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Chuncheon 2. 공지천의 전설
한국인이라면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라는 속담을 한 번씩 들어봤을 거다.
서당에서 삼 년 동안 매일 글 읽는 소리를 듣다 보면 개조차도 글 읽는 소리를 낸다는 뜻으로, 특정 분야에 전혀 학식이나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 할 지라고 그 부분에 오랜 시간 몸담아 있다 보면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속담은 나의 go-to 속담 (퍽하면 쓰는 최애 속담)이다.
신랑이 직장에 처음 들어가면서 얻은 포지션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다.
대학 때 전공이 화학 공학이고, 컴퓨터공학을 교양 수업으로 한 두 개 들었던 게 전부다.
그런 신랑이 첫 직장에서 얻은 포지션이 컴공 출신이 득실득실한 자리라 처음에 정말 걱정을 많이 했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내가 팀에서 민폐를 끼치면 어쩌지?”
“나 막 엄청 답답해하는 거 아니야?”라는 온갖 걱정을 쏟아부을 때,
숫자와 기계에 아는 것이 1도 없는 나는 그저 태평하게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듯, 거기서 조금만 시간을 보내면 너 머리 좋으니까 금방 따라갈 거야”라는 책임감 없는 위로만 해댔다.
(아마 신랑은 나를 보면서 무지 얄미웠을 듯싶다.
내 전공 외에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 내가 서당 개 삼 년을 운운하고 있으니…)
방금도 글을 쓰는데, 요새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남편이 코딩에서 뭐가 잘 안 풀리는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상을 짓길래 “너 아직 1년밖에 안 있었잖아. 2년은 더 채워야 풍월을 읊어. 조금만 더 해봐”라고 돌려보냈다.
나의 최애 속담이 알고 보니 (정확한 출처는 분명하지 않지만) 춘천시 퇴계동의 전설과 아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옳지! 이 속담이 춘천이랑 관련이 있어서 그동안 내 입에 착착 붙었던 것이로구만!”
그럼 이제 서당 개 속담과 관련된 춘천 퇴계동의 전설을 알아보자. (좋아 자연스러웠어)
퇴계동이라는 지명에서부터 유추가 가능하듯, 퇴계동은 퇴계 이황의 집 터가 있던 곳이라 오늘날 그 지역의 이름을 퇴계동이라고 한 것이다.
퇴계 선생이 지금의 춘천 퇴계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떠돌이 강아지가 퇴계 선생의 집에 들어오더니 글을 가르치고 있던 글 방 마루 밑에 쭈그리고 앉았다. 강아지가 배가 고파서 그러나 하고 퇴계 선생은 한 며칠 끼니때마다 강아지에게 밥을 챙겨 주었다. 그런데 배가 충분히 불렀을 법도 한데 강아지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마루 밑에서 글공부하는 것을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그렇게 글공부를 귀담아듣는 강아지가 퇴계 선생은 귀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여 자신의 밥과 반찬까지 나누며 강아지를 살뜰하게 챙겼다.
이렇게 강아지는 퇴계 선생의 집에서 3년을 청강했다. 이제는 배울 것을 다 배웠다고 생각했는지, 강아지는 3년이 되던 해에 홀연히 사라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웬 초립 둥이 (초립을 쓴 사내아이. 흔히 결혼한 사내아이를 일컫는 말)가 퇴계 선생 집에 찾아와 선생에게 큰 절을 하고 공손히 청하기를,
“안녕하세요, 저는 용왕 아들인데요, 아버지가 선생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셔서 이렇게 왔어요. 같이 가시겠어요?” 하자, 퇴계 선생은 조금 당황해하시며 “아니, 용왕님께서 왜 나를…?”
“제가 용궁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거기서 공부 하기를 좀 싫어해서 잘 안 하고 말썽을 피웠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화가 나셔서 벌로 저를 강아지로 만드시고 춘천 퇴계 선생님 마루 밑에 가서 삼 년을 엎드려 있다가 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3년간 선생님 마루 밑에서 밥도 잘 얻어먹고 글공부도 하며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어요. 제가 돌아갔을 때 저희 아버지가 이 모든 것들을 다 들으시고 너무 감사하시다고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으시다고 선생님을 용궁으로 모시고 오라고 하셨어요.”
그제야 지난 3년간 자신의 마루 밑에 있던 강아지와 눈 앞에 초립 둥이가 오버랩되면서 퇴계 선생은 마음이 놓였다.
“아니, 그런데, 나 같은 세상 사람이 어떻게 용궁을 가겠니?” 하니까
초립 둥이가, “아아, 그건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되어요.” 하길래 퇴계 선생은 초립 둥이를 따라갔다.
물가에 이르자 초립 둥이가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물길이 양쪽으로 갈라지더니 길이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이 초립 둥이는 춘천판 모세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초립 둥이를 따라 퇴계 선생은 용궁으로 들어갔고, 선녀들과 초립 둥이 가족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퇴계 선생은 용궁에서 잘 지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지상으로 돌아가는 날, 용왕은 퇴계 선생에게 짚 한 오라기를 주며, “이것을 조금씩 잘라서 반찬으로 드세요” 하였다.
그리고 초립 둥이와 선녀들이 퇴계를 지상 세계까지 안내해주었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때 초립 둥이가 퇴계 선생에게 당부하길, “제 아버지가 주신 거를 꼬리부터 자르지 마시고 머리부터 잘라 드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집에 돌아온 퇴계 선생은 자신이 선물로 받은 게 짚인데, 자꾸 이걸 뭘 반찬으로 먹으라니 머리부터 잘라먹으라니 하니까 무엇에 홀린 것 같기도 하고 하도 이상하게 여겨 반신반의로 지푸라기를 조금 잘라서 불에 살짝 지져보았다. 그랬더니, 자를 때에는 분명 지푸라기였던 게 막상 지지기 시작하니 고기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용궁에서 먹었던 정말 맛있는 고기였다.
신이 난 퇴계 선생은 그 짚 한 오라기를 오래오래 아껴 두고 먹다 마침내 지푸라기 끝만 조금 남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퇴계 선생은 끝만 남은 지푸라기를 들고 개울가에 가서 물에 담갔다. 그랬더니 그 지푸라기가 갑자기 수많은 물고기가 되었다. (춘천판 오병이어의 기적인가?)
그 후로는 개울에 손을 넣기만 하면 고기가 한 마리씩 잡혔다.
퇴계 선생이 지푸라기를 넣었던 그 개울이 바로 오늘날 공지천이고, 퇴계가 용궁에서 먹었던 그 정말 맛있던 물고기가 바로 공지어이다.
나에게 공지천은 매우 의미 있는 장소다.
공지천이 만약 영화 모아나에서 나오는 섬처럼 숨을 쉬고 인간과 교감하는 능력이 있다면, 공지천은 우리 온 가족의 역사를 다 지켜봤을 것이다.
공지천은 이십 대 우리 부모님의 데이트 장소였다.
가족 앨범에서 엄마 아빠의 연애 시절 때 사진을 보고 엄빠를 놀리는 걸 난 아주 재밌어한다.
그냥 왠지 모르게 쑥스럽기도 하고,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을 때의 엄마 아빠 모습을 사진으로 만나는 게 재밌다. 사진 속에서 사자 머리를 한 엄마와 잠자리 안경을 쓴 아빠가 너무 사랑스럽게 서로를 쳐다보는 사진들의 배경이 공지천이다.
또 백일장 대회나 사생 대회 같은 거를 깨나 즐겨 나갔던 초등학생 이도리가 공지천 광장 그늘 밑에 돗자리 깔고 쪼꼬만 미관을 찌푸리며 아주 열심히 쓰고 그렸던 추억이 있다.
조금 더 크고 나서는 매주 일요일 교회가 끝나면 엄마랑 오빠랑 공지천 주변 도서관에 가서 오빠가 호돌이 세계 여행을 열심히 읽고 있을 때는 나는 엄마에게 200원을 받아 율무차나 코코아를 뽑아 마시며 책은 안 읽고 도서관 주변만 빙빙 돌며 윤희순 의사 동상 앞에서 “이 사람은 누구디?” 했던 기억이 난다.
중고등학교 때는 아빠랑 공지천에 오리배를 타러 가기도 하고 공지천 운동장에서 축구하던 오빠를 기다리다가 집에 같이 간 기억도 있다.
아아, 또 춘천 토박이만 안다는 공지천 주변에 외관은 아주 허름하지만 맛은 아주 일품인 장칼국수 집의 그 울퉁불퉁한 면이 가끔 생각이 나 한국에 가면 아빠한테 거기를 가자고 조르기도 한다.
지금은 예전의 모습이 많이 사라지고 카페와 음악 예술 창작 공간이 내 어릴 적 추억의 장소들을 대신하게 되었지만, 아쉬움도 잠시, 공지천은 내가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도 내가 춘천에서 가장 즐겨 찾는 공간이 되었다.
무려 30년 전 엄빠가 데이트하던 장소에서 나와 신랑이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또 서울에서 친구들이 오면 꼭 공지천에 가서 사진도 찍고 디저트를 먹으며 전시 공간을 구경하기도 한다.
물이 가깝고 산이 보여 비가 오는 날에도 공지천 카페를 찾아 엄마랑 책도 읽고 수다도 떨고 과제를 하기도 하고, 아빠가 오랜만에 온 딸내미한테 뭐라도 사주고 싶어서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하면 난 항상 “공지천 공지천!”하면 아빠는 “너는 어릴 때랑 바뀐 게 하나도 없구나?”라고 말은 이렇게 하면서 다 큰 딸이 공지천 기프트 샵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신기해하는 걸 재미있게 바라보신다.
내가 지금 키의 반토막일 때부터 (아, 아니,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공지천은 나와 늘 함께 했다.
나와 우리 가족에게 많은 것을 선물해준 고마운 공간이다.
나와 공지천이 함께 나이 들어가는 느낌이라 공지천은 나에게 여전히 새롭지만 정감 가는 최애 장소다.
나중에 나와 신랑을 닮은 조그마한 생명체가 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면, 나는 유모차를 끌고, 혹은 아이의 손을 잡고, “옛날 옛적에 이 곳에 퇴계 이황이라는 할아버지가 살았는데~” 하면서 공지천을 방문할 것이다.
공지천은 아마 그 모습을 보고 “어이구 3대째네~” 할지도 모르겠다 ㅎㅎ
오늘도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다음 편은 춘천시 효자동과 관련된 전설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