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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ri Lee Apr 08. 2020

너무 아픈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Legend of Chuncheon 1. 청평사의 전설

이 전 프롤로그  “나의 고장 춘천은요,”에서 내가 마치 춘천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속속들이 다 아는 것처럼 비쳤을 수도 있지만… 사실 나도 춘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춘천에서 산 세월이 20년 가까이 되지만, 춘천의 역사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고 미처 알아볼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사랑하는 상대의 뭐든 것이 다 궁금하고 특히 그 사람의 과거가 궁금하듯 나도 스무 살 이후 차디찬 타지 생활에 홈스윗홈 춘천의 소중함을 깨닫고 춘천을 사랑하게 되면서 춘천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춘천에 얽힌 사건이나 인물들을 짬을 내어 찾아보기도 하다가 작년 가을에 엄마의 추천으로 이도우 작가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라는 소설책을 읽고 내 고장의 전설이 문득 궁금해졌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자기 지역의 전설들을 발굴해 지역을 홍보하는 활동을 한다. 그 계기로 두 주인공이 가까워지는 내용이 있는데, 그 부분에서 문득 영감을 얻었다! 

나 또한 우리 고장 춘천의 전설을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춘천의 전설들을 공부해 보기 시작했다.       



분명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가본 기억이… 가물가물한…? 청평사에 대한 전설부터 풀어보련다.  


춘천시 북산면에 위치한 청평사에는 슬픈 (but 무서운) 사랑 이야기가 깃들어있다.  


이와 관련된 세부적인 내용은 (예를 들어 중국의 어느 왕이었는지, 신라 시대의 사찰인지, 고려 시대의 사찰인지 등등...) 찾아본 사이트마다 조금씩 달라서 무엇을 믿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지만, 일단 설화는 설화일 뿐이니까 세부적인 내용에 집중하지 말고, 이야기의 큰 줄기만 기억하길 바란다.  


옛날 옛적 당태종에겐 어여쁜 공주가 있었다. 

당태종 하면 고구려를 무너뜨리려고 자꾸 쳐들어온 그런 힘도 세고 약간 무식한 불도저 같은 이미지가 있다. 

이런 전쟁터에서 칼을 휘둘러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당태종도 완전 딸바보였나 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이 나중에 장성해 결혼을 할 나이가 되었다. 

늠름하고 좋은 집안의 훌륭한 자제여도 사위로 들일까 말까 아까워 죽겠는데, 어느 날 딸이 웬 가난한 집의 미천한 신분의 총각과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태종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 않은가!

  

지금은 우리 신랑을 아들처럼 예뻐라 하는 우리 아빠도 내가 처음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고 했을 때 눈빛이 매우 흔들렸다. 딸을 갖은 아빠라면 당태종의 마음을 백번 이해할 것이다.  


사랑하는 딸을 그냥 주기도 아까운데, 별 볼일 없는 집의 사내라니 당태종 입장에선 극대노를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당태종은 우리가 아침 드라마에서 흔히 본 부잣집 엄마가 자신의 자식과 사랑에 빠진 가난한 상대를 떨어뜨리기 위해 모피를 한껏 휘감고 등장해 흰 봉투에 돈다발 쥐어주며 “우리 애 이제 안 만났으면 좋겠는데!” 하듯 모든 술수를 써서 이 총각을 공주에게로부터 떼어 놓으려고 백방으로 노력을 했다. 


총각은 고구려도 들쑤시고 들어갔던 당대 최고의 장수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본인을 공주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질겁하며 목숨이라도 부지하려고 알아서 떨어질 법도 한데, 정말 이 공주를 얼마나 사랑했던지 꿈쩍도 안 했다. 이에 당태종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그래서 이 총각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결국 당태종에게 끌려온 이 총각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사건이 있은 이후 참으로 이상한 일이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어느 날 밤 공주가 혼자 방안에 있는데 커다란 뱀이 스윽하고 기어들어와 공주의 몸을 아래서부터 위로 칭칭 감아 올라갔다. 공주는 기겁을 하고 이 뱀을 몸에서 떼어내려 했으나 뱀은 공주의 몸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뱀은 공주 옆에 바짝 붙어서 공주 얼굴에다 대고 혓바닥을 날름날름 놀렸다. 공주가 무어라도 먹으려 하면 뱀이 먼저 빼앗아 먹기도 하였다. 공주는 그 뱀이 바로 자기를 사랑했던 그 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쯤 되어서 나는 이 총각의 사랑이 더 이상 순수한 순애보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며 먹을 음식도 빼앗아 먹는 이런 표독스러운 모습이 어찌 사랑이란 말인가!  


무튼 이 총각은 억울하게 공주의 아버지로부터 죽임을 당한 후에 뱀이 되어 공주에게 다시 나타나 공주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그로부터 공주는 점점 병 들어갔다. 


그 무거운 뱀을 24시간 얻고 사니 몸도 힘들고 기운이라도 차리려고 뭐라도 먹으려 하면 뱀이 다 빼앗아 먹으니… 이건 안 아프고 배기겠나… 


겁이 난 당 태종은 당대 최고의 의원들을 다 불러다가 뱀을 떼어내려 했으나 역시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태종은 더 이상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공주를 뱀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이젠 부처의 힘을 빌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당태종은 공주에게 중국에 있는 유명한 사찰들을 찾아다니며 부처님께 빌라고 하였다. 그래서 공주는 중국 명산대찰들을 다 찾아다녔지만, 뱀이 떨어질 생각을 안 하고 공주는 계속 야위어만 갔다. 그래서 공주는 신라에까지 가보기로 마음을 먹고, 신라 땅에 있는 명산대찰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신라에 소문난 절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오늘날 강원도 춘천 (내 고장!)에 있는 청평사였다. 


공주는 청평사 입구에 있는 동굴에 들어가 뱀에게 말했다. 

“절에 들어가 음식을 좀 얻어 올 테니 잠깐만 내 몸에서 내려와 주겠니?” 

했더니 평소에는 말을 더럽게 안 듣던 뱀이 웬일인지 공주의 몸에서 쓰윽하고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공주는 “얼른 돌아올게!”하고 모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가다가 작은 웅덩이 같은 곳에서 목욕도 하고 (그간 뱀 때문에 제대로 씻지도 못했겠지…), 상쾌한 마음으로 절에 들어갔다. 

절에 들어간 김에 불공을 드리기로 마음을 먹고 공주는 불공을 드리기 시작했다.  


뱀은 오랜 시간 공주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데 돌아오지 않자 불안한 마음에 공주를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절 입구에서 공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뱀은 아무리 기다려도 공주가 나오지 않자 직접 절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뱀이 회전문에 이르자 갑자기 하늘에서 우당탕탕 벼락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벼락과 함께 세찬 비가 쏟아져 내렸다. 뱀은 회전문 앞에서 벼락을 맞아 죽었고, 폭우로 인해 이 뱀은 청평사 앞에 있는 계곡으로 쓸려 갔다. 불공을 드리고 나온 공주는 계곡으로 쓸려간 뱀을 보고 그래도 한때 사랑했던 남자에 대한 연민이 들어 이 뱀을 정성스럽게 묻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뱀으로부터 해방된 공주는 부처님의 은덕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청평사에 삼층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마침내 공주의 몸에서 뱀이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당태종은 너무 기뻐 금 세 덩어리를 청평사에게 보내 하나는 공주가 거처할 곳을 만들고, 또 하나는 공주의 귀국 여비로 쓰고, 남은 한 덩어리는 훗날 청평사 건물을 고칠 때 쓰라며 줬다. 당으로부터 받은 이 금 세 덩이를 스님들은 청평사 어디엔가 묻어두었다고 한다.  


이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청평사에 올라가다 보면 공주와 뱀이 머물렀다는 동굴이 있다고 한다. 이 동굴의 이름은 그래서 “공주굴”이 되었다. 또 공주가 마침내 뱀으로부터 해방이 되어 불공을 드리기 전 목욕을 했다는 웅덩이도 있다고 한다. 이 웅덩이는 “공주탕”으로 불린다. 또 청평사 내부의 삼층 석가탑은 공주가 부처님의 은덕으로 뱀이 마침내 떨어졌다며 감사해하면 세운 탑이다. 이 삼층석탑의 이름 역시 “공주탑”이다. 




이 설화를 찾아보고 기록하며 나는 왠지 모르게 당태종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당시 딸이 너무 염려스러웠을 것 같은 당태종. 

금지옥엽 키운 딸이 사랑한 남자가 하필 미천한 총각이라 골머리를 앓았을 당태종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당태종의 입장에서도 딸이 신분을 뛰어넘으며 사랑했다던 남자가 어떤 남자일까 궁금해 불러들여 기회를 주려했을지 모르겠다 (마치 바보 온달 평강공주 설화나 무왕과 선화 공주 이야기처럼). 

그런데, 내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장부답고 믿음직스러운 구석이 하나 없고, 왠지 모르게 우리 딸을 고생시킬 것 같은 불신을 주어 당 태종이 극단적인 방법을 취해서라도 이 총각을 내 딸로부터 떼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듯싶다. (뱀으로 환생해 공주를 스토커처럼 따라다닌 뱀의 성품을 보아하니 왠지 총각의 인품이 그다지 호방하고 믿음을 주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 

딸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을 알면서도 이런 결정을 내려야만 했던 당태종의 마음도 무척 아팠을 것 같다.  


그렇게 총각을 죽이고 났는데, 오히려 그게 화근이 되어 이 총각이 원한을 품어 뱀으로 환생해 딸을 괴롭히니 이 과정을 지켜보던 당태종도 당황스럽고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 이렇게 될지 몰랐겠지… 

나 때문에 우리 딸이 더 괴롭게 된 게 아닌가 수없이 자책을 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다가 마침내 신라 청평사에서 딸이 뱀으로부터 벗어나 건강해졌다고 하니 당태종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을 거다. 당태종에겐 춘천 청평사는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그. 리. 고.

뱀! 넌 정말… 아니었어… 그건 사랑이 아니야. 


처음엔 나도 미천한 총각이 좀 안타깝고 그랬다. 

왠지 바보 온돌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고 그랬지만, 뱀으로 환생하고 나서 하는 꼬락서니 보니 정말 당태종이 저렇게 뜯어말릴 만했다 싶을 정도로 너무 미저리 같았다.  

(미저리: 영화 "미저리"가 나온 이후 매우 고약한 정신 이상 스토커를 지칭할 때 쓰는 표현)


청평사에서는 이 뱀을 “상사뱀”이라고 명명하지만, 나는 “상사뱀”이라는 호칭이 너무 이 총각의 입장에서 붙여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공주에 입장에선 이 총각의 뱀으로의 환생을 사랑이라고 느꼈을까? 

나라면 매우 공포스러웠을 것 같다. 

"상사뱀"이라는 호칭이 스토커적이고 상대를 파괴하기에 이르는 이 뱀의 모습을 미화하는 것 같이 느껴져서 불쾌하기까지 하였다. 

내겐 그냥  미저리 뱀일 뿐이다.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공주를 진심을 다해 사랑했다면 결말이 뱀의 비참한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뱀이 공주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고지순한 사랑이었다면, 뱀이 죽고 난 자리에 상사화 같은 예쁜 꽃이 피어 공주는 그 꽃을 가꾸며 살았다 뭐 이런 식으로 끝나야 “상사뱀”이라 불릴 만하네~하고 납득이 갈 텐데, 뱀이 공주를 찾으러 들어오다 벼락을 맞고 죽어서 물가로 떠내려갔다는 결말이, 그리고 뱀이 죽고 나자 공주가 그에 대한 감사로 석탑을 세웠다는 것 자체가 뱀의 사랑이 받는 공주 입장에서는 사랑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게 아닐까?  


청평사는 공주와 공주를 사랑한 상사뱀에 관련된 전설로 잘 알려졌지만, 전설을 찾아보면서 나는 본의 아니게 재해석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청평사는 공주와 공주를 무척이나 사랑한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으로 미저리 같은 뱀을 퇴출해낸데 성공한 전설이 깃든 공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상사뱀은…무슨... 얼어 죽을… 


뱀, 너 가서 김광석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100번 듣고 와. 반성해.



 간판 사진 thanks to 나의 벗 mango :)


다음 편은 퇴계동에 얽힌 전설로 찾아오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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