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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ri Lee Apr 23. 2020

먼저 매창에게 미안하다고 전하고

조선 3대 여류 시인: 이매창 part 1.

송도에 황진이가 있다면 부안에는 매창이가 있다는 말이 떠돌았을 정도로 부안의 기생 이매창 또한 조선 시대의 손꼽히는 여류 시인이었다. 황진이의 시는 카리스마와 시크한 매력 뿜뿜이라면 이매창의 시는 절절한 그리움이 짙게 배인 순종적인 여성의 향기가 난다.  


그러나 매창이 마냥 순종적이고 지고지순한 타입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매창은 황진이처럼 자신을 하대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양반들 앞에서는 누구보다 꼿꼿했다. 

자신을 깔아뭉개는 양반들을 아주 품위 있게 멕였다.  

비유를 해보자면,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장가네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서 자기보다 약자의 위치에 있는 박새로이네를 괴롭히고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할 때 (나와 같은) 시청자들은 고구마를 한 50개 먹은 것 같이 분하고 답답하다. 그러나 (돌덩이 bgm이 싹~ 깔리면서) 박새로이의 담대하고 소신 있는 행동이 판도를 확 바꿔 놓으며 시청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준다. 이러한 사이다 같은 모습이 매창의 시에서 나타난다.  


매창의 담대하고 지혜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가 증취객이다.  


취한 손님이 명주저고리를 잡으니
명주저고리 손길을 따라 찢어졌네
명주저고리 하나쯤이야 아까울 게 없지만
다만 주신 은정까지도 찢어졌을까 두려워라 


이 시는 술을 거하게 먹고 취한 양반쯤 되는 취객이 매창의 저고리를 함부로 풀려고 하자 그 손님을 돌려 까기 위해서 매창이 즉석에서 만든 시조다.  


기생이 출세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집안이 빵빵한 양반의 눈에 들어서 그 집 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갑을 관계가 양반들이 기생을 자기 멋대로 하대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양반들은 기생을 자신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노리개 정도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당대 팽배했던 기생에 대한 고정관념 아래, 술에 취한 양반이 ‘야 매창이 너도 결국 양반의 첩이 되고 싶은 거잖아~’하는 생각으로 매창의 의사도 묻지 않고 다른 손님들 앞에서 매창의 저고리를 벗기려고 했던 것이다. 이가 부득부득 갈릴 노릇이지만, 매창은 당황하지 않고 “저고리 따위 찢어지는 건 상관없지만, 양반 너 새끼 체면까지 찢어질까 봐 그게 두렵구나”하는 의미가 담긴 시를 읊으며 자신에게 함부로 대한 양반을 도리어 망신 주었다. (크~~~ 매창 언니가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다!)  


다른 양반들에게는 한없이 도도했던 매창이가 마음속에 오래도록 품었던 정인이 있었으니, 바로 천민 유희경이다. 황진이에겐 서경덕이 있었다면, 매창에겐 유희경이 있었다.  




매창과 유희경의 첫 만남은 임진왜란 직전이었다.

유희경의 나이가 쉰을 바라보고 매창이 이제 막 스무 살이 되려던 때였다. 

(나이 차이… 무엇….)

당시 천민 출신이었지만, 뛰어난 글쓰기 능력으로 양반 사대부들 사이에서도 유명하고 이들과 함께 어울려 시를 짓곤 했던 유희경은 이미 부안에서도 유명했다. 유희경 또한 부안 기생 이매창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다. 

유희경이 여행을 하던 중에 이매창을 찾아 나섰고, 이전까진 이성에겐 절대 눈길조차 주지 않던 이 두 사람이 첫 만남에 서로에게 반해버렸다.  


많은 기록에 의하면, 아내 외에 다른 어떤 여성도 가까이하지 않았던 유희경이 매창을 만나고서는 처음으로 파계했다고 전해진다. (이거 뭐 박수를 쳐줘야 할지…) 


아니, 당연히 아내 외에 다른 여성에겐 눈길을 주어선 안 되는 게 상식이지만, (침착해 이도리) 이때만 해도 양반들은 부인 말고도 첩을 여러 명 두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기생집을 들락날락했던 것만 봐도 유희경처럼 아내 한 명만 두는 게 흔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난 제 명에 못 살았다) 


매창에게 유희경이 뻑 갔구나…를 알 수 있는 시가 있으니, 그게 바로 계랑에게라는 시다.  


남쪽 지방 계랑의 이름을 일찍이 들었는데
시와 노래 솜씨가 서울에까지 울리더군
오늘 그 진면목을 보고 나니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듯하구나 


참고로, 다음 편에서 다룰 매창의 study mate나 다름이 없었던 허난설헌의 남동생 허균은 매창과 아주 각별한 사이였다. 둘은 시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았다. 매창이 죽고 나서 허균이 자신의 mate가 떠난 것을 슬퍼하며 쓴 글에 따르면 매창의 얼굴은 영~ 아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허균의 기록을 요약을 하자면, 얼굴은 영 아닌데, 시를 짓는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허균이 이렇게까지 표현할 정도면 매창의 얼굴은 그다지 미인형은 아니었는데, 유희경에게는 선녀로 보일 정도였으니 매창에게 빠져도 단단히 빠졌었나 보다.  


아아, 여기서 유희경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면, 유희경은 앞서 언급했듯 천민 출신이었다. 어려서부터 효자로 유명했다. 아버지가 죽고 나자 유희경은 아버지 무덤 옆에 움막을 지어 살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혼자서 3년상을 치른다. 천민 출신의 꼬마가 자기 아비 3년상을 치른다는 소문을 듣고 근처 어느 양반이 유희경을 찾아갔다. 어린아이가 돌아가신 아버지께 효를 다 하는 모습을 갸륵하게 여기고 데리고 와서 제대로 된 장례 절차를 가르친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서부터 장례 예법을 배운 유희경은 조선 최고의 장례 전문가가 되어서 왕실 장례도 도맡아 하게 되고, 유명한 사대부 집안과도 왕래를 하며 이들의 장례들도 책임지게 된다. 이러면서 양반 사대부들과 자연스럽게 교류를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유희경의 뛰어난 글 솜씨는 유희경을 국상 일인자 타이틀을 넘어 당대 뛰어난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게 했다.  


이렇게 매창과 유희경은 특별한 공통점들이 많았다. 같은 천민 출신에 시로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이 둘은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되며 서로 가까워졌다. 이 둘은 28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쓰읍….) 연인으로 발전하여 짧은 시간 동안 뜨겁게 사랑을 했다.  


그러나 둘의 사랑이 오래가지 못했으니… 임진왜란이 터져서 유희경이 참전을 해야 했다. 유희경과 매창은 그렇게 생이별을 했다. 매창은 부안에서 하염없이 유희경을 기다리고, 유희경은 한양에서 매창을 그리워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유희경은 보살펴야 할 가족이 있어서 한양에 머물러야 했기에 매창을 보러 부안까지 갈 수가 없었다. 이렇게 서로 그리워하다가 15년 만에 유희경이 다시 부안을 찾는다. 육십이 넘은 유희경이 매창을 만나지만,  열흘 남짓 머무르고 다시 한양으로 떠난다. 기다린 시간과 남겨질 그리움에 비하면 너무도 짧은 만남이었다.  


짧은 만남과 갑작스러운 이별이 서로를 더 애틋하게 만든 탓이었을까, 부안에서의 짧은 만남 이후 매창은 유희경을 하염없이 그리워하다가 병이 든다. 그리운 마음을 달래려고 매창은 붓을 들었다. 이때 남긴 시들의 주된 정서는 단연 “그리움”이다.  


규원중 
옥 같은 동산에 배꽃 피고 두견새 우는 밤
뜰 가득 달빛 더욱 서러워라
꿈에나 만나려도 도리어 잠마저 오지 않고
일어나 매화 핀 창가에 기대러 오경의 닭소리 듣네
대숲엔 봄이 깊고 날 밝기는 멀었는데
인적도 없는 작은 정원엔 꽃잎만 흩날려라
고운 거문고로 <강남곡>을 뜯으니
끝없는 시름, 마음엔 한 편의 시를 이루네 
(현대어 풀이)
규중에서 서럽다 
예쁜 정원 배꽃에 두견새 우는데, 
뜰에 가득한 달그림자 더욱 처량하네.
꿈속에서 만나려도 도리어 잠이 오질 않아
일어나 매화 핀 창가에 기대니 새벽닭이 우네.  
대숲엔 봄이 깊어 새벽빛이 더딘데,
뜨락엔 인적없이 꽃잎만 흩날리네.
좋은 쟁과 거문고로 강남곡을 마치고
수많은 근심을 한편의 시로 품었네. 


매창이 밤새 유희경을 그리워했음을 알 수 있다. 현실에서 만날 수 없어 꿈에서라도 보려는데 너무 그리운 나머지 잠도 안 온다. 평소 거문고를 너무 좋아해 자기 죽으면 거문고도 함께 묻어달라고 했고, 실제로도 매창이 죽은 뒤 아끼던 거문고를 함께 묻어줬을 정도로 매창은 거문고를 사랑했다. 거문고에 기대어 외로움을 달래려고 연주한 곡이 왜 하필 또 강남곡이다냐…. 유희경이 있을 강남을 생각하며 또 한없이 그리워했겠지. 


매창의 시에는 직접적으로 유희경을 뜻하는 장치들이 여기저기 나타나 있다. 

규원중에도 강남곡을 연주한다는 부분이 그랬고, 춘사라는 시에도 직접적으로 언급되었다.  


봄바람이 불어오는 삼월에
곳곳에서 지는 꽃잎 흩날려요
비단 옷 입고 상사곡을 불러 봐도
강남 간 임은 돌아오시지 않네요 


저번처럼 불현듯 나타날까 하여 고운 비단옷을 입고 애타게 기다리는데 강남 간 유희경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 시들 외에도 매창의 시에는 그리움, 그것도 정확한 대상, 유희경을 향한 그리움이 짙게 배어있다.  

이매창의 시를 보면, 유희경과 헤어지고 난 후에는 들숨 날숨이 온통 그리움이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사무치는 그리움에 견딜 수 없어하다가, 상사병의 정점에서 쓴 다음의 시 이화우 흩뿌릴 를 끝으로 고통스러운 생을 마감한다.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그러나 이 소식을 알리 없는 유희경은 얼마 후 백발노인의 모습으로 다시 부안을 찾는다. 

그러나 매창은 이미 떠나고 없다. 

뒤늦게 매창의 죽음을 알게 된 유희경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긴다.  


맑은 눈 하얀 이에 푸른 눈썹 아가씨야.
 홀연히 구름타고 간 곳이 아득하구나.
 꽃다운 넋 떨어져 저승으로 가버리고
 그 누가 너의 옥골 고향 땅에 묻어주리.
 객지의 초상이라 문상객이 다시 없고,
 오로지 경대만 남아 옛 향기 그윽하다.
 정미년에 다행히도 다시 만나 즐겼는데
 이제는 슬픈 눈물 옷을 함빡 적시누나.       




(일단 미리 매창과 유희경에게 깊은 사과의 마음을 전하고 나의 감상평을 시작하겠다) 


나는 허난설헌 편에서 허초희의 시각으로 남편 김성립을 바라본 적이 있다. 물론 그 시절에는 양반 사대부가 첩도 여럿 두고 기생집 오가는 게 죄는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어린 아들이 죽어가는 와중에 또 본처 허난설헌이 병들어 죽어가는데도 김성립은 기생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물론 그 기방에 있던 기녀가 매창은 아니지만, 본처 허난설헌이 시집살이 가운데 느꼈을 외로움과 서러움을 살펴본 입장에서 유희경과 매창의 사랑이 막 그렇게 애틋하고 깊이 공감이 되지 않는다. 


물론 그리웠지… 그리워서 병이 났지… 서로는 사랑이었겠지…

그런데, 유희경 부인의 입장에선 이 둘의 사랑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40대에 만난 인연을 20년이 넘게 붙들고 그리워하고 있으니 본처의 입장에서는 정말 속 터지고 자존심도 상했을 것 같다. 


그래, 잘 봐줘서 사랑 없이 정략결혼을 했다고 치자! 그래도 어쨌든 결혼을 했고, 수십 년의 세월을 본처가 해주는 밥을 먹고 빨래해주는 옷을 입고 하면서 유희경의 육신은 본처의 손길과 정성으로 채워지는데, 정신과 마음에는 딴 여인을 품고 있다면 본처의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고 슬픈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몸도 성치 않은데 20년 전에 만난 기생을 보겠다고 서울에서 그 먼 부안까지 간다고 했을 땐 정말 억장이 무너졌을 것 같다. 당시 유희경의 부인은 어떤 상황이 었을지 모른다. 체념했을 수도 있지만, 허난설헌과 같이 힘들고 외로운 상황이었다면 유희경의 부안행은 정말 본처 마음에 대못을 박는 일이다. 부인의 입장에선 매창이가 원망스러웠을 수도 있다. 오늘날 같으면 진작에 이혼 서류를 들이밀었겠지만, 이때 여성들은 그냥 참고 살아야 했다. 참고 살았다고 그들의 고통이 덜 하지는 않았을 거다. 매창을 그리워하며 허구한 날 그리움이 짙게 베인 시를 읊조리는 유희경의 모습을 보고 본처는 뒤에서 피눈물을 흘렸을지 모르겠다. 마치 허초희처럼…  


물론 매창도 가엽다. 만약 양반집의 귀한 딸로 태어났다면 진상 고객 술 접대 안 해도 되고 원하는 시 마음껏 쓰며 유희경과의 사랑을 조금 더 자유롭게 했을 수도 있겠지만, 태어나길 기생으로 태어나 적성에도 맞지 않은 일을 하며 사랑하는 정인도 품지 못하는 운명으로 태어났으니 가엽다. 매창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잘 알겠고, 그녀의 한이 어린 시는 너무 절절하다 못해 아프다.  


시의 정서는 아름답고 좋으나, 내 지식의 지평이 넓지 못하고 자꾸만 오늘날의 시각에서…또 허난설헌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해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매창과 유희경의 사랑을 진심으로 응원해 줄 수 없다. 

이 둘의 사랑과 시를 좋게 생각해주고 평가해줄 많은 학자들이 있을 테니, 시의 완성도나 작품성은 다른 전문가들에게 맡기겠다. 그러나 시의 문외한인 내가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평을 솔직히 나누자면 나는 이 둘의 사랑을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든다.


'그 당시는 첩도 두고 기생을 가까이하는 게 흠이 되지 않았던 일이다' 혹은 '시를 있는 그대로를 보지 왜 굳이 이 둘의 사랑을 불륜으로만 보느냐' 하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맞다. 맞는 말이고, 잘 알겠지만, 이 둘의 시가 어쨌거나  유희경의 파계의 결과물로 탄생한 시들이라는 걸 다 아는 이상 이 둘의 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힘들다.  


허난설헌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입장에서 이 둘의 사랑은 글쎄… 자꾸 유희경의 본처가 허난설헌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마음이 좀 그렇다.  


매창에겐 정말 미안하다. 미안하지만, 매창의 시를 읽고 본처가 가엽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매창 미안해요. 조선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겠죠 아마도...



다음 편은 조선 3대 여류 시인: 이매창 part 2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간판 사진 thanks to MANG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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