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이 추천해 주신 HCI연구
들어가며
저는 9월부터 과학기술원 디자인학과 소속의 HCI대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입학 이후 최대 발견이라고 한다면 지도 교수님이 추천해 주신 두 개의 논문일겁니다.
한 주에 논문 5편씩은 보려고 노력하는데 모든 논문이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좋지 않다 보다는 이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네요). 논문을 10편쯤 읽으면 절반은 흥미로운 부분이 있고 남은 절반의 절반만 마음에 듭니다. 그래서 교수님이 추천해 주신 두 논문의 발견이 정말 반가웠습니다.
가끔 어떤 글을 읽으면 말이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논문도 그랬습니다. 내가 하고 있던 생각이 터무니없지는 않구나라는 안도감도 들고, 느낌적으로만 느꼈던걸 지칭하는 언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게 또 나름의 체계가 있다는 걸 배울 수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추천해 주신 첫 번째 논문은 Tangible Bits: Towards Seamless Interfaces between People, Bits and Atoms. 한국어로 번역하면 [탠저블 비트: 사람, 비트, 원자 간의 매끄러운 인터페이스를 향하여]입니다.
이 글에서는 첫 번째 논문이 제안하는 핵심을 예시와 함께 간략하게 정리하고 내가 느꼈던 바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논문
Tangible Bits: Towards Seamless Interfaces between People, Bits and Atoms
[탠저블 비트: 사람, 비트, 원자 간의 매끄러운 인터페이스를 향하여]
이 논문은 1997년 MIT 미디어랩의 이시이 히로시(Hiroshi Ishii)와 브리그 울머(Brygg Ullmer)에 의해 쓰였습니다. 보아하니 1997년에 ACM CHI에도 낸 것 같아요. 논문에서는 [Tangible Bits]라는 비전을 제안합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컴퓨터 인터페이스(화면, 마우스, 키보드)가 인간의 감각과 몸짓을 제한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연구자들은 "비트(bits)를 만질 수 있게 만든다”는 아이디어를 통해, 디지털 정보가 단순히 화면 속 픽셀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사물과 공간을 통해 체험될 수 있음을 몇 가지 예시를 통해 보여줍니다.
논문이 제안하는 핵심 개념은 세 가지이고 각 개념에 해당하는 프로토타입 예시들이 있습니다.
1. 인터랙티브 서피스(Interactive Surfaces)
벽, 책상, 창문 같은 물리적 표면을 디지털 세계와 연결된 인터페이스로 확장합니다.
예시) transBOARD도 "디지털 흡수형 표면"으로서 인터랙티브 서피스의 변형 사례.
화이트보드의 펜 획은 카드에 가상으로 "저장"되고 가상공간에 "기록"됩니다. 따라서 사용자는 회의 내용을 카드에 보관할 수 있습니다.
2. 비트와 아톰의 결합(Coupling of Bits and Atoms)
물리적인 사물을 디지털 데이터와 연결해, 손으로 잡고 조작할 수 있는 “물리적 아이콘(phicon)”을 제안합니다. 이러한 물리적 아이콘은 디지털 아이콘과 같은 역할을 수행합니다.
예시) metaDESK의 phicon : MIT 건물 모형을 움직여 지도를 회전·확대·축소.
MIT 그레이트 돔과 미디어 랩 건물과 같은 랜드마크의 물리적 모델을 파이콘(phicon)으로 사용하여 사용자가 MIT 캠퍼스의 2D 및 3D 그래픽 지도를 조작할 수 있도록 합니다.
3. 앰비언트 미디어(Ambient Media)
빛, 소리, 바람, 물결 같은 주변 환경의 매체를 활용해, 주의의 중심이 아닌 ‘주변(periphery)’에서도 정보를 감지할 수 있게 합니다.
예시) ambientROOM: 빛, 물결, 소리 등을 통해 배경 정보가 은은히 드러나는 방
주변광, 그림자, 소리, 기류, 물 흐름과 같은 주변 매체를 사용하여 그래픽 집약적이고 인지적으로 전경을 이루는 상호작용을 보완합니다.
이 논문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인터페이스는 더 이상 화면 속에만 머물 필요가 없으며, 세계 자체가 인터페이스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정보가 손끝의 촉감, 공간의 분위기, 주변의 미묘한 변화 속에서 드러날 때, 인간과 기술의 관계는 훨씬 더 직관적이고 풍부해진다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저는 이 논문을 읽고 내가 본래 즐기는 아날로그적인 경험. 즉 손으로 만져 탄성과 소재의 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물리적인 조작감과 "물리세계의 경험"에 대해 이런 접근도 가능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또, 1997년에도 이미 디지털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에 따분함을 느껴 이런 시도를 했다는 부분도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2025년에도 여전히 물리적 인터페이스가 흥한 시대는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과 AR/VR, IoT 기기를 통해 끊임없이 디지털과 물리적 세계를 넘나듭니다. 여전히 많은 경험은 ‘사각형 화면’에 갇혀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 논문의 인사이트가 꽤나 흥미로웠습니다.
그런가 하면 28년 동안 도래하지 않은 물성이 있는 인터페이스의 부흥(?)은 앞으로도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또한 연구자가 말하는 물리적 세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richness of human senses"는 명확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다 비효율적인 방식인 비디지털화할 정도일까를 고민해 보면 그 당위에 선뜻 납득이 안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또다시!) 앞으로의 미래 인터페이스 관점에서는, AI와 센서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가 인터페이스가 되는 방향. 즉,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과 물건이 곧바로 정보와 연결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물이 지능을 가지게 되면 기존 사물의 가진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논문의 첫 페이지에는 인류가 사용해 왔던 수많은 계측기구들을 아카이빙 하는 하버드 박물관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 시대의 감각적 풍부함을 저 또한 그리워하는 것 같습니다(경험해 본 적도 없지만...)
[참고자료]
https://tangible.media.mit.edu/project/metadesk/
https://tangible.media.mit.edu/project/ambientroom/
https://tangible.media.mit.edu/project/trans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