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입체초음파를 보지 않기로 한 이유

by 푸르른도로시





따뜻한 봄이 시작되려는 지금, 어느덧 임신 26주 차에 접어들었다.

25주 차에서 26주 차까지 일주일 밖에 안 되는 기간 동안 배가 훅 커져서

이제 어디 가서 "이거 내 똥배야." 해도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다.


수유 후에는 바람 풍선처럼 빠질 거라는 예언의 실현을 앞둔 가슴도 2컵 이상 커졌고,

배속 아기도 이틀 건너 한 번 꼴로 탯줄 잡고 트위스트라도 추는지 움직임이 확연히 커졌다.


정말로 내가 임신을 했구나, 하는 것이 실감이 나는 바람에 요새는 배속 아기에게 간간히 말도 걸고 있다.

화를 냈을 때는 "아까 화내서 미안해. 많이 놀랐지?" 하며 사과를 하고, "뭐 하니. 잘 지내고 있냐?" 하며 괜스레 혼자 말을 걸 때도 있다. 아기는 듣고 있을까. 최근 출산을 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태어난 직후 울음을 터뜨리던 아기가 엄마 목소리를 듣자 신기하게도 뚝 그쳤다고 한다. 배속에서 늘 듣던 목소리를 인지했다는 이야기인데, 아기가 듣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종종 화와 성질을 참지 못할 때가 있어서 아기에게 미안하다. 너를 위해서라도 세상을 넓고 긍정적으로 봐야 할 텐데.








입체초음파가 가능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입체초음파는 28~32주 사이에 시행되며, 태아의 얼굴이나 팔다리 등 외형을 중점적으로 보는 초음파 검사이다. 태아의 기형 유무를 파악하는 정밀초음파는 필수 검사에 속하지만 입체초음파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요새는 많이들 입체초음파를 보는 추세다. 아기가 누구를 닮았을지, 어떻게 생겼을지 부모라면 대부분 궁금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나의 짝꿍은 크게 궁금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태어나면 어차피 볼 건데 미리 볼 필요가 있나'하는 식. 역시 인팁 INTP인가.)



아기의 공동 제작자인 짝꿍이 크게 흥미 없어하자 덩달아 나도 식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고민은 남아 있었다.

'그래도 첫 아이인데-첫 아이이자 유일한 아이가 될 수도 있다- 추억 삼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와 '필수 검사도 아닌데 내 돈 들여가며 볼 필요가 있을까?-이미 양수 검사로 바우처가 0이 된 상태-'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결론은 '입체초음파는 보지 않겠다.'로 났다.

앞서 언급한 친구가 아기의 사진을 보내온 것이 결심의 주요 원인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뽀얗고 튼튼하게 커가고 있는 아기는 입체초음파 사진으로 봤을 때와는 그 모습과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입체초음파에서는 출아법인가 싶을 정도로 엄마만 쏙 닮아있었던 아기가 막상 태어나서 보니 아빠도 많이 닮은 모습이었던 거다. 단순 외형뿐만 아니라 분위기 자체가 입체 초음파 사진으로 봤을 때와는 달랐다. 아무리 입체 초음파가 발전을 해도 실물로 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조금 궁금하더라도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태어나면 그때 직접 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바우처가 남아 있었다면 100% 입체 초음파를 봤을 테지만)





우리 엄마는 내가 태어났을 때 '원래 아기들은 이렇게 못생겼나?'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빨갛고 쪼글쪼글한 데다 이마에 붉은 점까지 나있던 나와는 달리 태어나서부터 말갛고 하얬던 내 동생을 낳자마자 신생아가 다 못 생긴 게 아니고 그냥 내가 못생겼었던 걸로 결론이 났다.)


아빠는 신생아실에서 나를 보고 옆에 계시던 외할머니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야 이래가 치아묵겠능교?(얘 이래 갖고 시집보내겠습니까?)"


만약 그 시절에도 입체 초음파가 있어서 우리 부모님이 태아 시절의 나를 보았다면 어땠을까.

못생긴(?) 아기-그것도 딸.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아들보다는 외형적으로 예쁘기를 바랄 확률이 높은-를 보고 실망했을까, 아니면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그래도 내 자식이니 예쁘다 했을까.


나는 어떨까. 만약 내 아기가 갓난아기 때의 나처럼 빨갛고 쭈글쭈글하고 이마에 붉고 커다란 점이 난 원숭이 같다면 나의 반응은 어떨까. (혹은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예쁘고 잘생겼다면?)


이 모든 건 미래의 우리들에게 맡기겠다.


서프라이즈!










keyword
작가의 이전글뱃속의 아기는 엄마로 하여금 엄마 되기를 훈련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