알고 보니 남로당 가입 용지였던 거야. 그대로 수용소를 가 몇 년씩 청춘 다 바쳐 있다 나오기도 하고 죽임 당하기도 하고…. 아휴 그 꽃다운 나이들에 그게 다 뭐여… 


군경토벌대만 그런 게 아니여. 무장대들도 잔인했다야. 복수심에 눈이 뒤집힌 모양이여. 

당시에 집안에 아들내미가 무장대에 속해 있으면, 군경토벌대가 그 집에 들어가서 아들 어디 있는지 말하라고 막 무섭게 그런다. 

그런데 뭐 이 무장대들이 집 나갈 때 “나 어디 가요~”하고 나가겠니? 

모른다고 하면 대살이라고 해서 가족들을 전부 끌고 나와 대신 죽여. 

무장 대들은 자기 대신 가족들이 대신 죽임을 당했다는 걸 알고 나면 뭐 눈깔 뒤집히지 별수 있어? 

그러면 복수를 해댔지. 근데 애꿎은 주민들이 이 과정에서 무지막지하게 죽어 나갔어. 

복수는 또 복수를 낳고 증오는 격한 충돌들로 이어지면서 죄 없는 민간인들이 엄청나게 죽었어.  


이때 무서워서 해안가로 대피하진 못하고 산에 들어가 숨어 지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야. 

그래서 1949년에 “산에서 내려와 귀순하면 과거 행적을 묻지 않고 살려주겠다”라고 선무 공작을 하는 거라. 

당시 믿을게 아무것도 없었고, 산에서 먹을게 한정되어 있으니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한라산에 숨어 있던 1만 명 되는 사람들이 하산을 했어. 그런데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내려오는 족족 다 죽여서 1,600명이 총살을 당하고 형무소로 보내졌지.  


그러다가 6.25가 터졌지. 진짜 이념 전쟁이 터진게지. 이념 전쟁. 

우리 섬에서는 3년 먼저 이념 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6.25 전쟁이 발발 되니까 제주도에 또 비극이 찾아왔지. 그냥 다 빨갱이나 빨갱이 가족들이라고 낙인찍힌 사람들은 예비 검속 되어 처형되었고,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4.3 사건 관련자들도 다 즉결처분되었어. 이념전쟁이 본격화되니까 조금이라도 의심 가거나 예전에라도 낙인찍혔던 사람들은 그냥 다 죽여버린겨… 

나중에 하도 많이 죽여서 유가족들이 시신 찾으러 댕겨봐도 찾을 수가 없었어.  


서귀포, 제주항 앞바다, 제주읍 비행장, 송악산 오름 등지에 집단적으로 총살되고 암매장되었지. 

신지 항 앞바다에 수장되기도 하고 정뜨르 비행장에 끌려가 총살 암매장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계엄군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가서 희생된 수가 하도 많아서 이건 다 말로 다 못혀. 

희생당하지 않은 가족이 없어 야. 다 죽여버렸어 다.  


4.3 사건이 해방 이후 6.25 전쟁 다음으로 사람이 많이 죽은 사건이여.  


잉? 왜 이제까지 말을 안 하고 살았냐고? 


니 제주말로 “속솜하라” 라는 말 들어봤나? 

조용히 하라는 말이야. 잠잠히 가만히 있으라고. 

너무 시대가 무섭고, 말 잘 못했다가 죽어나가니께... 

또 기억하기엔 너무 아프니 알아도 모르는 거고 들려도 들리지 않는 거야. 그게 속솜하라라는 뜻이야. 

4.3 사건이 있고 나서는 다들 속솜하라 속솜하라 했댜. 묻지 말라는 거야. 

그냥 벙어리 귀머거리처럼 살아야 했고, 살아도 목숨만 붙어있다 뿐이지 기억이 너무 고통스러우니께 자꾸 기억하고 말하면 제정신으로 못살제. 

그래서 나도 지금까지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속솜했지.  


나는 그나마 당시 상황을 잘 알았는데도, 나도 하도 우리 섬사람들한테 빨갱이다 빨갱이다 해서 난 전쟁 끝나고도 내가 빨갱이인 줄 알았어야. 

아닌 거 알았지마는... 내가 뭐 무슨 큰 뜻이 있어서 이념을 운운하고 그러지 않았지마는... 하도 빨갱이라고 내 주변에 죽임 당하는 사람들이 많아 나는 내가 빨갱인 줄 알아서 전쟁 끝나고도 나는 뭔지도 모를 죄책감에 속솜한거라.  


제주도에는 한날에 제사를 지내는 집들이 많아. 

다들 뭐 같이 총살을 당하거나 암매장을 다 같이 당했으니 죽은 날이 같은 집들이 많제. 

또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니 그냥 다 같이 해버리는겨. 

그때마다 내 마음이 좀 그래. 살아도 산 게 아니여. 

나도 70년 전에 죽었어야 했는 게 아닌가 싶어. 

살아있다는 죄책감에, 또 나는 알지 못하는 이념 논리 가운데 낙인이 찍혀서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었어. 

그래서 내 일평생 오늘날까지 속솜했지.  


72년을 속솜했는데, 오늘 누가 이렇게 내 이야기 들어주니 그래도 좀 시원하다 야. 



그동안 제주 4.3 사건과 관련된 탐라할아방 이야기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자료 출처: 제주 4.3 평화재단 (https://jeju43peace.or.kr/kor/sub01_01_04.do)

간판 사진 thanks to 제주소녀 양쏘


마지막으로 제주 4.3 사건을 영상으로 잘 담아낸 지식채널 e 를 끝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3KLnqaLXj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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