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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와 인간 (마우스 인터페이스에 대하여)

99PI - 컴퓨터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작은 역사와 관점차이

by 손성빈 Son Seongbin

들어가며

최근 물리적 인터페이스 설계에 대한 책을 읽으며 인터페이스의 역사에 대한 부분을 읽게 되었다. 책에서 최초의 컴퓨터를 이야기하며 더그 엥겔바트(Doug Engelbart)oN-Line System (NLS)에 대한 내용을 "The Mother of All Demos"라는 멋진 수식어와 함께 등장했다. 이와 관련 정보를 찾던 중 즐겨 듣는 99PI에서도 다룬 아티클을 발견해 반가웠다. 그래서 해당 아티클과 팟캐스트에서 다룬 내용을 번역해서 기록하고자 해서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글은 더그 엥겔바트와 스티브 잡스의 입장차를 중심으로 가볍게 다루어 읽기도 편했다. 그래서 번역하기도 수월했었다. (지피티로 했지만...!)


아래 글은 팟캐스트 내용을 요약한 내용이다. 음성 대화에 더 상세한 내용이 있으니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https://99percentinvisible.org/episode/of-mice-and-men/


아래글은 99% Invisible에서 2015년 1월 20일에 작성된 글을 번역한 글입니다.



당신이 지금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다면, 아마 오른손은 마우스 위에 놓여 있을 겁니다. 그 마우스의 왼쪽(혹은 노트북을 사용 중이라면 위쪽)에는 키보드가 있죠. 컴퓨터 작업을 하다 보면 오른손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오가게 됩니다. 컴퓨터에서 해야 할 모든 작업을 입력 장치 사이를 오가지 않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10616196_10154835436925223_1491661547919992466_n-728x476.jpg A “keyset.” Courtesy of SRI International and the Doug Engelbart Institute

“키셋(keyset)”이라는 장치는 손을 이리저리 옮기지 않고도 가상 환경을 탐색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오른손에는 마우스를 쥐고, 왼손에는 키셋을 들게 되는 구조죠. 이 장치에는 피아노 건반처럼 생긴 다섯 개의 버튼이 있습니다.


마우스(특히 세 개의 버튼이 있는 마우스)와 함께 사용하면, 키셋을 통해 알파벳의 모든 글자를 입력하고 단축 명령어도 실행할 수 있습니다. 즉, 기존의 키보드는 보조적인 장치가 되거나 아예 필요 없게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사용자는 더 이상 손가락을 보기 위해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고, 화면만 바라보면 됩니다.

이것이 미래의 방식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사실은 과거의 방식입니다.



Doug Engelbart with a three-button mouse and keyset.

더그 엥겔바트(Doug Engelbart)는 1960년대에 키셋을 발명했습니다. 그는 마우스를 만든 인물이기도 합니다.


엥겔바트가 만든 최초의 마우스는 나무 블록으로, 카드 세 벌을 쌓은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금속 바퀴 위에서 회전했고, 버튼은 세 개가 달려 있었습니다.




Engelbart’s first mouse. Engelbart quickly added two more buttons. Credit: Luisa Beck

단순히 클릭하고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고, 더그 엥겔바트는 마우스를 키셋과 함께 사용해 오늘날에는 키보드 없이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다양한 명령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습니다.


예를 들어, 워드 프로세싱을 생각해 봅시다. 다섯 개 버튼으로 구성된 키셋은 각 버튼을 조합해 누름으로써 26개의 알파벳을 모두 입력할 수 있었습니다. 타자를 배우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했지만, 엥겔바트는 반복을 통해 근육 기억이 자연스럽게 입력 방식을 익히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Courtesy of SRI International and the Doug Engelbart Institute

엥겔바트 자신도 키셋을 배우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사용의 편리함'은 최우선 순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컴퓨터 입력이 가능한 한 강력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만큼 일정 수준의 복잡성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엥겔바트는 사람들이 자동차 조작을 배우듯, 마우스와 키셋도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익혀나갈 것이라고 상상했습니다.


엥겔바트의 마우스와 키셋이 요구하는 숙련도와 집중력은, 컴퓨터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그의 근본적인 철학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컴퓨터가 단순한 계산기를 넘어서 사람들 간의 소통과 협업을 도와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1950년대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이 컴퓨터를 단순히 대형 계산기로만 보던 시각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1960년대 초반, 엥겔바트는 정부로부터 자금을 받아 자신의 연구소를 세우게 됩니다. 그의 연구팀은 온라인 협업 시스템 전체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영상 회의, 공동 문서 편집, 개요 작성 도구, 하이퍼링크, 그리고 물론 마우스와 키셋 같은 장치들을 실험했습니다. 이 모든 아이디어를 선보였던 전설적인 발표는 오늘날 "모든 데모의 어머니(The Mother of All Demos)"라 불립니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아이디어들은 당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지도, 상업적으로 성공하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1970년대 후반, 엥겔바트의 연구팀은 자금이 끊기며 해체됐습니다. 이후 팀원들 대부분은 당시 최첨단 컴퓨터 연구소였던 제록스 PARC로 옮겼고, 엥겔바트의 여러 프로토타입도 함께 이동했습니다.


그렇게 1979년, 스티브 잡스가 제록스 PARC를 방문하면서 처음으로 마우스(와 키셋)를 보게 됩니다.
(이 장면은 영화 Pirates of Silicon Valley에서 극적으로 재현되기도 했습니다.)


https://youtu.be/2u70CgBr-OI


잡스는 마우스와 키셋의 조합을 흥미롭게 보았지만, 너무 복잡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컴퓨터가 가능한 한 단순하고 사용자 친화적이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지시에 따라, 애플이 만든 마우스는 버튼이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Courtesy of the All About Apple museum


애플은 초기 개인용 컴퓨터에 엥겔바트의 키셋을 포함시키는 것조차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키셋은 가격이 비싸고, 덩치가 크며, 사용법도 복잡했기 때문입니다. 잡스는 사람들이 몇 달 동안 배워야 쓸 수 있는 제품보다는, 애플 매장에 들어와서 몇 분 안에 제품을 체험하고 이해한 뒤 바로 구매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애플 제품은 너무나 직관적이라 어린아이조차 쉽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엥겔바트는 이렇게 세련되고 단순한 애플 제품을 종종 '세발자전거'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세발자전거는 특별한 훈련 없이도 탈 수 있고, 골목을 도는 데는 충분히 좋습니다. 하지만 언덕을 오르거나 먼 거리를 가려면, 진짜 자전거가 필요합니다. 기어와 브레이크가 달려 있고, 균형을 잡고 조작법을 익히는 데 시간이 필요한 자전거 말이죠.


Photo courtesy of SRI International and the Doug Engelbart Institute


엥겔바트는 소비자 시장이 '배우기 쉬운(Learnable)' 장치보다 '사용하기 쉬운(User-friendly)' 장치를 우선시한 결과, 결국 우리에게 팔리고 있는 건 대부분 ‘세발자전거’ 일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Christina Engelbart. Credit: Luisa Beck


하지만, 잡스 같은 인물이 없었다면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을 것이고, 나머지 대다수는 아예 바퀴 달린 어떤 것도 시도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용의 용이성’이라는 패러다임이 결국은 주류가 되었지만, 엥겔바트의 철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기술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놈(monome)’이라는 장치가 있는데, 주로 음악 작업에 사용되며 그 복잡성은 제작자조차 완전히 숙달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제작자 중 한 명인 브라이언 크랩트리(Brian Crabtree)는 그 뿌리가 더그 엥겔바트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musicbox-ft.jpg monome 출처 : WIRED


어쩌면 가장 좋은 디자인은, 우리가 원할 때 배움을 위한 명확한 경로를 제시해 주는 디자인일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원한다면 언덕을 오를 수 있도록, 세발자전거에서 자전거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는 것입니다.


968882_10154835435765223_8775700294040222960_n-600x406.jpg Courtesy of SRI International and the Doug Engelbart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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