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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준영 Jul 09. 2020

카파치 폭파사건과 팔코네 장례식

  1992년 5월 23일, 팔레르모 인근 카파치Capaci의 한 도로에서 마피아 조직원들이 폭탄을 터뜨렸다. 때마침 도로 위를 달리던 차량들이 폭발로 전소되고 차에 타고 있던 마피아 범죄 전담 수사팀 책임자 조반니 팔코네Giovanni Falcone 검사(판사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은데 틀린 호칭은 아니다. 이탈리아 사법체계에서는 검찰이 행정부가 아닌 사법부 소속이기 때문에 법관들이 판사에서 검사로 혹은 반대로 전직하는 경우가 흔하다)와 그의 부인, 경찰 3인이 목숨을 잃었다. 

카파치 폭파 암살 직후 현장 사진

  국장으로 치뤄진 희생자 5인의 합동 장례식에서 장례 미사가 끝나고 운구행렬이 팔레르모 대성당을 빠져 나오자, 성당 앞 광장은 물론이고 주변 건물 발코니와 창가까지 가득 메운 추모객들은 관을 향해 꽃을 던지며 기립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동시에 시민들은 장례식에 참석한 이탈리아 대통령과 주요 정당 대표들에게 야유를 보내며 국가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의 신변안전조차 지켜주지 못한 정부의 무능과, 대대적인 마피아 수사에 소극적이던 일부 정치인들에 항의했다. 

  언젠가 유시민씨가 방송에서 르네상스 시대에 세워진 피렌체의 고아원을 방문하고 나서 "허투루 봤던 이탈리아 시민사회의 힘을 다시 보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오래 전 이 장례식 영상을 처음 봤을 때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카파치 희생자 5인 추모비

  팔코네의 죽음과 장례식은 민주적 공동체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동력은 묵묵히 주어진 역할을 다하는 이들과 이들의 수고를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시민들, 사회와 국민의 안전, 안녕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는 정치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카파치 폭탄 테러 현장 옆에는 이후 기념비가 세워졌다. 근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많은 이탈리아 운전자들이 조반니 팔코네와 수사팀의 용기와 희생에 존경을 표하는 의미로 기념비 옆 도로를 지날 때마다 경적을 울린다. 


링크: 팔코네 검사 부부와 수사팀 희생자 합동 장례식

https://www.youtube.com/watch?v=rPyBoiDQYKI&feature=share&fbclid=IwAR01VQ96nN5-mlVI2F_NxsPDvRvjlynbx_HZFUvuBqyu3094iSjJabkdtW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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