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서 피어난 꿈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by 도로고노

눈은 모든 걸 덮는다.

그 어떤 소리든, 색이든, 모든 걸 하얗게 덮어버린다.

이 세상이 ‘눈의 세상’으로 변한다.


히로키, 타쿠야, 그리고 사유리는 오히려 반대다.

다채로웠던 세계에 속하지 못해, 오히려 백색의 세계에서 백색의 꿈을 꾸고 지냈다.

이들은 그런 눈의 세상이 찾아오자,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로 향한다.


깨어난 꿈

사유리를 깨우기 위해 백색의 비행기인 ‘베라실러’를 타고, 꿈이자 목적이었던 ‘탑’을 향해 날아간다.

그 와중에 이들을 둘러싼 세상은 이 ‘탑’을 중심으로 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이 상황을 무시할 건 아니었지만, 히로키와 타쿠야에게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전쟁으로 세상이 어찌되든, 중요한 건 ‘사유리가 꿈에서 깨어날 수 있느냐’였다.


‘탑’에 가려는 꿈을 이루려고 3년만에 뭉친 이들은 서로 바라는 목적이 바꼈다.

타쿠야는 ‘마음 속의 작은 아이’에게서 해방되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한다.

히로키는 사유리를 깨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정말 세계와는 전혀 상관없이, 본인만의 세계가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


같은 걸 동경했고, 같은 걸 바라보면서 살아왔다.

그동안 따로 떨어져 지냈고, 함께 바라보던 목표를 잠시 잊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를 향해 가야 할지, 뭔지 모르는 힘이나 충동은 자꾸 끓어올랐다.

하지만 그것이 정녕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몰라 답답했을 뿐이었다.


드디어 해야 할 일을 찾게 됐고, 자기 자신을 다 바쳤던 ‘꿈’이 현실을 맞이할 때가 왔다는 걸 깨달았다.


두려운 현실

이 영화에서 사유리는 ‘꿈’을 의인화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유리만은 꿈에서 깨어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아직 꿈이 현실을 마주하기에는 이르다고, 꿈을 그저 내 세계에서 계속 살아있기를 바라는 듯하다.

꿈을 이루고 난 후의 상황은 상정하지 않았던 결과다.


‘탑’에 가서 그 꿈이 이뤄진다면, 사유리의 세상은 무너진다.

이 세상에서 알게 됐고, 간직하고 있던 모든 기억, 사랑, 불행, 슬픔, 외로움 모두 없던 일이 된다.

그동안 히로키와 관계를 맺으며, 쌓아올린 둘만의 세상이 없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현재 ‘꿈의 상태’일 뿐이다.

현실에 있는 히로키와 타쿠야로 인해 그 꿈이 현실을 마주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3년 동안이나 방치됐던 꿈이 드디어 빛을 보며 현실에서 이뤄지는 거다.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정말 복잡할 거다.


목적과 꿈

본인의 세계에선 편하게 어떤 일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기뻤을 거다.

그렇지만 현실에 내놓기엔 뭔가 부족한 것 같고, 뭔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실행에 대뜸 옮기지 못한 것만 3년이다.

나만의 작은 세상이었던 꿈을 남들에게 내놓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히로키와 타쿠야, 그리고 사유리는 꿈을 이뤘다.

하지만 그 이후의 삶은 완벽하게 달라졌다.


타쿠야는 자유롭게 사는 게 목적이었기에 꿈을 이룬 후에도 자기 목적을 위해 잘 살아가지만, 히로키는 그렇지 못했다.

그저 목적이 꿈 그 자체였기에 이룬 후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태로 살아간다.


꿈을 이루기 전과 후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인 거다.

다만 꿈을 이뤘다는 현실만 마주할 뿐이다.

목적과 꿈이 동일했던 결과다.


왜 꿈을 이루려고 하는가

왜 ‘탑’에 가는 게 꿈이었을까?


그저 거기에 가기만 한다면, 나를 위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뒤집을 뭔가 특별한 것이라도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모두 그 ‘꿈’ 자체가 목적이었고, 이루는 것 자체에만 신경을 썼던 히로키였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잘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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