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겨울방학

일지학원 이야기

by 김상궁

내가 중학교 3학년 올라갈 때의 이야기다.

당시 우리 동네는 관악구 신림동과 지금의 금천구 독산동의 경계지역으로 예나 지금이나 개발이 더뎌 이름만 서울인 그런 후진 동네였다. 이처럼 동네가 후지다 보니 당연히 이렇다 할 학원도 마땅치 않았는데 1991년 중3을 준비해야 하던 12월, 드디어 우리 동네에 강남출신의 원장이 운영한다는 학원이 오픈하였다. 당시 학원의 위치는 구로전화국 사거리 즈음에 위치한 건물이었고, 1층에는 카운트다운이라는 값비싼 브랜드 옷가게도 오픈을 한 나름 세련된 건물이었다.

학원은 이 건물의 4층에 자리 잡고 입소문에 입소문이 더해져 11월에 가오픈했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반이 없다는 식의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친구 신혜의 소개로 학원을 알게 된 나도 급한 맘에 엄마를 졸라 드디어 학원 테스트를 받으러 가게 되었다.

학원은 하얀색의 깔끔한 인테리어로 강의실은 총 6개가 있었으며 두 개의 강의실은 합반이나 통합강의를 할 수 있도록 넓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웠던 건 칸막이로 조성된 영어 강의실인 랩실이 있었다는 사실인데 그 당시로는 꽤나 파격적인 투자로 보였다. 나는 내 생애 최초로 학원을 보내달라고 엄마를 졸랐고 엄마는 그러고마 하셨었다. 큰 딸이 공부하겠다는데 과외는 못해줄망정 학원 정도는 충분히 보내주실 의향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원장을 만나던 날 나는 너무 충격을 받고야 말았다. 원장의 외모가 정말 볼품이 없었던 것이다. 얼굴은 너무 크고 땅딸만 한 키여서 5등신 정도로 보였던 데다 배는 앞으로 뽈록 튀어나와 셔츠 사이로 두꺼운 뱃가죽이 보이기까지 했다. 아직 결혼도 안 했다는데 머리는 훌러덩 벗겨져 50은 다 되어 보이는 원장은 나름 우리 모녀를 진심으로 환영하며 눈은 게슴츠레 뜬 채로 자신의 학원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침을 튀겨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 원장을 좋아하는 여자가 과연 있을까? 아무리 수학을 잘 가르치면 뭐 해. 저 배 좀 봐..’

나는 원장의 설명을 들으며 계속 그런 생각만 했다.

“김정민 학생~공부는 어느 정도 하지요? 우리 학원은 반배치 테스트를 해서 반을 A, B, C로 편성 중입니다.”

“아~얘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이 상위권이긴 한데 수학이 많이 약한 편이에요~”

“저희 학원은 수학을 메인으로 반배치를 하는데.. 그럼 A반은 어렵겠군요?”

엄마는 저자세로 나의 수학실력을 고스란히 원장에게 고해바쳤고, 나는 졸지에 수학 못하는 학생이 되어 자동으로 B반행이 결정되어 버렸다.

“하지만 어머님~수학은 걱정하지 마세요~제가 이래 봬도 강남에서 고등 수학 강의하던 사람입니다. 수학은 무조건 100점 나올 테니 걱정 마십시오!!”

원장은 호들갑을 떨며 자신만만해했다. 이후 학원을 다니며 알게된 원장의 실체는 갖은 거짓말로 학부모를 현혹시키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그를 '양뻥'이라 불렀다.

그렇게 중3 들어가던 겨울 방학에 나는 일지학원에서 본격적인 학원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보다 더 긴장을 하며 수학, 영어, 과학까지 수강해 성적을 올리겠다는 의지가 충천했다. 들리는 소문으로 학원에는 각 학교의 전교 권 친구들이 가득했는데 우리 학교 1등도 당연히 있었고 옆 학교 혹은 주변의 중학교에서 난다 긴다 하는 아이들이 어떻게들 알고 일지학원에 다 와서 앉아있었다. 처음에는 모두들 긴장하고 공부만 하느라 친한 친구 아니면 떠들지도 않고 조용히 학원을 다니기만 했다. 그렇지만 16살 아이들이 모인 곳이 어디 그러기만 하겠는가? 우리는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슬슬 놀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 원장은 수업을 하며 아이들에게 별명을 하나씩 붙여주곤 했는데, 나는 얼굴이 동그랗고 반짝거린다며 쟁반, 혹은 정민의 ‘정’을 따서 정어리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다. 또 조용히 공부만 하던 홍상우라는 친구는 누가 말만 시키면 얼굴이 불타올라 별명이 홍시가 되었고, 키가 크고 서장훈을 닮았던 훈이라는 친구는 고릴라라는 별명으로 약간 엄석대스러운 구석이 있었으며, 교회 친구였던 영민이는 이곳에서도 영만이로 불리며 특유의 유머로 친구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리고 내 친구 황신혜는 이름에 걸맞게 예쁜 얼굴로 이곳에서도 남학생들에게 단연 인기 1위였는데, 신혜의 먼 친척이었던 김진원은 혼자 말하고 웃고 떠드는 원맨쇼를 잘해서 원맨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실 내가 중학교 시절 정말 좋아했던 친구가 바로 김진원인데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쓰도록 하겠다.

그렇게 일지학원은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우리들의 10대 시절 추억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일산에서 신림동 교회로 가는 길은 반드시 이 일지학원 건물을 지나가데 되는데, 그 건물은 40년 가까이 리모델링도 안 하고 여전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색이 바랜 우중충한 모습으로 서있다. 현재 건물의 용도는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주변의 환경을 보면 어쩐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나의 기억 속에는 나를 비롯한 그때의 친구들이 여전히 학원을 들락날락하며 간식거리를 사서 학원 입구 정문을 서성이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말이다.

차를 타고 가며 나는 문득 옛날 생각이 떠올라 아들과 딸에게 학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얘들아~ 저 건물이 엄마가 중학교 때 다니던 학원 건물이야~”

“와~너무 낡았다!! 어떻게 저런 건물에 학원이 있었어?”

“너무 후져!” 아이들은 무심한 듯 그렇게들 외치고는 다시 핸드폰 삼매경이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 그러게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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