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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ri Lee Apr 06. 2020

나의 고장 춘천은요,

Legend of Chuncheon 프롤로그

스무 살 때까지 나는 늘 춘천에서 왔다고 말하는 게 창피했다. 

내가 춘천 출신이라는 게 그냥 싫었다. 춘천을 진짜 떠나 보기 전까지는…  


최근에는 춘천에서 서울 가는 itx가 생겨서 한 시간이면 너무 깨끗하고 편안한 기차를 타고 아주 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춘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많아지고, 춘천에도 점차 새로 생긴 체인점이나 가게들이 많아졌다. 춘천에 드라이브 스루 스타벅스가 생겼을 땐 정말 신기해서 차도 없는데 괜히 가서 한번 구경하고 그랬다. 이렇게 춘천의 이미지가 세련되진 거는 사실 얼마 안 된다. 

춘천 육림고개 여행책방 춘천일기 2층에서 빵녀와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스타벅스도 없고 이제 막 CGV가 들어서기 시작하던 때라 서울과 춘천 간의 격차가 좀 컸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춘천 출신이라는 게 조금 부끄럽고, 서울 애들 앞에선 괜히 좀 작아졌다.  


하나의 일화로 매년 있는 명절 때마다 그랬다. 우리 집이 큰 집이라 매년 서울에서 친척들이 오고 그러면 친척 언니 오빠들을 데리고 구경시키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럴 때마다 “춘천에 뭐 있어?”라는 말이 괜히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춘천의 나름 번화가 명동을 데려가면 “그래서 어디가 명동이라는 건데?” (“본인이 지금 서 있는 바로 이곳이요!!”하고 꽥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하는 등의 말투가 진짜 거슬렸다. 

으~ 서울깍쟁이 같으니라고…      

춘천 동주 (with Stay)

나는 학창 시절, 나름 춘천에서 영어를 깨나 했다. 그래서 전국구 대회를 나갈 기회가 좀 있었다. 

‘내 영어 실력은 서울 애들에 비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라는 자신감이 있어서 대회를 나가면 나와 같이 번호표를 가슴팍에 붙이고 있는 애들을 보면 ‘덤벼, 상대해줄게’할 정도의 엄청난 패기가 있더랬다. 


그런데 꼭 “춘천 00 학교, 이도리” 하고 내 차례를 호명하면 정말 그 “춘천” 때문에 사기가 저하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했을 텐데, 괜히 나 혼자 나 자신이 수도권 애들 앞에만 서면 

강원도에서 온 그런 시골스럽고 순박한 이미지에 특히 더 까무잡잡해 보일 것 같고, 꼭 내 이름은 꼭 점순이처럼 들릴 것 같고 그랬다…   

그래서 애꿎은 춘천 이름도 원망했다. 

‘왜 하필 이름은 촌스럽게 춘천이야… 하고많은 이름 중에 춘천이냐고… 꼭 춘 같잖아…’

라는 온갖 마음이 다 들어 수도권 애들만 보면 움츠러들기 십상이었다. 


유학을 준비하려고 서울에 있는 미국 대학 입학시험 SAT 학원을 갔을 땐, 정말 가관이었다. 

3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지방권 출신들은 정말 좀처럼 없었다. 대부분은 수도권에 있는 외고 출신, 혹은 심지어 미국 교포나 1.5세들이 족집게 학원은 한국만 한 곳이 없다며 미국에서 한국으로 역으로 와서 학원을 다니곤 했다. 안 그래도 지방 출신들도 많이 없는데 강원도는 더더욱 없었고, 춘천은 300명이 넘는 아이들 중에 나 딱 하나였다.  


“한국은 서울 아니곤 다 시골 아니야?” 하던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강원도에서 왔다고 하니까, 강원도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애들도 많았고, 심지어 웬 시골에서 온 애가 유학을 간다고 자기네들이랑 같이 공부하고 있으니까 우리 집이 땅 부자라 내가 유학을 간다, 혹은 아빠가 춘천 닭갈비 협회 사장이다 라는 말도 안 되는 소문도 잠깐 있었다. 

뭐 얘네들은 춘천에서는 모든 사람이 농사를 짓고 주식으로 닭갈비만 먹는 줄 아나.  


그런데 춘천을 떠나 약 1년간 혼자 서울에서 생활을 하면서 내 속 안에 있던 춘천을 부끄러워하던 마음이 서서히 사라졌다. 


지금은 “야, 춘천 하면 딱 너 생각나, 네가 하도 춘천춘천춘천 해서”라고 친구들이 말할 정도로 자칭 춘천 홍보대사까지 되기까지는 무슨 대단한 계기가 있었던 게 아니고 춘천을 떠나보니 춘천 소중한 줄 알겠더라

지금은 춘천에도 감성 있는 카페와 독립서점이 참 많이 생겼다. 그래서 참 좋다 나는!

처음 서울을 오고 나서 한동안 머리가 계속 지끈지끈해서 타이레놀을 들고 다닐 정도였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랬던 건지, 심리적인 건지 모르겠지만, 요즘도 가끔 한국에 가서 춘천에 있다가 서울을 오랜만에 가면 그럴 때가 있다. 공기 때문인 것 같다. 20년을 춘천 청정지역에서 살다가 복잡 거리는 서울을 가니 춘천 녀자 이도리에겐 서울 공기가 영 아니었던지 머리가 한동안 계속 아팠다.  


처음엔 밤에도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서울이 너무 멋지고 세련돼 보였는데 서울에서 1년 정도 지내니 춘천의 고요한 밤이 그리웠고, 자연의 순리대로 어두워질 땐 자고 해가 뜰 땐 일어나고 하는 생활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건강한지 느꼈다. 


소양 댐으로 아침엔 자욱이 안개가 껴서 운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춘천이 좋아졌다. 

서울 살이 하다가 마음이 지치고 기댈 곳이 없으면 춘천으로 와 산에 위로받고 물을 보고 기운을 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춘천에 있어서 춘천이 더 많이 고팠던 것 같다. 


춘천 곳곳에 묻어있는 추억들…

고등학교 단짝 빵녀랑 맨날 야자 끝나고 깔깔 거리며 독서실 가던 그 길, 겨울이면 엄마랑 500원짜리 호떡 사 먹던 1단지 시장, 내가 오면 안경 고쳐 쓰시고 “아이고 이게 누구야~” 하시던 우리 동네 세탁소 할아버지, 외할머니랑 미제 껌 사러 가던 구멍가게, 어릴 적 할아버지 손잡고 뽑기 하던 문방구, 오빠한테 혼쭐 난 설렁탕 집, 아빠랑 투닥거리다가 내가 울어버린 생선 집, 고등학교 시절 용돈 모아서 처음으로 CD사고 춤을 덩실덩실 췄던 레코드 가게 등등 멀지 않은 곳에 곳곳이 추억이 묻어있는 그런 곳이 춘천이다. 

세련되진 않았지만 정감 가고 사랑스러운 춘천이 좋았다. 아니 좋아졌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턴가 춘천에 대해 아는 게 1도 없는 이가 

“어? 춘천에서 왔는데 사투리 안 쓰네? 사투리 좀 해봐” 하는 요청을 하면, 기꺼이 “춘천에서는 사랑 고백도 하트 모양 감자 골라 가지고 하드래요~”한 술 더 떠서 물어본 사람에게 창피를 주곤 한다.  

사진 올리다가 침만 꼴깍꼴깍

그래서 이번 편부터는 춘천, 하면 떠오르는 게 닭갈비랑 막국수 밖에 없는 참 불쌍한 중생들을 위해 내가 춘천이 알고 보면 얼마나 재미있고 흥미로운 곳인지 알려주기 위해 춘천에 얽힌 재미난 전설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코로나가 풀리고 날씨가 좋아져 나들이 갈 기회가 된다면 이 전설이 깃든 장소를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내 고장 춘천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 :)

 


 

사진에 큰 도움을 준 나의 서울 절친들 신혜인, Mango, Soy de Seul에게 큰 감사를!

다음에 오면 닭갈비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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