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3대 여류 시인: 이매창 part 2 그리고 끝
“매창은 시와 거문고에 뛰어나 당대에 큰 명성을 얻으면서, 천민 출신의 시인 유희경,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 인조반정의 공신 이귀 등과 같은 많은 문인 관료들과 교유했다”라는 기록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매창의 인맥은 화려했다.
이미 이 전 편에서 유희경과의 인연을 살펴보았고, 오늘은 이매창의 soul mate였던 허균과의 인연을 살펴보려고 한다.
매창이 유희경과의 이별로 힘들어하며 식음을 전폐하고 있을 당시 허균은 전운판관 (공물과 조세를 지방에서 실어 서울로 나르는 일을 맡았던 벼슬)이라는 직책을 얻어 조운 (공물을 배에 실어 운반하는 것)을 감독하기 위해서 전라도로 갔다. 그러던 중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근처 부안에서 머물게 되었고, 이곳에서 매창을 만나게 된다.
허균의 조관기행에 매창과의 첫 만남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이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7월 23일. 부안에 도착하니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머물기로 하였다. 여기서 이매창을 만났다. 거문고를 뜯으며 시를 읊는데, 생김새는 시원치 않지만 재주가 뛰어나고 매력이 있다. 함께 이야기하는 게 즐겁고 재미있어서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서로 시를 주고받았다.
전편에서도 짧게 언급한 바가 있지만, 매창의 생김새는 확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시를 읊는 수준이 뛰어나서 매력이 철철 넘쳤다고 허균은 기록하였다.
허균은 (허난설헌 편 참고) 허엽의 막내아들로 자유로운 집안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학문을 접하며 자랐다. 집안 자체가 유교 사상에 얽매이지 않다 보니 허균은 하고 싶은 대로 다하며 남의 시선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성격이 너무 자유분방하다 못해 “남녀의 정욕은 본능이고, 예법에 따라 행하는 것은 성인이다. 나는 본능을 좇고 감히 성인을 따르지 아니하리라”라는 말까지 하며, 여행을 갈 때마다 자신이 마음에 드는 기녀 한 두 명을 꼭 데리고 갔다고 한다. 허균의 이러한 자유분방함과 여성 편력이 콤비를 이루어 새 지역으로 발령을 받을 때마다 서울에서 기생들을 데려다 놀면서 물의를 일으켜 탄핵 파직을 당하기도 일쑤였다.
유교적 굴레로부터 (지나치게) 벗어나서 기생을 (지나치게) 가까이 한 부분도 있지만, 이렇게 유교적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기에 여성과 남성의 구별도 두지 않았고, 그랬기에 기생 매창을 자신의 soul mate로 삼았던 것 같다. 매창도 높으신 분이 자신의 재능을 귀히 여기고 존중해주어 허균에게 마음을 조금씩 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둘이 사랑을 나눈 사이는 아니다. 매창은 당시 유희경을 마음에 두고 있었고, 허균은 매창이 자신의 친구 이귀가 마음에 둔 여인이라 친구와의 의리를 져버릴 수 없어 선을 딱딱 지켰다. 이렇게 둘이 처음부터 양반과 기생의 관계가 아닌 시적 영감을 주고받는 소울 메이트로 만났기 때문에 허균과 이매창은 오랜 시간 친구로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다.
허균은 부안의 정사암이라는 곳을 수리하여 그곳에 머물면서 매창과 자주 만나면서 함께 시를 짓고 불교와 도교를 공부했다. 유교 외에 불교, 도교, 서학을 이단으로 여겼던 조선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매창에게 이런 학문들을 자유롭게 가르쳤다.
허균이 매창을 남다르게 여겼던 또 다른 이유에는 허난설헌의 영향이 있었지 않았나 싶다. 허균이 매창을 만났던 시기는 허난설헌이 요절한 후였다. (허난설헌 편 참고) 난설헌이 죽기 전에 동생 허균에게 자신의 시를 모조리 불태우라고 부탁했었는데, 누이의 재능을 늘 귀하게 여긴 허균은 허난설헌이 죽은 뒤 시들을 불태우지 않았다. 오히려 흩어져있던 시들을 모으려고 애를 썼다. 심지어 자신이 외운 것들도 추가해 손수 난설헌고를 만들었다. 이것만 봐도 허균이 그간 얼마나 자신의 누이의 재능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아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누나 바보 허균이 시를 잘 짓는 매창을 보고 허난설헌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특히 더 매창의 재능을 아껴줬을 거다. 허균은 매창에게 누나의 시집 난설헌고를 주었고, 이를 읽은 매창은 크게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실제로 매창의 시집 매창집에 실린 시들 중에 서너 편은 허난설헌의 시와 유사하다고 한다.
이렇게 허균은 자유롭게 매창과 불경도 공부하고 시도 주고받으며 지낸다. 그러는 와중에도 허균은 여러 가지 이유로 파직과 복직을 반복한다. 시대를 앞서가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사람은 늘 튀기 마련이고, 시대를 잘 만나면 그의 천재성이 빛나지만, 아쉽게도 허균이 살았던 시대는 다름 아닌 조선시대였다. 허균의 이단아 같은 모습은 당시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요소가 되었고, 그렇게 파직을 밥 먹듯이 당했다.
그러나 허균은 이 또한 개의치 않았다. 파직을 당하면 다시 부안에 내려와 정사암에서 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매창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며 우정을 쌓아갔다. 그리고 늘 그렇듯 허균은 다시 복직이 되어 서울로 올라갔다.
유희경이 가고 그 빈자리를 채워주면서 시적 갈증을 해소하게 해 줬던 하나뿐인 친구 허균마저 훌쩍 가고 나니 더욱 서글퍼진 매창은 허균을 원망하며 그리워했다. 허균 또한 매창이 그리웠는지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계랑에게
봉래산의 가을빛이 한창 짙어가니, 돌아가고픈 생각이 문득문득 난다오.
내가 자연으로 돌아가겠단 약속을 저버렸다고 계랑은 반드시 웃을 거외다.
우리가 처음 만난 당시에 만약 조금치라도 다른 생각이 있었더라면,
나와 그대의 사귐이 어찌 10년 동안이나 친하게 이어질 수 있었겠소.
이젠 진회해를 아시는지. 선관을 지니는 것이 몸과 마음에 유익하다오.
언제라야 이 마음을 다 털어 놓을 수 있으리까.
편지 종이를 대할 때마다 서글퍼진다오.
기유년 (1609) 9월 허균
이 편지를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시작은 마치 “우리 친구 사이니까~”하며 여느 막역한 친구한테 보내는 편지 같지만, 곧이어 허균의 진심 어린 고백이 이어진다.
“내가 처음 널 봤을 때 만약 다른 마음을 먹었다면, 우리가 지금처럼 이렇게 오랫동안 친구로 남지 못했겠지…?”
뭔가 비유를 해보자면, 군대를 간 남자 사람 친구가 그동안 마음에 두고 있던 짝사랑 그녀에게 용기를 내어 보내는 편지 같은 느낌이 확 들었다.
평소에 여성 편력이 심해서 어딜 가나 서슴지 않고 기생을 끼고 다니던 허균도, 매창한테는 함부로 못했음을, 또 매창이 너무 소중해서 혹시라도 진심을 털어놓으면 관계가 틀어질까 봐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음이 드러난다.
그러곤, “아, 언제쯤 내 진심을 다 털어놓을 수 있을까… 너한테 편지 쓸 때마다 마음이 참 힘들다…”
뭐 이 정도면 허균, 고백 아닌가?!?!
(허균에게 바칩니다.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 가사에 허균, 이매창, 윤희경 셋을 대입하면 딱 허균's 마음)
그간 근 10년간 매창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 허균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매창을 대했음을 할 수 있다. (크~~~~~~)
자신이 진짜로 마음에 두고 있는 여인에게는 카사노바 허균도 어쩌지 못했다는 것을 매창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볼 수 있다. (크~~~~~~~~~~~~~~~~~~~~)
나는 허균을 지금껏 홍길동의 저자로만 알아왔지만, 이렇게 허균의 시를 통해, 또 그의 누이와의 관계를 통해, 그리고 매창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허균의 다방면의 모습을 보았다. 특히 오늘 이렇게 짝사랑하는 진심 어린 사내의 모습도 보니까 새삼 허균이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런 맛에 역사 공부하지. 암 그렇고 말고)
그러나 허균과의 우정과 즐거움도 유희경을 향한 그리움을 이기진 못하였는지 매창은 허균의 편지를 받고 이듬해에 죽고 만다. 서른여덟의 젊은 나이로…
허균은 자신의 soul mate이자 어쩌면 오랜 시간 짝사랑했던 매창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애계랑
신묘한 글귀는 비단을 펼쳐 놓은 듯
청아한 노래는 구름을 멈출 수 있어라
복숭아를 딴 죄로 인간에 귀양 왔고
선약을 훔쳤던가? 이승을 떠나다니
등불은 부용의 장막에 어둑하고
향내는 비취색 치마에 남았구려
망년에 작은 복사꽃 피어날 때
누가 설도의 무덤에 들를는지
처절한 반첩여의 부채요
비량한 탁문군의 거문고로세
나는 꽃은 부질없이 한을 쌓고
시든 난초는 다만 마음 상할 뿐
봉래섬에 구름은 자취가 없고
큰 바다에 달은 이미 잠기었다오
다른 해 봄이 와도 소소의 집엔
낡은 버들 그늘을 이루지 못하네
애계랑 시 제목에 관한 설명이 붙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계생은 부안 기생인데, 시에 능하고 글도 이해하며 또 노래와 거문고도 잘했다. 그러나 천성이 고고하고 개결(깨끗하고 굳음)하여 음탕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그 재주를 사랑하여 교분이 막역하였으며 비록 담소하고 가까이 지냈지만 난의 경에는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가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 그 죽음을 듣고 한 차례 눈물을 뿌리고서 율시 2수를 지어 슬퍼한다.
천성이 고고하고 개결하여 음탕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매창이 기생으로 태어났다는 게 참 한스럽고 안타깝다. 기생이 아닌 사대부 집안 딸로 태어났다고 더 행복했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허난설헌 편 참고), 죽을 때 지켜주는 사람 하나 없이 거문고와 쓸쓸히 묻혔다는 게 참 안쓰럽기만 하다. 비록 삶은 쓸쓸하고 애달팠으나, 허균과 같은 당대의 최고의 문장가가 매창을 그리며 시조를 써서 후대 사람들에게 매창을 기억하게 했다.
신분적 한계와 사회 구조적 문제로 매창은 일생을 그녀의 시처럼 늘 누군가를 경계하거나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 살아야 했다. 그런 그녀가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신분적 그리고 사회 구조적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롭게 시를 쓰고 교류하며 한 남자와 온전히 사랑하고 담뿍 사랑받으며 영원히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말년이 너무 불우했던 허균. 당대 천재들의 일생은 왜 그렇게 다 비참했는지… 허균을 포함한 허 씨 5 문장들의 말년이 다 불우했다. 많은 사람들의 시기와 노여움을 사 결국 능지처참으로 생을 끔찍하게 마감해야 했던 허균도, 하늘나라에선 부디 그의 천재성을 인정받고 존경받았으면 좋겠다. 또 매창을 만나 편지로 전했던 진심을 직접 전했으면 좋겠다. (아님, 제가 알려드린 가질 수 없는 너를 열창해보시는 것도...)
이번 편을 끝으로 내가 기획했던 조선 3대 여류 시인 시리즈를 마친다.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이 시리즈를 쓰기 위해 허난설헌, 황진이, 그리고 이매창까지 그녀들의 인생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까먹었던 시도 다시 기억해내고, 새로운 시도 접하며 그녀들의 시적 감수성과 시 뒤에 숨겨졌던 눈물들과 여러 이야기들을 알게 되었다.
각 편을 구성할 때마다 마치 내가 조선시대를 시간여행 하면서, 인물 한 명 한 명을 만나서 끊임없이 대화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어떤 상황에서 느꼈을 감정에 공감하며 함께 흥분하기도 하고, 어쩔 땐 시와 어울리는 노래를 찾으면, ‘어머 이거 들어봐요’하며 속으로 들려주기도 하며 주책맞게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한 인물에 대해 다각도로 깊이 있게 공부하다 보니 나중에는 역사 속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고 그저 엑스트라로 지나간 인물들의 삶마저 궁금해졌다.
허난설헌, 황진이, 이매창의 시 그리고 마지막으로 허균의 진심 어린 편지를 보며 이 모든 글들이 역사 속에 남겨진 “기록”으로 누워있는 게 아니라 오늘날 누군가의 진심 어린 “마음”으로 생동감 있게 뛰어다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와 편지를 읽고 분석할 때 나의 감정도 함께 요동쳤다.
이번 시리즈를 쓰면서 “여성” 혹은 “기생”이라는 이유로 서러움을 느끼며 살아야 했던 인물들을 재조명하면서 참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간 너무 감정 이입하며 공부를 해서 이제는 어디선가 허난설헌, 황진이, 이매창의 이름만 들어도 “어, 나 아는데!”하며 마치 어제 통화한 친구처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시리즈 서두에 썼듯, 조선 3대 여류 시인들을 처음 발견했을 땐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 마음에 쏙 드는 빈티지 쥬얼리들을 발견한 느낌이었다고 서술한 바 있다.
시리즈를 다 쓰고 나니 그 마음에 쏙 드는 빈티지 쥬얼리들을 집에 데리고 와 오랜 세월의 흔적들을 보며 때도 벗겨주고 예쁘게 광을 내어 내가 가장 아끼는 보석함에 쏙쏙쏙 넣은 느낌이 든다. 참 보람되고 뿌듯하다.
지금까지 조선 3대 여류 시인 시리즈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 도리's 픽 서울 핫 플레이스: 이상의 집으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간판 사진 thanks to 신혜인 & MAN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