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또 김정민
몇 해 전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를 재미나게 봤었다. 제목처럼 드라마에는 두 명의 오해영이 등장한다. 배우 서현진이 연기한 오해영은 학창 시절 인기 많은 또 다른 오해영(배우 전혜빈)에게 늘 뒤쳐지고 외모도 항상 비교되며 의기소침한 모습이었다.
오늘은 십대시절, 드라마같던 나의 '또 김정민'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고등학교 입학 후 1학년 때의 이야기다. 그때 그 시절에는 국어, 문학, 작문이라는 과목이 트로이카 체제로 국어영역에서 학생들의 역량을 끌어가던 시스템이었다. 당시 담임선생님도 국어선생님이었던 데다가 문학선생님도 매우 활기차고 화끈한 여걸 스타일의 선생님이어서 나는 국어 과목에 매우 흥미를 느끼며 고등학교 1학년 생활을 해내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작문이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말 그대로 글을 지어 써내는 것이 이 과목의 과제였다. 작문선생님은 키가 엄청 작은 데다가 앞머리는 뱅 스타일로 쳐내고 긴 생머리를 흩날리며 복도를 걸어 다녀서 아이들 사이에서는 공주병 걸린 선생님으로 통했다. 그리고 잘 웃지 않아서 일명 ‘얼음공주’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그리고 선생님은 우리가 궁금해하지도 않던 자신의 첫사랑이야기를 해주며 혼자 사랑에 빠진듯한 표정과 제스처로 연신 연기를 해댔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도 약간 곰보처럼 성근 자국이 있었는데 화장을 무척 진하게 하다 보니 그 움푹 패인 피부표면 안에 화장품 베이스가 가득 담겨있는 형상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누구보다 감성적이셔서 교과서의 예문들을 학생들에게 읽게 한 뒤 중간에 자신이 낚아채서 다시 자신의 목소리로 읽어내시며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이 부분.. 너무 낭만적이지 않아요 여러분? 저는 이 부분을 소리 내어 읽을 때마다 온몸에 전율이 온답니다!”
‘어휴.. 왜 저래~왜 저렇게 오버를 하는 거야..’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오글거리는 마음을 눌러내기도 하였다.
어느덧 가을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다녀온 뒤 중간고사 과제로 선생님은 글쓰기 숙제를 내주셨다. 글의 주제는 당연히 ‘경주’와 관련된 이야기여야만 한다고 하셨고 기행문의 형식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나는 내가 글쓰기를 잘한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중학교 때 딱 한번 국어선생님께서 내 시를 시화전에 출품하라고 하시면서 하셨던 말씀에 상처를 받고 나서부터는 더더욱 그러했다.
“이 시! 네가 쓴 거 맞니? 어디서 뱃겨온 거 아니지?”
당연히 내가 써낸 시였지만 선생님의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마음이 몹시 상해서 시화전 출품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런데 작문시간에 나의 글이 당당히 우리 반에서 가장 잘 쓴 기행문으로 뽑히게 된 것이다. 그 깐깐하던 얼음공주가 나의 글을 53명 친구들 앞에서 대놓고 인정하고 칭찬하다니!
글의 내용이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를 신라 시대의 연못이 있던 자리로 상상하며 배를 타고 오르내리던 신라인의 시선으로 묘사한 것을 선생님께서는 높게 평가해 주셨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은 내 글에 대해
“지금까지 이렇게 기행문을 쓴 학생은 처음 봤어요. 정말 형식, 묘사, 감정의 표현까지 매우 잘 쓴 글입니다!!”
내 얼굴은 거의 타들어가는 화로구이 속 고구마처럼 벌겋게 되었고 그 열은 쉬는 시간이 돼도 식지 않았다.
친구들은 “오~~~ 김정민~~~~ 작가네 작가!!” 하며 추켜세워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작문선생님은 1반부터 12반까지 다 돌아가면서 내 기행문을 정성껏 읽어주셨는데 당시 옆반의 또 다른 김정민이 이 사건의 중심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김정민은 얼굴이 예쁘지는 않았지만 세련된 옷차림에 인기가 꽤나 많은 소위 요즘 말로 인싸인 친구였다. 내 기억에 그 김정민은 남학생들에게도 꽤 인기가 있어 내가 정말 부러워했었다. 그나마 내가 그 친구보다 나았던 건 공부였는데 몇몇 친구들이 나를 '공부 잘하는 정민'으로 불러줄 때 아주 조금 으쓱했을 뿐, '인기 많은 김정민'에게는 댈 것도 아니었다.
작문 선생님은 내 글을 다른 반에 가서 '김정민의 글'이라고만 말씀하셨기 때문에 당시 우리 반 빼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당연히 그 글이 '인기 많은 김정민'의 글이라고 알 고들 있었다.
나는 인생 처음으로 내가 쓴 글을 인정받았지만 안타깝게도 같은 이름의 김정민에게 내 글이 빼앗긴 듯한 수모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내 글은 꽤나 잘 쓰인 기행문으로 선생님께서 자료로 삼으시겠다고 가져가셨고, 나는 그 학기 작문 성적을 100점으로 마무리하였다.
고교 시절 '인기 많은 김정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글쓰기로 처음 인정받았던 그 시절의 내가 있었기에 오늘도 웃으며 이 글을 쓰고 있지 않겠는가?
-그때 그 김정민도 어디에선가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