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흔적의 뒷편에서

by 비현


- 지난이야기 -


연이의 아픈 것을 알아버렸다.지

그래서 마음이 안좋은 나머지

그냥 가서 말을 할 수 없어

집에 남아있는 술기운을 빌렸다.


들어가선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색함에 움직이다가 생긴 착오로

그녀와 부딫혀 한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순간,

코를 찌르듯

알코올 향이 확 퍼져왔다.


이상했다.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코끝을 틀어막고 벗어나려 애쓰지만,
인사불성인 그 멀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라 중얼거리긴 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겨우 품에서 빠져나오려던 순간,

희미한 속삭임이 들렸다.


“가지마—”

싸한 냄새보다 그 세 글자가 먼저 파고들었다.


뜻밖의 온기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런 나 자신이 부끄러워 도망치려는 찰나—



“…연이야.”

위에서 물방울 하나가 뚝, 떨어졌다.


움찔, 그가 울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이 사람이 나를… 소중히 여긴다는 생각이
그 흐느낌 안에 조용히 깃들어 있었다.


그는 내 움직임에 진정하라는 듯 가볍게 몸을 움켜쥐었다.


내가 멈추자, 그의 울음도 천천히 가라앉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를 뉘이고, 침대 밑에 있던 이불을 질질 끌어와
베개를 받쳐주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도 안심했는지 이불을 껴안은 채
쉭—쉭—, 거친 숨이 뱃고동 소리처럼 진해지다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오랫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기억은 없지만, 낯설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풍경.


파노라마처럼 스쳐 가는 장면 속에서도
그는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고—


그 장면이 아까의 속삭임과 겹쳐지면서
이번엔, 내 두 눈에서 조용히 진실이 흘러내렸다.


…울음이 그친 건 아니었다.

단지, 더는 소리를 낼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잠잠해졌을 뿐.


날 쳐다보는 시선이 있어 고개를 그제서야 들었더니

...그가, 조용히 눈을 뜨고 날 보고 있었다.


아까까지 잠들어 있던 사람의 눈이라기엔

너무 또렷하고 깊은 시선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팔이 조심스럽게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그 안엔 설명할 수 없는 확신 같은 게 묻어났다.


"더이상 혼자 두지 않아."


낮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말에 담긴 온기가 너무 선명해서,

그게 오히려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왜? 왜 이렇게 말하는 걸까.


왜 저런 눈빛으로 나를 보는 거지?


이상하게 낯설지 않은,

하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 이 감정.


마음이 뭔가에 조용히 부딪혀 부서지는 것 같았다.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걸까.


아니,

나는 지금 무엇을 잊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