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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ri Lee Apr 28. 2020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도리's Pick 서울 핫 플레이스 1: 이상의 집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가보고 싶은 장소들을 알차게 리스트로 만들어서 그중에 다는 아니더라도 꼭 몇 군데를 골라 다녀오곤 한다. 최근에 들어갈 때도 어김없이 리스트를 작성해갔지만 실천할 수 없었다. 부대찌개 편에서 짧게 이야기했듯 결혼식 때는 미국 호스트 부모님과 함께 가서 신랑과 나의 개인 시간이 없었다. 


아쉽지만 이 기회에 내가 가보고 싶은 장소들에 대해 사전조사를 충분히 더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공부를 하고 나중에 직접 방문하면 더 의미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그래서 이번 편부터는 도리’s Pick 서울 핫 플레이스들 몇몇 곳과 관련된 사전 지식을 쌓으려고 한다.  


그중 첫 번째 장소가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이상의 이다.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직진하다가 오른쪽으로 폭 들어가면 있는 이상의 집.     


내가 처음 이상의 집을 알게 된 건 어느 한 예능프로에서 서울 투어를 하는데 우연히 멤버들이 방문한 곳이 이상의 이었다. 그 장소를 보고 한참을 돌렸다가 멈췄다가 다시 돌렸다가 멈췄다가 하면서 꼼꼼히 봤다. 신기했다. “이상의 이라고?”




나는 고등학교 때 쓰기, 문법, 화법 과목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지만, 문학 시간은 좋아했다. 물론 작가 한 명 한 명을 깊게 공부할 여유는 없었지만, 그래도 문학 작품으로나마 엿보는 작가의 삶이나 그들의 성격을 추측해보는 게 무척 재미있었다. 어떤 시를 보면 마음속에 솜뭉치 같은 게 기분 좋게 퐁퐁 들뛰기도 하고 어떤 글을 보면 아릴 듯 아프기도 하고, 어떤 작품을 보면 기분이 서늘하고 매우 찜찜했다. 


나는 보통 문학작품을 읽고 나면 첫 느낌이 첫인상처럼 확 각인이 되어 첫 느낌으로 작품이나 작가를 기억하곤 했는데, 이상의 작품을 보고는,  예사롭지 않은 또라이라고 기억을 했다. 그리고 날개라는 작품이 이상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배우고 나서는, 이런 무능력하고 보잘것없는 인간! 하면서 기분이 안 좋았던 기억이 있다. 이상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별로”였다. 더는 그 또라이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에 한 예능에서 그를 비운의 “천재”작가라고 하기에, “왜 천재야? 저 또라이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내 첫인상 뒤에 가려버린 이상의 다른 면모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먼저 구경한 이상의 집을 꼭 가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이상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알아보기로 했다. 원래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상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가면 좀 더 많이 느끼고 배울 수 있을까 하여…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이다. 

이상이라는 필명이 생기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이후 이상의 절친 구본웅을 다루면서 이야기하겠다.  


이상은 매우 가난한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상의 부모님 너무 가난했던 탓에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아들의 비범함을 일찍이 아셨는지, 해경이만큼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게 하고 싶으셨나 보다. 그래서 이상을 큰아버지 집으로 입양을 보낸다. 큰아버지 집으로 입양을 간 이상은 그곳에서 공부를 할 수는 있었지만, 큰어머니가 친아들과 이상을 두고 차별을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상은 더들리네 집에 얹혀사는 해리포터처럼 큰아버지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살아야 했다. 해리포터가 하루빨리 더들리네 집에서 독립해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그토록 가고 싶어 했듯, 이상에게도 그러한 환경들이 더 열심히 공부를 해서 얼른 돈을 벌어 독립하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 그래서 매번 수석을 했고 결국 이상은 경성 고등 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한다. 오늘로 따지면 서울대 건축학과 정도로 이해를 하면 된다. 일제 강점기였던 이때 조선인들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과가 아니었다. 당시 이 과에 입학한 조선인은 단 2명. 그 와중에 한 명이 나가버리는 바람에 경성 고등 공업학교 건축과에는 이상이 유일한 조선인이었다. 이상은 일본인들 다 제치고 이곳에서도 수석을 해버렸다.


(해리포터 덕후 이도리는 자꾸 이상이 조선판 해리포터처럼 생각이 되어서 이상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상은 졸업하자마자 조선총독부 건축과의 건축기사로 취업을 한다. 그러니까 국가직 건축가가 된 것이다. 아주 보란 듯이 엘리트 코스들만 쭉 밟아온 이상이다. 국가직 건축가가 되었으면 성공의 달콤함을 맛보며 돈도 많이 벌고 이제 독립해서 자신의 행복을 꾸려나갈 법도 한데 이상은 아니었다. 갑자기 시를 쓰기 시작하고 작가로서의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이상은 폐병을 앓고 있었다. 폐병의 고통을 잊기 위해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증세가 점점 심해져 이제 각혈을 하는 지경에 이르자 이상은 더 이상 제대로 직장 생활을 하기가 어려워 건축기사 자리를 그만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돌입한다. 건축을 해오던 사람이라 그랬는지 이상은 를 쓰기보단 건축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상의 시는 우리가 흔히 봐온 시와 같은 형태가 아닌 시각적 구조적 요소가 다분한 새로운 형태의 시다.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이상만의 독특한 시각시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게 오감도다. 이상의 시를 보면 느낄 수 있는 기호적 표현의 모호성, 통상적 규범을 넘어서는 언어의 비문법적 결합과 의미의 해체로 이상의 시는 ‘기괴한’ 모습을 띄게 되었고, 그래서 이상의 시는 발표가 되면 시 자체보다 시의 해석 풀이에 더 많은 말이 따라붙는 그런 실험주의 시인이 되었다.  

이상의 오감도

이상은 자신의 이해할 수 없는 시각시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현상을 어느 정도 즐겼던 것 같다. 당장 이상의 시 연재를 그만두지 않으면 이상을 살해하겠다는 협박까지 하는 독자들의 반응을 보며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범주에 있는 자신의 천재성을 확인하며 이를 즐겼을지 모르겠다. 이상의 이러한 비범하고 위트와 재치 있는 성격이 당대 문학가들 사이에서는 아아, 그리고 기생들 사이에서는 인기였다. 이상은 춘천의 대표적 소설가 김유정 (하… 김유정의 러브스토리 또한 소름 돋는데, 나중에 그 썰을 한번 풀어봐야겠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쓴 작가 박태원 (외손주가 봉준호 감독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박태원 작가와 봉준호 감독은 닮았다), 그리고 조선의 로트렉이라고 불리는 화가 구본웅 (외손녀가 발레리나 강수진이다. 역시 예술적 dna 가 있나 보다)과 아주 절친했다. 이 패거리는 경성의 이 다방 저 다방을 쏘다니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왼쪽 넥타이가 이상, 가운데가 구보 박태원, 오른쪽이 번역가 김소운

이중 구본웅과의 인연이 각별해 구본웅과의 썰을 풀어보겠다. 이상은 글 쓰는 것도 좋아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도 매우 좋아했다. 그래서 친구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삽화는 이상이 그렸다. 이렇게 화가의 세계를 동경하던 이상에게 화가였던 구본웅은 좋은 물감 상자를 선물한 적이 있다. 이상은 이 물감 상자를 받고 너무 고맙고 기뻐 물감을 담고 있던 오얏 나무 상자라는 의미를 따서 자신의 필명을 이상이라고 하였다. 또 구본웅은 친구의 초상이라고 하는 작품을 그려 이상에게 선물했고, 나중에 이상이 자신의 다방 제비에 그 그림을 걸어 놓았는데, 친구의 초상은 다름 아닌 이상의 초상화였다.  

(왼)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이상 (오)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

구본웅은 경성의 어느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어린 시절 놀다가 잘못 떨어지는 바람에 척추 장애가 되어 꼽추가 되었다. 어린 시절 치료를 반복하다가 학교 입학이 늦어져서 결국 4년 동생들과 함께 초등학교를 들어가게 된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구본웅은 어린 시절부터 놀림과 따돌림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상만큼은 구본웅을 4살 위 형으로 깍듯이 대하며 구본웅 옆을 지켰다. 이렇게 이 둘은 쭈욱 함께 했다. 이상이 폐병을 심하게 앓아 건축기사를 그만두고 요양을 하러 황해도를 갈 때도 구본웅은 이상과 함께 했다.   


그렇게 이 둘은 백천 온천으로 요양을 갔는데, 그곳에서 이상은 기생 금홍을 만난다. 이상은 여성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위트와 독설이 어우러진 달변, 왠지 모르게 고독하고 샤프해 보이는 지성인의 이미지, 큰 키와 뚜렷한 이목구비에 폐병을 앓아 창백해 보이는 그런 뱀파이어와 같은 느낌이 어우러져 그 당시 많은 기생들이 이상을 따르게 했다.  


이상은 요양을 하러 간 와중에 금홍을 꼬셨다. 그리고 금홍을 서울로 데리고 와서 종로 1가에 이상의 다방 ‘제비’의 마담을 시킨다. 금홍이 너무 예뻐서 '다방 제비에서 커피를 마시면 금홍이처럼 예뻐진다', '금홍이처럼 날씬해진다'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한동안 다방 제비는 잘 되었다. 이상은 다방 제비를 거의 금홍에게 다 맡기다시피 하고 자신은 다방 운영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금홍의 양말이 아주 새카맣게 변할 정도로 금홍이는 혼자서 정신없이 다방 운영을 하였다.  


한동안 이상에게 헌신적이었던 금홍은 혼자 이렇게 먼 타지까지 와서 사업을 하는 게 지치고 서러웠다. 그러나 이상은 계속해서 무기력했고, 병세가 악화되었다. 나중엔 이런 삶에 너무 질려버렸는지 금홍은 이상을 ‘도무지 한 군데도 쓸모가 없는 병신 같은 인간’이라고 업신여겼다고 한다. 이상은 또 금홍이 술에 취하면 분풀이 대상이 되어야 했다. 금홍이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이상은 무서워서 며칠 씩 집에도 못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금홍이의 모습과 이상의 무능함이 소설 날개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상의 자전적 소설이라 불리는 날개에는 자신의 부인이 매춘하는 것을 묵인해오는 무능력한 ‘나’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상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금홍은 이상과 결별을 선언하고 떠난다. 금홍과 헤어지고 폐인이 된 이상에게 친구 구본웅은 여자를 소개해준다. 그 여자가 바로 구본웅의 이복동생 변동림이다. 당시 1930년대는 기존의 전통적이고 억압된 풍조에서 떠나서 자유연애를 유행시킨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신분과 계급, 부와 가난을 넘어선 다소 무모해 보이는 사랑이 미화되는 분위기였다. 그러한 풍조에서 자유 연애론자 변동림도 폐병 환자 이상에게 끌려 결혼을 하기로 한다. 일 한번 제대로 안 해보고 곱게 큰 변동림은 이상과의 결혼과 동시에 이상의 가난과 병시중과도 결혼을 한다.  


결혼 4개월 만에 이상은 일본으로 가겠다고 한다. 동경으로 건너가 재기를 꿈꿔보겠다는 것이다. 폐병 증세의 악화로 한국에서조차 일하기가 어려운 와중에 동경에서 제대로 된 직장을 찾기란 단연 무리였지만, 이상은 다른 무슨 꿍꿍이가 있었는지 기어코 동경을 가야 한다고 그런다. 일본으로 떠난 이상은 피로에 지치고 폐병이 심해지면서 행색이 이상해지자 일본 경찰들에게 거동수상자로 지목되어 체포가 된다. 그리고 차디찬 구치소에 감금이 된다. 이러한 상태로 이상은 두 달간 구치소에 방치된다. 그 안에서 병세가 악화되어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변동림에게 연락이 간다. 이상이 위독하니 급히 일본으로 오라는 연락이었다. 급히 달려온 변동림을 보고 “멜론이 먹고 싶구나”라는 말을 남긴 채 이상은 27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글쎄, 이상의 여자들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인생도 이상을 만나서 꼬이게 된 셈이다. 금홍도 이상을 따라오지 않았더라면, 타지에서 그렇게 발이 새카맣게 변하도록 고생하며 가난과 싸울 필요가 없었을 거고, 변동림 또한 결혼 4개월 만에 남편과 생이별해 일 년도 안되어 청산 과부가 될 필요는 없었겠지… 


그러나 이상 개인의 인생을 드리웠던 크고 작은 일들이 예측 불가한 그의 문학 세계와 인생관들을 설명해주는 단서가 아닌가 싶다.   


태어나길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큰아버지를 ‘아버지’라고는 부르지만 절대 그 가족 구성원이 될 수 없었던 소년 이상. 능력 있고 똑똑하더라도 식민지 사회에서 조선인은 한낱 주변인으로 머물러야 했음을 일찌감치 깨달았을 학생 이상. 자신의 비범함이 오히려 따돌림의 원인, 구설수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시인 이상의 마음은 점점 병들어 갔을 수도 있다. 폐병으로 인해 하루하루가 위태로웠던 이상에겐 어쩌면 미래를 생각하는 게 부질없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태어난 시대가, 애정 없던 가족이, 그리고 자신의 몸뚱어리가 이상을 박제된 천재로 만들었다. 잠재된 능력을 가졌지만, 시대가, 가족이, 그리고 병마가, 이상을 주체성이 없는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이상은 이렇게 소설 날개의 ‘나’와 같은 인생을 살다 자신과 동일시되던 ‘나’를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에서 먼저 해방시켜주고 27살의 이상 본인도 시대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병마로부터 해방을 한다. 이상의 죽음을 폐병으로 인한 병사라고 하지만, 그의 친구들은 폐병을 방치해 자신을 죽게 내버려 두었기에 자살이라고도 말한다.  


짧지만 끝까지 종잡을 수 없는 인생을 살았던 천재 또라이 이상이 20년 넘게 살았던 큰아버지의 집이 이상의 으로 새롭게 단장하여 2018년 12월에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 이 곳에서는 오감도, 날개가 실린 신문들을 포함해 자료 총 156점 정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구본웅이 그린 이상의 초상화가 실린 잡지, 다른 버전의 이상의 초상화, 이상의 흉상 등이 있다. 크지는 않지만, 이상의 인생도 짧았기에 그의 여러 작품들을 담아낼 공간으로서는 충분한 것 같다.   


다음번에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기면 꼭 이상의 집을 방문해 그 시절 살았던 비운의 박제된 천재의 삶과 그의 작품들을 다시 꼼꼼하게 되짚어 볼 것이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다음 편은 도리's Pick 서울 핫 플레이스: 독닙료리집으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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