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에 붉게 동그라미 친 숫자 하나.
오늘은 꼭 가야 하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벨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누굴 위한 날인지도 모르겠고,
어차피 찾아올 사람도 없는데.
이불 속에 몸을 묻고 잠을 부여잡았지만
결국 일어나 천천히 옷을 입었다.
밖에서 계속 울리던 초인종 소리,
그걸 멈추기 위해서라도.
현관문을 열자, 어색한 얼굴.
"어... 오늘... 병원."
그 말이 왜 나오는지 안 봐도 알겠더라.
둘러대려는 목소리 안에 감정이 뭍어 있었으니까.
그 사람은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마을버스에 나란히 앉기에는 아직 거리감이 남았는지
그 사람은 맨 뒤에, 나는 앞에 앉았다.
그러면 얼굴을 안 보니까.
그래도, 어쩌면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감정이 들킬까봐,
나는 그저 조용히 창밖을 바라봤다.
창문에 맺힌 빛이 스르르 미끄러졌고,
버스는 조용히 도로를 따라 움직였다.
마음속 어딘가엔
말로 할 수 없는 것이 천천히 고여가는 것 같았다.
흘러가지도,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 감정.
그렇게...
병원 앞,
우리 둘은
각자의 마음을 품은 채
조용히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