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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의 아기는 엄마로 하여금 엄마 되기를 훈련시킨다

by 푸르른도로시


꿀렁꿀렁.

팔뚝만 한 구렁이 한 마리가 뱃속을 유영한다.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잠옷을 걷어 배를 보면 뱃속에 들어앉은 그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을까 싶은 지금, 우리-나와 아기-는 어느덧 임신 25주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 통 사놓은 배란 테스트기를 채 몇 개 써보지도 않았는데 덜컥 아이가 들어섰다. 부모가 되기로 하자마자 생긴 아기였기에 얼리 테스트기에 뜬 선명한 두 줄을 보여주는 나도, 보는 남편도 함께 어안이 벙벙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감격에 겨워 울거나 얼싸안는 장면은 없었다. 머리 위에 커다란 물음표를 띄운 채로 아기집을 보기 위해 열흘을 더 기다려-너무 일찍 가면 아무것도 보지 못할 수 있다고 하기에- 산부인과에 갔다. 검사 결과 얼리 테스트기가 인증해 주었듯, 아기는 동그랗게 제 보금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6주 차가 되자 아기 심장 소리가 들렸다. 분당 133회의 심장 소리가 달나라 토끼가 찧는 떡방아처럼 힘찼다. 반짝반짝 하얗게 빛나는 아기 심장이 환상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예쁜 게 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으니까. 가슴 한편이 짠했다.



“아직은 1cm의 작은 핏덩어리예요.”



의사 선생님의 말씀. 작고 둥근 핏덩이는 점점 자라 땅콩 모양의 생명체-흔히들 하리보 젤리라고 부르는-가 되었고, 자기 몸집만큼 자그마한 탯줄을 배에 달았다. 조그만 게 먹고살겠다고 밥줄을 몸에 꼭 매단 것 같아 기특했다.


다음에 봤을 때, 아기는 사람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동그란 머리에 동그란 몸통을 한 태아가 양팔과 다리를 위로 쭉 기지개를 켰다. 종일 계속 되는 엄마의 소화 불량과 소용돌이치는 감정 기복 속에서도 아기는 쑥쑥 자랐다. 나는 아기를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16주 차가 되었을 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병원에서 오는 전화는 안 좋은 소식이라는 사실을 잠깐 잊고 밝은 목소리로 받은 전화였다. 2차 기형아 검사 결과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이니 얼른 병원에 와서 설명을 들으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도 잠시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 목젖까지 올라온 울음을 꾹 참고 병원에 갔다. 1:300의 비율로 고위험군이 떴으며, 정확한 결과를 알기 위해서는 양수 검사를 추천한다고 했다. 추천받은 병원에 전화해 일주일 후로 예약을 잡았다.


한 주 동안 참 많이도 울었다. 별의별 생각을 다 했고, 별의별 영상과 글과 댓글을 다 보고 읽었다. 하루 종일 자기도 하고, 하루 종일 안 자기도 했다. 스트레스로 배가 단단해졌지만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아기가 아플 가능성이 1:300이라고 한다.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았다. 고통의 시간은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네, 1차 검사 결과 정상이고요.”



혹시라도 받지 못할까 봐 화장실도 가지 않고 기다린 전화를 받자마자 들은 첫마디.

너무나 감사했지만, 기뻐할 기운조차 없었다. 일주일간 격한 슬픔과 두려움과 때때로 찾아온 고요의 순간 - ‘걱정해 봤자 뭐 하겠어.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을 텐데. 아기를 위해서라도 마음을 편히 먹자. 바보야. 이렇게 약해가지고 엄마 노릇하겠어?’- 을 한 번에 겪은 탓이었을까.



한 바탕 격동의 시간을 겪고, 분만 병원과 조리원을 고르고, 입덧이 끝나 어느덧 임신 25주 차를 코앞에 두고 있다. 반짝이며 빛나는 작은 심장을 가진 핏덩이는 이제 초음파 화면에 한 번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몸집을 키웠다. 현대 의학에서 살릴 수 있는 가장 빠른 주수의 태아가 24주라고 하니, 우리의 아기는 이제 정말로 ‘인간’이 된 셈이다.



입덧이 끝나자마자 바로 요리를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고작 해야 김치볶음밥, 된장찌개, 카레라이스, 라면 정도 만들어 엄마가 보내주신 반찬과 함께 먹던 자취생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요리에 흥미가 없었고 뒤 따르는 설거지는 더더욱 싫어했다.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요리 연습을 시작한 이유는 순전히 아기를 위해서였다.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영양과 맛,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밥상을 아기에게 차려주고 싶었다. 엄마의 따뜻한 요리를 먹으며 무럭무럭 크는 아기를 보고 싶었던 나머지, 싫어했던 요리가 재미있어졌다. 자취 시절 먼지 구덩이에서 살던 사람이 테이블에 앉은 먼지 한 톨까지도 신경 쓰는 사람이 된 것 또한 순전히 아기 때문이다. 작고 여린 생명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나를 계속해서 성장시키고 있는 셈이다.



며칠 전, 중국집에서 세트 2번-자장면, 짬뽕, 미니 탕수육-을 시켜 먹으며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꿀떡이(태명)를 여기에 데려와서 같이 세트 2번을 먹을 거야.

언제쯤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세 살쯤?”


“아니, 그 나이 때 먹기에는 너무 자극적인데. 일고여덟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가.”



아이를 데리고 동네 노포 중국집에 올 생각을 하며 우리는 함께 들떴다.

아기는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에게 온갖 감정을 느끼게 하는 존재다. 그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지는 감정은 기쁨과 두려움인 것 같다.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 지금도 간혹 태동이 잘 느껴지지 않는 날이면 덜컥 겁이 난다. 그러다 툭 하고 움직임이 느껴지면 안도의 한 숨을 푹 내쉰다.


길을 걷다가 미처 피하지 못한 담배 연기를 맡거나 요리를 하다가 간혹 가스 냄새를 맡게 될 때도 덜컥 겁이 난다. 내가 조심하지 못해서 아기에게 조금이라도 나쁜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 불안이 앞선다. 잠 못 드는 새벽에 나와 함께 깨어 있는 아기를 느낄 때면 '녀석, 잘 놀고 있구나.'하며 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어떤 녀석일까, 누구를 닮았을까, 무엇을 좋아할까, 엄마 아빠 닮았으면 밥을 참 복스럽게 잘 먹을 거야 등등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아기가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모든 감정과 생각들이 소중하다. 흔히들 영유아기는 부모로부터 무조건적으로 받기만 하는 시기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부모는 아이를 뱃속에서 키우고 또 낳아서 돌보며 아이를 위해 보다 더 단단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아마 한 사람으로 하여금 그런 마음을 먹게 하는 존재는 단연코 자식 밖에 없을 것이다. 성인과 성인 간의 사랑도 서로를 성장하게 하지만, 아이의 존재는 또 다른 차원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아직 뱃속에서만 아기를 키우고 있는 예비 엄마는 감히 생각해 본다.



-이 새벽에 잠 못 이루고 있는 엄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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