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회사에 치이고, 육아에 치이는 삶

나의 스토리

by 딩마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전쟁이 시작됐다. 5살 아이 일으켜세워 세수 시키고, 밥 먹이고, 옷 챙겨 입혀서 서둘러 어린이집에 맡겼다. 하지만 아이를 맡겼다고 여유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지하철역까지 걸으면 10분은 걸리는 거리였지만, 지각하지 않기 위해 5분 만에 헐레벌떡 뛰어야 했다. 그렇게 회사에 도착하면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9시간 동안 정신 없이 일하고 퇴근해 집에 오면, 아이는 시어머니가 픽업해 돌보고 계셨다.

어머니가 힘들어 보이셔서 얼른 퇴근시켜 드리고, 낮 동안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에 아이와 더 열심히 놀아주려 애썼다. 하지만 아이는 피곤한 엄마 마음도 모르고 투정을 부리기 일쑤였다.

밤 9시쯤 아이와 방에 들어가 책을 읽어주다가, 결국 나도 같이 잠들곤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 삶은 또다시 반복되었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처럼,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같은 자리를 돌고 있는 것 같았다.



23살에 조기 취업을 했고, 빠르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덧 38살이 되어 있었다. 그저 열심히 살다 보면 인생이 나아질 줄 알았다. 언젠가는 부자도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열심히 산다고 해서 삶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나는 이대로 정년까지 살아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들자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에게 이상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5분마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고, 손을 수시로 씻는 모습을 보였다. 어린이집에서는 친구들을 때렸다는 전화가 종종 걸려왔다.

회사에서 일하다 선생님 전화가 울리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던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를 자책했다.

아이가 돌 무렵부터 어린이집에 맡긴 게 문제였나 싶었다. 엄마랑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게영향을 미친걸까, 결국 아이가 이렇게 된 건 다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육아와 커리어 사이에서 매일 방황하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늘 최선을 다했다. 맡은 일을 근무 시간 안에 모두 끝내야만, 6시에 퇴근해 어머니와 교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커피 한 잔 마시고 수다도 떠는 시간에, 나는 정말 ‘일’만 했다. 칼같이 퇴근하지 않으면, 어머니께서 더 오래 아이를 돌봐야 하니까.



그런데 어느 날 점심 회식 자리에서 부장님이 이렇게 말했다.

"회사에서 엉덩이 오래 붙이고 있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 인재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멍해졌다. 분명히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늘 칼퇴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거겠지. 그날 집에 와서 남편에게 매달려 펑펑 울었다.

회사에서는 상사 눈치, 집에서는 시어머니 눈치...

일도 육아도, 어느하나 제대로 해내는 게 없어 보였고 나는 그저 초라한 엄마, 초라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매일 쳇바퀴 도는 삶이 지긋지긋해졌다. 이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몰랐다.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고민을 털어놔도,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그때, 문득 책이 떠올랐다. 책이라면 뭔가 해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회사가 멀었기에 출퇴근 시간 동안 왕복 3시간을 오롯이 책에 쏟았다. 그 시간만큼은 세상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지쳐 있었던 내 마음이 책을 통해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삶이 완전히 바뀐 건 아니었지만, 분명히 뭔가 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