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 속 첫 연예인 변진섭

그대 내게 다시..는 오지 않는 시간

by 김상궁

“언니~언니~<가요톱텐>에 지금 변진섭 나와~~~”
TV를 보던 동생은 나를 부르며 소리쳤다. 나는 하던 숙제를 내동댕이 치고 TV앞으로 뛰어가 얼른 앉았다.
‘와.. 진섭오빠 너무 좋아^^ 노래는 또 왜 이렇게 잘하는 거야.. 실제로 보고 싶다ㅜ’
나는 사생팬까지는 아니어도 변진섭 카세트테이프는 꼭 구입해서 오토리버스를 이용해 건전지가 다 될 때까지 줄곧 들었다. 그리고 신문에 나오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다 외워놨다가 진섭오빠가 나오는 방송을 하는 시간만 되면 반드시 텔레비전 앞에 앉았었다.
나는 특히 오동통한 진섭오빠의 볼이 너무 귀여웠는데 사람들이 아기공룡 둘리라고 부르는 건 마뜩하지 않았다. 둘리라니.. 나는 오빠가 절대 둘리얼굴은 아니라고 혼자 생각하곤 했다.
‘홀로 된다는 것’으로 데뷔를 하고 가수 변진섭의 인기는 멈출 줄을 모르고 고공행진을 했다.
당시 그의 집은 내가 살던 신림동 미도 아파트 옆에 위치한 독산동 단독주택이었는데 나는 어느 날인가 꼭 오빠를 직접 내 눈으로 봐야겠다고 결심하였다.
나는 가필드 팬시점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편지지 세트를 사고 나름의 작은 선물을 사서 직접 포장도 하였다. 편지는 총 3장을 썼는데 깨알 같은 글씨로 줄마다 색깔을 바꿔가며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고 얼마나 당신의 노래를 열렬히 듣고 있는지’에 대한 헌정사 같은 글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편지와 선물을 들고 친구와 함께 오빠의 집 앞으로 갔다. 집 앞은 이미 열혈팬들로 문전성시였으며 주변 아주머니들은 지나가며
“아이고~~ 오늘 변진섭 집에 안 와요~~~~”

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그대로 집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 골목으로 차 한 대가 들어오는 게 보였고 그 차 안에 그가 타고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꺄~~~~~오빠~~~~~~~”
이미 나보다 기센 언니 팬들이 오빠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주변을 에워쌌다. 키가 작았던 나는 마치 예수님을 보기엔 키가 너무 작아 나무에 올랐던 삭개오처럼 어디 올라갈 곳이 있는지를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나는 어떻게든 진섭오빠의 손에 내가 준비한 거룩한 편지와 선물을 꼭 전달해야만 했다.
오빠는 예상대로 친절했으며 웃는 얼굴은 너무나 사랑스러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인파를 뚫고 나는 직진하여 오빠가 서있는 대문 계단 앞까지 걸어 나갔다. 그리고 선물을 그의 품 안에 꽂아 넣었다. 성공이다!
“여러분~너무 늦었어요~집에 가서 얼른 공부하세요!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야지~~~”
‘너무해.. 공부라니.. 대학이라니..’
여기까지 와서 기다렸건만 꼰대 담임한테나 듣던 공부소리를 진섭 오빠의 감미로운 음성으로 듣게 되다니 너무 잔인했다.
그렇게 나는 중학생활 내내 오래도록 진섭오빠의 노래를 들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후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1994년도의 일이다.
친구 남희도 나와 함께 변진섭 오빠 팬을 자처하며 같이 좋아라 했었다.
“정민아~이번 주 금요일에 삼풍백화점 콘서트홀에서 미니 콘서트한대. 변진섭, 김건모, 잼이 나온대. 우리 야자 째고 가자!”
“와~정말!! 그래그래 꼭 가자!!”
남희는 가수나 운동선수 덕질을 꽤나 진지하게 하던 친구라 적극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보러 가는 데는 주저함이 없었다. 우리는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몰래 학교를 빠져나와 2호선을 타고 교대역에 내려 삼풍백화점까지 걸어갔다. 남희는 필름 카메라까지 챙겨 오빠와의 사진촬영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다. 나는 그런 남희 덕분에 드디어 내 생애 두 번째로 변진섭 오빠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삼풍 백화점의 콘서트 홀은 맨 위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조금 늦게 도착해서 우리 자리는 맨 뒤였지만 콘서트홀의 크기가 아담해서 가수들의 얼굴이 제법 다 보였다.
“야~우리 변진섭 노래 끝나자마자 빠져나가서 따라 나가자. 그러면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남희는 온통 진섭오빠와 사진 찍을 생각뿐이었다.
무대에 오른 오빠는 나의 최애곡인 ‘그대 내게 다시’를 열창했다.
‘와.. 정말 멋진 노래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노래가 최고야!’
그렇게 진섭 오빠의 무대가 끝나고 다음 가수들이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던 중, 우리는 나갈 준비를 슬슬 하였다.
“남희야~너 엘리베이터 위치 기억나?”
“어어 아까 저쪽 기둥 뒤였어!”
나와 남희는 콘서트장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부터 찾았다.
“이걸 타고 내려가면 볼 수 있겠지? 아~~ 제발 꼭 만날 수 있길!”
“맞아 맞아~~ 아우 심장 떨려 죽겠어~”
그렇게 우리는 꿈에 부풀어 후다닥 엘리베이터를 탔고 닫힘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잠시만요~~”

하고 변진섭오빠와 그의 매니저가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것이 아닌가?
나와 남희는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지만 우리 둘은 입도 뻥긋 못한 채로 그렇게 조용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남희를 쿡쿡 찌르며 사인을 보냈지만 이미 남희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정면만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흰 옷을 입은 연예인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다음 층에선가 타게 되었다. 세상에나~연예인 잼의 멤버 조진수였다. 그러니까 그 엘리베이터에는 당대 최고 인기 스타인 변진섭과 잼의 조진수, 그리고 나와 남희가 함께 타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를 확 깨는 듯 진섭오빠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들 선배보고 인사 안 해?”
“앗 죄송합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잼입니다.”
완전히 충격 그 자체였다. 인사를 안 한다고 후배에게 쓴소리를 하는 모습은 감미로운 그의 노래 목소리와는 완전 다른 인격체의 목소리였다.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노래를 부르라고 신이 정해준 것이 아닌가? 즉 그의 목소리는 발라드에만 딱 맞춤형인 목소리가 분명했다.
그렇게 1층에 내리자마자 남희는 카메라를 나에게 덜컥 맡기며,
“정민아~나 좀 사진 찍어주라~~~ 너도 찍어 주께!”
“.. 어.. 어 그러지 뭐”
나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굳이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았다.
우리는 오빠를 불러 세웠고 오빠는 엘리베이터 옆에서 엷은 미소를 띠며 남희 옆에 서주셨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는 너무나 빨리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결국 나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러고 1년이 지난 뒤 6월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는 황망한 소식이 뉴스에 연일 보도되었다. 내 생애 딱 한번 가본 그 분홍빛 럭셔리한 백화점이 땅 밑으로 꺼져 버린 모습에 난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남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희야.. 저기 저 사진 속 엘리베이터 타워... 우리가 서있던 그곳 맞지?”
“어우야ㅠㅠ 너무 무서워.. 나도 계속 뉴스 보고 있었어..”

2024년 12월 1일의 일이다.
며칠 전 남편이
“변진섭 콘서트 한다는데 갈래? 너 변진섭 좋아했다며~”
“어... 갈까? 그런데 재미가 있을까?”
난 뭔지 모르게 갑자기 망설여졌다. 그런 내게 남편은
“그냥 가서 옛날 노래 듣는 거지 뭐”

하고는 바로 콘서트 티켓을 예매했다.
우리는 콘서트를 보기 위해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 시간을 넉넉히 두고 도착하였다. 콘서트 현장에는 확실히 우리 또래의 중년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우리 자리는 맨 뒤 정도였는데 내 앞자리 여성분들의 팬심은 거의 하늘을 찌를 듯했다. 남편은 당황해하며 눈으로 말했다.
‘이런 분위기인 줄 몰랐어...’
콘서트의 오프닝무대는 ‘너에게로 또다시’를 락버전으로 리메이크해서 ‘징지기자가장~~’하며 점프를 하는 등 꽤나 혁신적인 시도를 하며 콘서트의 문을 열었다. 화려한 조명과 세션의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가수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사실 내가 더 난감하고 당황했던 건 콘서트 장의 팬들 모두가 소리 지르며 난리법석을 떠는 거였다. 그들에겐 여전히 30년 전 발라드의 황태자 변진섭이었던 것이다.
‘나는 조용히 오빠 옛날 노래 듣고 싶어서 온 건데.. 이거 너무 낯설다..’
진섭 오빠는 오프닝을 마치고 팬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러분~모두 일어서서 다같이 떼창해요~~”
내 앞에 앉은 중년의 여성들은 연신 환호하며 그에게 이렇게 화답하기도 하였다.
“오빠~~~~ 사랑해요~~~ 근데 우리도 이제 늙어서 무릎도 아프고 오래 서있는 건 힘들어요~~~ 호호호호”
진섭오빠는 젊은 시절보다 더 통통 튀는 매력을 어필하며 록가수를 해도 될 법한 가창력을 뽐내기도 하였다. 그런데 왜 나는 예전의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가수 변진섭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일까? 이렇게 별 감흥 없이 콘서트를 보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보던 남편이 말했다.
“나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하면서 자신도 나가고 싶은 핑계를 내게 둘러대는 것 같아 보였다.
“아니야~그래도 ‘그대 내게 다시’는 듣고 가자”

곧 무대에서는 진섭오빠 특유의 편안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 ~내게~~ 다시 돌아오려 하나요~'

눈을 감고 그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오래전 그를 너무나 사랑하던, 그리고 풋풋했던 10대 소녀인 어린 정민도 내 옆에서 함께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이 맘속 가득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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