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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우 Jul 01. 2023

<엘리멘탈> 사랑 이야기, 그리고 사람 이야기


한국계 피터 손 감독의 두 번째 영화라는 <엘리멘탈>. 가슴이 몽글몽글해지고 쿵쾅쿵쾅거리다 시원하고 마지막엔 뜨겁게 타오르는 작품. 오랜만에 찾은 영화관에서 눈물을 흘렸다. 빛나는 영상미와 OST 뒤에 더 반짝이는 캐릭터와 이야기로 나를 사로잡았다.


 공기, 흙, 물과 불이 모여 사는 도시인 엘리멘탈 시티. 그곳에서 익숙하게 공생하는 물과 흙, 공기와 다르게 불은 머나먼 파이어랜드에서 이민 온 몇몇이 파이어타운을 이루고 살고 있다. 파이어플레이스라는 인기 만점 상점을 운영하는 버니는 곧 자신의 딸, 엠버에게 가게를 물려줄 계획이다. 다혈질인 성질을 죽이지 못해 종종 사고를 치던 엠버는 세일하는 날, 부담감에 그만 폭발해버리고 지하실의 파이프를 망가뜨린다. 물이 줄줄 새는 파이프를 수리하다 시청 조사관인 물 남자, 웨이드를 마주한다. 엠버는 아버지의 가게를 잘 이어받을 수 있을까?


 미국과 같이 많은 인종이 함께 모인 나라에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세상이 많이 바뀌지는 않았음을 체감하는 계기였다. 아직 다름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다름을 같음으로 끼워맞추려는 사람들, 그리고 다름이 틀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캔자스에서 유학하며 보낸 한 해 덕에 영화 속 물 친구들에게서 또렸하게 백인 문화의 성향을, 불 가족들에게서 한국인 이민자들의 성향을 볼 수 있었다. 개인주의적인 웨이드와 가족을 중시하는 엠버, 사적인 이야기를 서슴없이 꺼내는 물과 개인의 사정을 숨기려 하는 불, 뜨겁고 빠른 성질의 불과 느긋하고 시원시원한 물 등등, 예시는 끊임이 없다.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영화관을 나오며 생각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스케일이 큰 사랑 이야기라고. 우리는 우리의 고향과 문화를 사랑하고, 가족과 연인을 사랑하며 살아가지만 많은 것을 등지며 살아가기도 한다. 두 시간 동안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외면하는 것들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그건 엠버가 깨진 유리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듯이 관객들의 마음속 무언가가 부서지고 그 조각들로 새로운 예술을 행하는 일이었다. 


아무에게서도 그 장면의 감동을 빼앗고 싶지 않지만 한 문장만 기록해두자면,

절대 서로 이해할 수 없을 줄 알았던 둘이, 닿았다. 

오색빛깔 재치 넘치는 애니메이션 영화보다는 팍팍한 현실이지만, 물과 불이 서로에게 닿고,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지 않겠어? 하고 희망을 건네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격려로 다가왔다. 


또 다른,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날 위해 모든 걸 희생하신 분들에게 보답하는 방법은 나도 똑같이 희생하는 것 뿐이야."


엠버가 차마 자신의 꿈을 좇아 가지 못하고 부모님의 희생에 보답해야 한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을 보며,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이민을 간 적은 없지만 엄마 아빠의 희생으로 유학을 떠날 수 있었던 입장이니, 항상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보답하려면 나만의 것들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했었다. 엠버의 아빠, 버니가 "내 꿈은 이 가게가 아니라 너였다"고, 진심을 전하는 그 순간, 엠버와 함께 내 안에서도 무언가 녹아내린 것 같다.


 깊이 내 자신 속으로 파고들수록 세계에 파장을 이끌어낼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고 하는데, 피터 손 감독님이 그 말을 가슴에 새겨들은 게 아닐까. 발가벗은 것 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무서운 일에 도전해, 수많은 사람들을 울리는 작품을 완성하셨다.


 픽사가 자주 활용하는 방식이지만 매번 신선하고 울림있는 소재다. 월E의 로봇이나 토이 스토리의 우디처럼, 사람이 아닌 것들로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 사랑 이야기인줄만 알고 보러 간 엘리멘탈이 사랑 이야기와 함께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다르다, 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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