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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ri Lee May 07. 2020

다람쥐 마을 이야기

차이나는 클라스: 동북공정, 중국은 왜 고구려를 훔치려 하는가?

옛날 옛날에 다람쥐 마을이 있었다. 

다람쥐 마을에는 도토리가 넘쳐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웃끼리 사이가 좋았다.  


다람쥐 마을 옆에는 두더지 마을이 있었다. 

욕심 많은 두더지들은 주변의 작은 토끼 마을, 개미 마을, 참새 마을들을 괴롭혀서 각 마을에서 토끼풀, 설탕, 곡식 등을 약탈해오곤 했다. 다람쥐 마을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람쥐 마을도 매년 두더지 대장에게 도토리를 바쳐야 했다.  


다행히 다람쥐 마을에는 용맹한 장수가 많았다. 그래서 때때로 두더지 마을이 너무 심하게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면 용맹한 다람쥐 장수와 지혜로운 다람쥐 외교관들이 두더지 대장을 혼내주기도 했다. 그러나 다람쥐 마을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주변 마을의 욕심 많은 장수들에 의해 다람쥐 마을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때때로 무능한 다람쥐 대장들이 백성 다람쥐들을 못살게 굴기도 하고 급기야 이기적인 다람쥐 관료들의 욕심으로 결국 다람쥐 마을은 아랫동네 원숭이 대장에게로 넘어갔다. 


아랫동네 원숭이 마을은 늘 다람쥐 마을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질투했다. 

원숭이 대장들은 다람쥐 마을에 쳐들어와 수많은 다람쥐들을 죽였다. 그리고 오랜 기간 횡포를 부리고 약탈을 했다. 다람쥐 마을의 전통과 문화를 다 파괴해버리고 다람쥐 마을의 중요한 결정들을 원숭이들 멋대로 해버렸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원숭이들이 다람쥐 마을을 떠났고 다람쥐 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오는 듯하였다. 

그러나 다람쥐 마을 내부에 싸움이 일어난다. 그리고 마을 한가운데 넘을 수 없는 담장이 생긴다. 

다람쥐 마을은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나뉘고 영원히 담장을 넘을 수 없게 된다.  


다람쥐 마을에서 이런 수많은 일들이 생기는 동안 두더지 마을에선 두더지 대장들이 토끼 마을, 개미 마을과 같은 작은 마을들을 다 두더지 마을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토끼에게, 개미에게 두더지가 되라고 강요한다. 토끼와 개미들은 무서움에 오들오들 떨면서 욕심쟁이 두더지 대장의 말대로 두더지처럼 행동해야 했다. 몸을 갈색으로 칠하고 땅을 파고 다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윗동네 다람쥐들이 도토리를 찾으러 나갔다가 낯선 땅굴들을 발견을 했다. 의아한 다람쥐들은 땅굴을 들어가 봤다. 그 안에서 땅굴 여기저기에 표지판을 달고 있는 두더지 패거리를 만났다. 놀란 다람쥐들은 두더지들에게 말했다 “여긴 다람쥐 마을입니다. 두더지들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나가주세요” 했더니 두더지들은 “아니야, 여기 우리 땅이야”하며 표지판을 가리켰다. 다람쥐들은 표지판을 읽고 너무 놀라 들고 있던 도토리들을 다 쏟았다.  


할아버지 다람쥐 할머니 다람쥐들의 사진들이 모두 두더지의 모습으로 이상하게 칠해져서 있었다. 다람쥐 마을이 원숭이들에 의해 지배당하고 서로 싸우는 동안 두더지 대장들은 은밀하고 치밀하게 다람쥐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훔쳐와 두더지 후손들에게 두더지 마을의 것처럼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이제 두더지 마을의 아기 두더지들은 다람쥐 마을의 문화와 역사들을 두더지 마을의 문화와 역사라고 믿고 자라고 있다. 다람쥐 마을의 아기 다람쥐들이 열심히 역사를 배우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문화를 정확히 알지 않으면 욕심 많고 힘센 그리고 목소리가 아주아주 큰 두더지 마을에게 다람쥐 마을의 정체성을 빼앗길 수도 있다. 그래선 안될 일이다. 절대로.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발해에 관해 배웠다. 발해가 시험문제에 등장하면 꼭 나오는 문제가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증거들'을 찾는 것이다. 발해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당연히 우리의 것인데, 왜 굳이 우리 것이라고 증명하는 증거들을 외워야 해?”  


증거라면 뭔가 명확하지 않거나 근거가 불충분하여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주장을 탄탄하게 뒷받침하기 위해서 대는 것인데, 왜 분명한 우리 역사를 증명하기 위해 증거들을 배워야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전 중국 동북공정에 대한 강의 (차이나는 클라스 109회)를 보게 되었고, 왜 이렇게 증거를 대면서까지 우리의 것을 지켜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목소리가 크고 수적으로 우세한 두더지들에게 우리의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두더지 마을의 엉터리 논리를 알아야 했고, 왜 그들의 논리가 엉터리인지도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이건 당연히 우리 것이니까… 상대할 필요 없어… 하고 무시하면 다람쥐 마을이 엉터리 두더지 표지판으로 도배가 될 수도 있다. 




강의에서 배운 중국의 논리 위주로 요약을 해보겠다.  


고구려는 중국 땅에 세워졌으니 중국사!” 

'옛 고구려의 땅은 현재 중국 영토에 해당하니 고구려는 중국 역사다'라는 논리다. 쉽게 말해 뭐든 중국 땅에 있으면 다 중국 것이라고 하는 이 논리는, 마치 우리가 초등학교 때 짝꿍한테 ‘이 선 넘어오면 다 내 거’ 하는 낯부끄러운 억지와 같다. 현재 영토를 기준으로 이 땅에 있었던 모든 역사는 모두 중국의 것으로 편입하려 하는 중국의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다. 

주렁주렁 열린 우리 집 감나무의 가지가 담장을 넘어 옆집에 걸쳐져 있다고 치자. 그러자 옆집에서 우리 집에 들어와 감나무가 담장을 넘었으니 이 감나무는 다 우리 것이오 하고 감나무에 자기네 팻말을 써붙인다면, 경찰에 신고할 일이다.  


고구려는 독립국이 아닌 중국의 지방 정권이다” 

중국에게 고구려가 조공을 바쳤기 때문에 고구려가 중국의 속국이라는 논리다. 조공과 책봉은 동아시아의 외교적 관례였다. 조공을 바치는 관습 때문에 중국의 지방 정권이라고 하는 논리라면, 당시 중국에 35개 이상의 국가가 조공을 바치고 있었는데, 그럼 이 모든 국가가 중국의 속국이라는 말인가? 고구려뿐만 아니라 신라, 백제, 왜도 당시 중국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었는데, 그럼 우리나라랑 일본도 중국의 지방정권이란 말인가? 외교적 관례로써 당시 힘이 센 국가에게 침략하지 말고 잘 지내보자는 의미에서 행해졌던 호의를 권리인 줄 아는 중국의 안하무인적 중화사상의 극치를 보여주는 논리다.

(제발 선물은 그냥 선물로 받아들여. 의미 부여하지 말고. ) 


많은 고구려인이 중국에 흡수, 고구려는 중국사다”  

668년 나당 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나라 잃은 고구려인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이중 많은 고구려인들은 당나라로 강제 이주를 갔다. 중국의 논리는 전쟁 포로로 당나라로 끌려간 고구려인들은 중국인이고,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라는 것이다.  


강제 이주다. 말 그대로. 전쟁 포로로 끌려간 것이다. 이들의 복식이 고구려에서 당나라 스타일로 바뀌었다고 해서 고구려인이 갑자기 중국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어려운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미국으로 이주를 가고 현대사에서는 많은 분들이 광부로 간호사로 독일로 이주해 가셨다. 그러나 그분들이 타지로 가셨다고 해서 일본인이 되고, 미국인이 되고, 독일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분들의 정체성은 한국인이고, 이분들의 이주 역사 또한 한국의 역사다. 고구려 전쟁 포로도 마찬가지다. 전쟁 포로로 당나라로 끌려갔다고 이들을 한순간 중국사람으로 바꾸고 이들의 역사를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분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짓이다.  


발해는 당나라의 군정 기구이자 지방정권이다” 

당나라 포로로 끌려간 수많은 고구려인들은 끊임없이 저항을 했고, 고구려인들과 함께 저항을 했던 민족이 말갈인들이다. 이들이 당나라를 부정하고 도망 나와 건국한 국가가 바로 발해다. 그리고 발해를 세운 인물은 고구려인 대조영이다. 그러나 중국은 고구려에 이어 발해까지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다. 그들의 논리는 발해 인구의 80%가 중국의 소수민족 말갈족이기 때문에 발해가 중국의 역사라는 것.  

말갈족이 발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에 발해는 중국사라는 논리는 앞뒤를 뚝뚝 잘라 본인들이 보고 싶은 단편적인 역사만 바라보고 그것을 극대화시킨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발해의 80% 피지배층은 분명 오늘날 중국의 소수민족에 해당하는 말갈족이지만, 20%의 지배 계층은 고구려인이었다. 한때 전성기를 누리고 튼튼한 고대국가의 기틀을 갖췄던 고구려인들이 지배층이 되었다. 그렇게 고구려인이 지배층이 되면서 발해의 중앙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모든 것들이 고구려의 것을 계승했다.


그렇기 때문에 발해 생활 곳곳에 고구려의 흔적들이 발견된다. 돌사자상, 모줄임천장, 석등, 연꽃무늬 기와, 이불병좌상 등등이 모두 고구려를 계승한 문화 예술품이다. 또한, 온돌!! 온돌은 우리 민족 고유의 것이다. 고구려 시대 때부터 이어오던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온돌 양식은 우리 민족이 우리 땅에서 만든 우리의 고유의 것인데 발해에도 고구려의 온돌 양식이 발견된다.  


중국의 억지 주장을 정면 돌파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 근거는 발해 왕이 일본에게 보냈던 국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발해 왕의 편지는 나 고려왕은~”로 시작을 한다. 당시 고구려를 고려라고도 불렸다. 내용은 이러하다 우리는 고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고, 부여 때부터 이 땅에 전해 내려온 풍습을 간직하고 있다.” 

아주 왕이 대놓고 '나는 고구려 사람이야'라고 말하는데도 발해가 중국의 역사라고 하는 주장은, 사실과 기록을 무시하고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허구의 픽션을 만드는 '창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집 바둑이를 몰래 훔쳐가서 이름줄을 “냐옹이”라고 바꿔서 “얘 사실 강아지 아니고 고양이야. 우리 고양이가 낳은 새끼야”라고 억지 부리면 감나무에 이어 또 경찰에 신고해야지. 


중국은 어쩌면 발해가 중국 역사가 아니라는 증거들을 우리보다 더 많이 마주할 수도 있다. 옛 발해 땅에서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 “발해는 고구려~,” “발해는 고구..”, “발해는 고…”라는 증거들이 발견이 될 때마다 난감한 중국은 사실을 덮어버린다. 약 10년 전 중국 용도산에서 발해 고분이 발견이 되었다. 그 고분의 비석에는 순목황후의 라고 적혀있다. 발해가 만약 당나라의 지방 정권이었다면 황제라는 표현을 절대 쓸 수 없다. 황제라는 표현은 곧 반역이다. 그러나 고구려와 유사한 발해의 고분이 황후의 묘라고 밝혀진 것은 발해가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아주 명확하게 (얼마나 더 명확해야 알아먹겠니) 알려준다. 본인들도 발견하고 놀랐겠지…그래서 중국 정부는 10년이 넘게 이 순목황후 묘의 비문 전문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강연에서 왜 중국이 이렇게 기를 쓰고 우리의 역사를 가져오려고 하는지 교수님께서 설명하셨다. 1980년대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해오던 국가들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중국은 불안했다. 이 분위기라면 중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북한의 운명도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래서 1996년 중국의 사회과학원은 비밀 연구에 돌입했다. 만약 북한이 붕괴될 경우, 그래서 남북한이 통일을 했을 경우 중국 내에 생길 수 있는 변화들에 대해 조사를 했다. 그리고 곧 중국은 남북한이 통일되면 새로운 한반도 역사 공동체를 만들어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도달한다. 그렇게 되면 중국이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문제를 마주해야 한다.

 

과거부터 계속해서 매듭지어지지 못했던 간도 영토 문제가 그것이다. 식민지 시절 청은 당사자인 조선을 빼놓고 일본과 얼렁뚱땅 간도 협약을 체결해버렸다. 청은 일본에게 만주철도 부설권, 무순 탄광 개발권을 줄 테니 간도를 청의 땅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일본으로서는 밑지는 장사가 아니고 어차피 자기 땅도 아니니 그냥 지네 멋대로 체결을 해버렸다. 그게 1909년 간도협약이다. 그러나 당사자를 빼놓고 체결한 이 협약은 국제법상 무효가 되는 것이고, 만약 통일이 되면, 간도 땅에 대한 논의가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간도에는 조선족들이 살고 있다. 한국에 뿌리를 둔 이 조선족들이 통일된 코리아에 편입이 되고 싶어 한다거나 중국 땅에서 독립을 하고 싶다고 일어날 경우 중국 내에 살고 있는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도미노처럼 들고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55개 이상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중국이 제일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다. 이렇게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들고일어나 독립을 요구할 경우 사회주의로 지금까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중국 체제의 기반을 뒤흔들 수 있는 일로 번질 수 있다.  


이를 대비해 지금 중국은 “중국은 한 치의 땅도 작아질 수 없다”라는 패권주의 영토 역사관 강조하며 간도 땅을 자신의 땅으로 굳히기 위해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국의 것으로 훔쳐오고 있다. 그리고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중국은 아주 성실하게 역사를 왜곡 해왔다. 


중국은 한국에 뿌리를 둔 조선족들의 문화를 중국의 문화라고 소개한다. 중국의 새해 특집 프로그램에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부채춤을 추고 사물놀이를 하고 널뛰기를 하는 모습들을 연출하며 조선족의 문화를 중국의 문화로 광고한다.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이름을 바꿔 중국의 10대 관광지로 선정을 했고, 우리나라 대표 저항시인 윤동주 시인까지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다.  


우리 세대가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 제대로 알지 않으면, 또 다음 세대에게 알리지 않으면 우리의 것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빼앗길 수 있다. 식민지를 견뎌내느라, 전쟁을 겪느라, 가난을 이겨내느라, 또 민주주의를 이룩하느라 그간 우리 과거를 돌보고 바로 세우는 일을 소홀히 했다.  


나 또한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온 문제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낯설었다. 내가 동북공정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덜컥 무서웠다. 내 개인에 관한 고찰이 우리 세대에 관한 고찰로 이어졌다. 우리조차도 잘 모르면, 다음 세대 때도 동북공정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는, 그리고 다음 세대는 중국의 치밀한 역사 왜곡 프로젝트에 맞서서 우리의 것을 바로 지킬 수 있을까? 두려움이 생겼다. 


어떻게라도 다음 세대에게 동북공정에 대한 이야기를 반드시 해줘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 내가 만든 다람쥐 마을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 아주 무섭게 해 줄 것이다. 눈물을 쏙 빼서 절대 이 다람쥐 마을 이야기를 그리고 동북공정을 잊을 수 없게 각인시켜줄 것이다. 역사와 문화를 빼앗기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려줄 것이다. 이 순간도 우리가 내부의 분열로 정신없는 틈을 타서 천천히 조용히 우리의 것을 조금씩 훔쳐가기 위해서 두더지들이 땅굴을 파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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