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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증후군 고위험군, 그리고 양수검사(1)

-엄마 될 자격이란 무엇일까

by 푸르른도로시




"***산부인과입니다. 1, 2차 기형아 검사 통합 결과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이 나왔으니 속히 내원 바랍니다."


작년 12월에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걸려온 전화.

친구들과 모임을 하며 웃고 떠들고 있던 나는 자연스레 명랑하게 전화를 받았고,

수화기 너머 음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친구들의 권유로 바로 자리를 떠 지하철에 앉은 후에야 실감이 났다.

얼굴에 피어올랐던 웃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들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50분 남짓의 시간 동안

울지 않기 위해 목구멍까지 올라온 물기를 내리눌렀다.

짝꿍에게 전화를 했다.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이래. 좀 일찍 나와서 나랑 같이 병원에 갈 수 있어?"

오후 네다섯 시쯤. 한창 일하고 있을 터였다. 그의 회사가 유연근무제를 택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병원 1층에서 짝꿍을 만나 함께 올라갔다. 접수를 하고 얼마 뒤 우리의 순서가 왔다.


"초음파상으로는 이상이 없었고요, 1, 2차 통합 검사 결과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이 나왔어요. 여기를 보시면 1: 300으로 나와 있고요."


1 : 300 이란 숫자가 귀에 화살처럼 날아와 박혔다. 내가 다니던 병원의 '고위험군' 기준은 1 : 495였고, 나의 수치는 1 : 300이었기 때문에 고위험군 판정이 뜬 거였다. 이 1 : 300이라는 수치는, '이러한 결괏값이 나온 산모 300명 중 1명꼴로 다운증후군인 태아가 나왔다.'는 뜻이라고 했다. 의사는 니프티 NIPT(Non invasive prenatal testing 비침습적 산전검사)와 양수검사(양수 천자술) 두 가지 검사에 대해 설명을 했고,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 양수 검사를 권한다고 이야기했다. 니프티는 산모의 혈액 내에 존재하는 태아의 DNA를 분리하여 분석하는 검사로 임신부의 복부에 주사를 찔러 넣어 양수를 채취하는 양수 검사에 비해 태아와 산모 모두에게 부담이 없지만 확진 검사가 아닌 선별 검사이고, 양수 검사는 합병증이 생길 확률이 드물게 있으나 선별이 아닌 확진 검사라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양수 검사를 받기로 결심하고 의사에게서 검사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소개받았다. 진료실을 나서자마자 바로 예약을 잡았다. 검사 예정일은 일주일 후,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데스크의 간호사 선생님의 위로를 뒤로 하고 병원 밖으로 나와 저녁을 먹었다.

아직 입덧이 채 가시지 않은 임신 16주, 평소에도 약간의 울렁거림에 시달리는 위장이 가벼운 뱃멀미를 하듯 들썩였다. 하지만 우습게도 배가 고파서 짝이 주문한 콩나물 부대찌개를 입에 넣었다. 울렁거리는 위장에 배속 저 밑에서부터 올라온 눈물이 가세하여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입 안에 국물이며 밥을 떠 넣었다.


"나 이제 다시는 임신 같은 거 안 할래. 임신이 이렇게 힘든 거였으면 하지도 않았어. 얘가 내 처음이자 마지막 아이야. 다시는 절대로 이런 경험하고 싶지 않아."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배가 고파 밥을 입에 넣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직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닌데 세상이 끝난 것 마냥 절망감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은 더욱 한심하게 느껴졌으나 스스로의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휘몰아치는 풍랑 안의 뗏목처럼 흔들리던 나를 잡아준 짝이 없었다면, 그날의 아픔을 나는 견딜 수 있었을까.




일주일 동안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겨우 16~17주 동안의 시간이었지만, 나는 어느새 우리 아기를 사랑하고 있었다. 동그란 아기집을 처음 봤던 순간, 심장 소리를 처음으로 들었을 때의 생경한 감각, 모두가 하리보 곰돌이 젤리라고 부르는 하트 모양의 작은 아기가 처음으로 탯줄을 달고 짧은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움직이는 걸 보았을 때의 알 수 없는 감정, 몇 주 만에 부쩍 커서 나와 우리 가족들에게 많은 웃음을 주었던 동그란 아기의 얼굴과 몸통... '뒤통수가 둥근 걸 보니 두상은 나를 닮았나 보다.' '엉덩이가 동그란 걸 보니 체형은 너를 닮았나 봐.' 등등 그간 우리가 나놨던 수많은 대화들.........




만에 하나 아기가 많이 아프다면, 나는 아기를 위해 내 삶을 희생할 수 있을까.

만약 희생하지 않을 것을 선택한다면, 그런 내가 과연 엄마 될 자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계속해서 좋지 않은 쪽으로 나를 끌고 갔다.

처음 이틀 동안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눈물이 목구멍을 홍수처럼 막아서 음식을 밖으로 밀어냈다.

울고 또 울다가 지치면 잠에 들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을 했다. 다운증후군 고위험으로 뜬 아기들 중 95% 이상이 정상 판정을 받는다고 했다. 희망적인 이야기를 읽고도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한번 부정으로 흐른 사고의 흐름은 터진 둑처럼 막으려 해도 막을 수가 없었다.


삼일째부터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을 텐데 뭐 하러 우나 싶기도 했고, 우는 것이 지긋지긋하기도 했다. 여전히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그래도 밥은 먹었다. 자려고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가 갑자기 툭 눈물이 터졌다. 옆에 딱 붙어서 자고 있던 짝꿍이 잠결에 손을 뻗어 나를 안아 주었다. 따뜻했다.



하루하루를 견디다 보면 시간은 흐르게 마련이다.

어느덧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러 양수 검사를 받는 날이 되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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