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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집 Feb 05. 2019

예민하거나 혹은 섬세하거나

나는 예민하다. 나는 이 예민함이 싫다. 예민함은 어디서든 불쑥불쑥 튀어나와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나를 괴롭혔다. 요새처럼 찬바람이 불 때면 고장 난 수도꼭지에 나오는 물처럼 콧물이 주르륵 흐른다. 내 몸의 신호는 정확하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계절의 변화를 몸이 읽어 내는 것이니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가? 대신 하얀 휴지는 산처럼 쌓여만 갔다. 이젠 꽉 막힌 코로 인해 모든 감각들이 더 예민해진다.
 
내 신경들은 항상 긴장상태다. 작은 소리에도 놀라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온갖 다양한 냄새에 반응하고 피부는 우둘투둘하게 붉은 반점들로 꽃이 피기도 했다. 느끼고 싶지 않은 감각까지 느껴야 하는 몸이 나는 불편했다. 부정적인 시선으로 예민함은 나에게 다가왔다. ‘유난스럽다. 왜 이렇게 민감하니?’라는 말을 셀 수없이 들었다. 그 말들이 뾰족한 화살처럼 꽂혀 마음에 상처를 냈다. 아팠다. 아플수록 나는 내 감각들을 부정했다. 날카로운 화살은 빼기 힘들 정도로 깊숙이 박혔다. 나는 사람들이, 이 사회가 나를 부정적으로 만들었다고 더 믿게 되었다.
 
나는 자주 슬픈 우울감에 빠져 우주에 홀로 둥둥 떠 다녔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예민함을 숨기고 그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아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막았다. 예민함은 점점 커져 밖으로 튕겨 나왔고 전보다 강하게 나를 짓눌렸다. 나는 뒤엉킨 감정을 가지고 멀리 도망쳤다. 결국 똑같은 자리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아오곤 했다. 나는 지쳤고 감당하기 힘들어 까칠하게 변했다. 한편으로는 위축되었다. 반면 나의 창작 욕망의 씨앗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었다.
 
나의 예민함의 장점을 일깨워 준 것은 은이언니이다. 언니는 그림 수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 예민함을 응원해준 유일한 사람이다. 나와 비슷한 기질을 가졌고 우리는 서로의 감각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공감했다. 나는 언니에게 펭귄들의 떼죽음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언니는 “우리가 간혹 신경이 곤두서는 것은 이 사진처럼 지구 반대편 남극에 사는 펭귄들의 떼죽음으로 그 슬픔이 전달돼서 우리의 감각들이 이유를 모르는 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야”라고 덤덤히 말했다. 우리는 하하 호호 깔깔거리며 예민함의 소재로 웃음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나는 긍정의 이야기들로 나의 예민한 감각이 단점이 아닌 장점이라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예민함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섬세함이다. 나는 빨강이 다 같은 빨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둠을 밝게 비출 때 뜨는 붉은 태양의 빨강, 마음을 전달할 때 넣는 편지함 우체통의 빨강, 타닥타닥 태우는 자작나무 불꽃의 빨강, 피부가 찢어졌을 때 나오는 검붉은 피의 빨강, 빨갛게 물든 단풍잎의 빨강, 잘 익어 달콤해진 사과의 빨강, 해가 떨어질 때 온 세상을 붉게 만드는 빨강. 빨강은 이와 같이 비슷한 듯하나 다 다르다. 나는 나의 섬세한 감각을 통해 이 빨강의 다름을 세밀하게 그림으로 담을 수 있다. 그림은 더 까다롭게 더 예민하게 굴수록 섬세해지고 나만의 색깔로 표현된다.
 
내 삶에 있어서 예민함은 단점이자 장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점할 때 바로 떠오른 것이 예민한 감각이다. 한걸음, 한걸음 나를 받아들이고 있는 시점이라 예민함의 양면성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나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섬세함과 깊게 빠질 수 있는 몰입도로 예민함의 가치를 보다 높게 보게 되었다. 예민한 감각으로 신경이 곤두서 힘들어하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현아. 예민한 감각은 특별한 능력이야’ 나는 이젠 나를 믿고 나의 감각들을 존중한다. 나의 예민함 혹은 섬세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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