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3월의 우리들을 기억하며
우리의 첫 밥상머리 추억
고등학교 2학년 반배치를 받은 첫날의 기억을 따라가 본다.
우리는 담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담임은 키가 호호아줌마처럼 작은 할머니였다. 매서운 화장에 선생님의 복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화려한 스팽글이 가득 달린 정장을 입은 모습였다. 그 작은 키에 손바닥으로 어수선한 아이들을 기선제압하려고 교탁을 세게 내리치던 그녀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너무 보잘것없었다. 교사로서의 위엄도 없고 학생들을 사랑으로 대하려는 의지도 없어 보였다.
새로 부임한 생물 담당 총각 선생님이 담임이 되길 내심 기대했건만..
담임의 화장은 하얘도 너무 하얀 분칠을 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건조한 피부 위에 마구잡이로 때려댄 분은 가뭄이 난 강바닥처럼 쩍쩍하고 갈라지는 형태였다.
‘내 이름은 영자다. 이영자.’
목소리는 찢어지는 듯 혹은 가래가 낀 듯 매우 탁했다.
개그우먼 이영자? 이름과 얼굴도 너무 안 어울린다. 아이들은 수군대며 웃어댔고 담임은 다시 교탁을 내치며 조용히 하라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자신이 사는 곳은 매우 국제적이라며 삼성동의 런던빌라라고 소개했다. 그 또한 아이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잘난 체하는 거야? 아니면.. 우리 보고 웃으라는 거야?’
억지웃음을 지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자신이 강남에서 교사생활을 하고 이곳 신림동에 부임하였다며 신림동이 너무 후지다고 우리가 사는 동네를 무시하는 듯한 얘기들을 주야장천 떠들어댔다. 그리고는 자신이 국사 선생님이라고 소개했다. 이 부분이 가장 충격이었다.
‘국사.. 라니.. 저 냥반이 가르치는 국사는 얼마나 재미없을까? 보나 마나 너무 지루할 거야’
도대체 가늠할 수도 없었다.
‘자 모두 복도로 나와라~’ 영자의 호통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웠다.
이건 개학 첫날 불문이다. 모두 나와 키순서대로 서서 번호를 찾는 가장 중요한 절차이기 때문이다. 이 번호가 일 년의 내 번호가 되는 것이며 그 번호는 빳빳한 출석부에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키 작은 나는 늘 5~6번 언더였다. 그렇게 네 개의 분단 앞 번호를 따고 교탁 앞자리를 차지하였다.
‘올해도 작년처럼 나는 그저 교탁에 가려진 칠판을 보느라 목을 쭉쭉 뽑아야겠군..’
그렇게 만난 나의 짝 현주. 동그란 눈에 제법 이쁘게 생겼는데 말수가 많아 보이진 않았다. 인사를 나누고 그렇게 우리의 고2는 시작되었다.
점심시간은 현주와 함께 도시락을 먹게 되었는데 뒷줄에 앉은 친구들도 함께 먹으며 기선이를 알게 되었다. 기선의 짝은 남희. 남희는 중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여서 우리는 그렇게 4인용 식탁을 만들어 점심메이트가 되었다. 4인용 식탁을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앞에 앉은 우리가 의자만 돌리면 끝!!
우리의 점심밥통은 개성 없이 모두 똑같은 검은색 네모진 보온 도시락였다.
각자의 반찬을 꺼내어 키득대며 먹었던 우리의 점심시간. 반찬은 대략 기억해 보자면 검은 콩자반, 김치, 바싹 볶아낸 멸치, 계란말이, 김 따위였다. 이후로도 우리 넷은 같은 독서실도 다니고 놀러도 다니며 고2의 1993년도를 무탈하게 잘 보냈더랬다.
남희는 배구, 야구를 좋아해서 스포츠 뉴스를 꽤나 많이 알고 있었다. 또 재밌는 기억 하나 더! 남희는 해도 해도 너무할 정도로 수업시간에 잤으며 한때 별명은 잠자는 사마귀. 혹은 수면발작 환자였다. 기선이는 미국영화배우의 이름을 줄줄 외며 영화이야기 하는 걸 좋아했다. 둘은 특히 그림도 잘 그려서 우리 반에 미술선생이 오면 항상 둘의 그림을 가만히 지켜보곤 했다. 현주는 평소엔 조용한데 한번 웃으면 눈이 하회탈이 되며 특이한 웃음소리를 내던 친구다. 그리고 기선은 그때도 매우 이성적이어서 감정적으로 격해지는 우리를 늘 차분히 다독였다. 나는 말할 것도 없이 웃음소리 크고 시끄럽던 아이였으니 생략하자.
그 후로 30년이 넘어 우리는 지금도 만난다.
4 인용식탁위에는 보온도시락 대신 아메리카노와 케이크가 놓여있다. 혹은 근사한 음식들이 우리의 식탁을 가득 메운다.
이제 우리 나이는 50이고 엄마가 싸준 보온도시락은 온 데 간데없지만 식탁에서 마주하는 우리의 모습은 영락없이 고등학교 2학년 교실 의자를 돌리고 밥 먹던 그때의 책상 식탁 앞모습이다. 조만간 친구들을 만나 또 추억의 책 밥상 앞에 마주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