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이야기 -
연이의 아픈 것을 알아버렸다.지
그래서 마음이 안좋은 나머지
그냥 가서 말을 할 수 없어
집에 남아있는 술기운을 빌렸다.
들어가선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색함에 움직이다가 생긴 착오로
그녀와 부딫혀 한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순간,
코를 찌르듯
알코올 향이 확 퍼져왔다.
이상했다.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코끝을 틀어막고 벗어나려 애쓰지만,
인사불성인 그 멀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라 중얼거리긴 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겨우 품에서 빠져나오려던 순간,
희미한 속삭임이 들렸다.
“가지마—”
싸한 냄새보다 그 세 글자가 먼저 파고들었다.
뜻밖의 온기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런 나 자신이 부끄러워 도망치려는 찰나—
“…연이야.”
위에서 물방울 하나가 뚝, 떨어졌다.
움찔, 그가 울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이 사람이 나를… 소중히 여긴다는 생각이
그 흐느낌 안에 조용히 깃들어 있었다.
그는 내 움직임에 진정하라는 듯 가볍게 몸을 움켜쥐었다.
내가 멈추자, 그의 울음도 천천히 가라앉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를 뉘이고, 침대 밑에 있던 이불을 질질 끌어와
베개를 받쳐주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도 안심했는지 이불을 껴안은 채
쉭—쉭—, 거친 숨이 뱃고동 소리처럼 진해지다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오랫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기억은 없지만, 낯설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풍경.
파노라마처럼 스쳐 가는 장면 속에서도
그는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고—
그 장면이 아까의 속삭임과 겹쳐지면서
이번엔, 내 두 눈에서 조용히 진실이 흘러내렸다.
…울음이 그친 건 아니었다.
단지, 더는 소리를 낼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잠잠해졌을 뿐.
날 쳐다보는 시선이 있어 고개를 그제서야 들었더니
...그가, 조용히 눈을 뜨고 날 보고 있었다.
아까까지 잠들어 있던 사람의 눈이라기엔
너무 또렷하고 깊은 시선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팔이 조심스럽게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그 안엔 설명할 수 없는 확신 같은 게 묻어났다.
"더이상 혼자 두지 않아."
낮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말에 담긴 온기가 너무 선명해서,
그게 오히려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왜? 왜 이렇게 말하는 걸까.
왜 저런 눈빛으로 나를 보는 거지?
이상하게 낯설지 않은,
하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 이 감정.
마음이 뭔가에 조용히 부딪혀 부서지는 것 같았다.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걸까.
아니,
나는 지금 무엇을 잊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