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평전>
카톨릭 사제가 쓴 이탈리아 성당 기행서. 깊이있는 내용이나 정보를 기대해서가 아니라 신부님이라는 위치에서 느끼는 유서깊은 성당들에 대한 단상이 궁금해서 읽어봤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책의 지적수준은 딱 예상한 만큼, 낮지도 높지도 않다. 성당이라는 장소에서 느끼는 감상이 주가 되다보니 건축학적, 예술적 정보나 비평 같은 면은 일반적인 기행서보다 도리어 적다. 문장도 동네 성당 신부님 강론같다. 쉽고 평범한 언어로 쓰였다. 그러나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거나 지적 자극을 주는 책은 아니어도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꽤 마음에 들었다.
우선 팩트의 오류가 별로 없다. 이탈리아를 다룬 국내 기행문들 중에 잘못된 정보를 담은 것들이 꽤 많다. 책쓰기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비전문가가 쓴 글이면 그러려니 넘어간다. 문제는 대학 교수 등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저자일 경우인데 대개 이런 책에서 보이는 팩트 오류는 해당 분야 연구자가 아닌 다른 영역 '전문가'께서 어줍잖게 아는척 하시다 나온게 많다. 이태리어 읽기도 안 되는 신학자, 영문학자나 심지어 경제학자가 원어 사료의 몇구절을 괜히 길게 언급하신다던가 캐캐묵은 영문 서적 한 권을 근거로 이미 오래 전에 오류로 판명난 옛날 학설의 해석을 재탕하시는 등이 그런 예다.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첫째 이유는 그런 오류가 없어서다. 글쓰신 신부님의 지적인 겸손 덕분이다. 이 분은 눈에 뻔히 보이는 아는 척을 안 한다. 모르는 부분은 제 아무리 유명 장소의 유명한 것이어도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저자가 신부님이지만 도를 넘어서는 교회 옹호나 비타협적으로 기독교 가치를 절대시하는 부분이 없다는 점도 좋다. 일례로 사보나롤라를 이야기한 부분에서는 그의 신정정치를 예상보다 균형잡힌 시각으로 인식하고 있음이 엿보여서 인상적이었다. 7개 코드를 내세운 어느 기행서에서 개신교 영문학자인 저자가 사보나롤라를 편파적으로 옹호하던 것과 묘하게 대비된다.
그러나 딱 하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는데 책 제목이다. 물론 저자의 의도와 다르게 출판사의 재량으로 선택된 제목일 거라 추측되긴 하지만, 성당에 대한 건축학적, 예술적 분석이나 평가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평전'이라 이름 붙인 건 과하지 않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