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랙션과 인터페이스에 대한 매우 사적인 정의
인터랙션인터페이스 수업의 첫 과제로 인터랙션과 인터페이스를 스스로 정의해 봤다. 보편적으로 모바일 환경 안에서 다루는 단어이지만 수업에서는 개념적인, 좀 더 넓은 의미의 인터랙션과 인터페이스로 바라보고자 했다. 또한 여기서는 디자인을 내용이 아닌 형식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INTERACTION
인터랙션의 사전적 의미는 상호작용이다. 상호작용이란 두 대상 혹은 다양한 대상 사이에 정보가 오가고 그것에 따라 반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말을 어렵게 했지만 사실 우리 모두 일상에서 매 순간 경험하는 것이다. 아침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도 인터랙션이고 아침의 알람 소리를 듣고 힘들게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인터랙션이다. 심지어 꽃밭의 예쁜 꽃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 또한 인터랙션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인터랙션의 범위를 넓게 본 광의의 인터랙션을 생각해 보았다. 디자인에서의 인터랙션은 도구적이다. 사용자의 액션-input에 대해 사용자가 기대하는, 혹은 제공하고자 하는 서비스에 부합하는 반응-output으로 제품에 긍정적 경험을 강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광의의 인터랙션과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다만 자극(input)에 대해 특정한 목적을 위해 설계된 반응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더 예측 가능하고 정리되어 있다. 나는 인터랙션을 자극에 대한 반응의 관계라고 정의한다.
INTERFACE
인터페이스의 사전적 정의는 서로 다른 사물이나 시스템 간에 소통이 가능하게 하도록 설계한 상호작용 방식이다. 인터랙션의 사전적 정의에서 사용된 '상호작용'이 재등장한다. 즉 인터페이스는 서로 다른 소통 방식을 사용하는 대상들의 인터랙션을 돕는 방식이다. 마치 서로 다른 차원의 두 세계에 사는 두 사람을 연결해 주는 방법과 같다. 이때 사람은 인터페이스와 직접적으로 접촉 소통한다. 두 대상을 인터페이스가 매개해 주는 것이다. 서로 다른 시스템을 매개해 줄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인터페이스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예시로 컴퓨터와 사람이 있다. 디자인 전공생들에게 매우 친숙한 프로그램 중에는 Adobe의 일러스트레이터도 그러하다.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각적 단서를 통해 사람은 펜툴을 선택하고 직관적으로 선을 그리고 행위의 결과인 선의 모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위에서 정의한 인터랙션이 일어난다. 한편 인터페이스는 물리적인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마우스가 그렇다. 마우스를 움직여보자. 사용자는 커서를 XY 축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모니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 마우스 왼쪽 버튼으로 대상을 선택하고 오른쪽 버튼으로 속성을 들어갈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스크롤을 활용해 디지털 세계의 무한함을 스크롤로 살펴볼 수도 있다. 나는 인터페이스를 자극과 반응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정의한다.
INTERACTION + INTERFACE
둘의 관계는 도구와 그 효과 방식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매개 도구인 인터페이스라를 활용해 대상들이 효과를 주고받는다. 인터페이스와 인터랙션의 결과 하나의 경험이 만들어지게 된다. 결국 이 두 가지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경험이 되기도 하고 나쁜 경험이 되기도 한다.
+ 주절주절 이지만 내게는 중요한 이야기
이 글의 맨 처음에 내용보다는 형식을 중심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했다. 하지만 사실 내용과 형식은 마치 무를 썰듯 딱! 분리되는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내 생각은 한병철의 선불교의 철학에서 일본의 정형시 중 하나인 하이쿠를 항아리에 비유해 설명하는 부분에서 시작한 생각인 것 같다.
책에서 하이쿠는 속이 빈 항아리와 닮았다고 한다. 내용이 비어있는 하이쿠는 항아리와 같아서 어떤 뜻을 담고 있다기보다 그 항아리 안에서 울리는 소리가 핵심이라 해석했다. (누군가는) 내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사실 항아리의 두께(단면) 그 자체이고 항아리는 빈 것이라서 읽는 사람에게 울림을 준다는 것이다.
잠깐 옛날이야기
대학교 2학년, 매일 디자인을 생각했던지라 마음에 드는 개념이면 어떻게든 디자인과 연관 지으려고 했다(모든 원리는 서로 다 통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이런 비유 안에서 생각하기를 포기 못하겠다. 내용은 무엇이든 가능하다. 무엇이든 가능하니 뭐가 들어있던 디자이너로서는 큰 상관없다. 내용은 디자이너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기에 제품이 사용자에게 어떻게 가 닿을까라는 형식을 고민하는 게 적절하다고 아직까지 생각한다. 이때 방식은 항아리의 울림과 같지 않을까?
다만 사용자가 느끼는 '경험'은 형식을 통해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을 필요는 없겠다.
위대한 부처,
그는 꾸벅꾸벅 좁니다
봄날 내내.
-마사오카 시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