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반대말은?

정답을 공개합니다

by 김상궁

내가 다니던 문성국민학교는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어 다닐 정도로 학생들이 워낙 많았다. 나의 1학년이 마무리되고 2학년이 되었던 시절로 돌아가본다.
새 학기에 새로 만나게 된 담임선생님은 만화 '소공녀 세라'에 나오는 민틴원장과도 같이 긴 얼굴에 안경을 쓰고 키도 정말 커서 뾰족한 못처럼 생겼지만 나름 웃음이 많았고 털털한 성격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2학년 교실의 내 자리는 창가옆인 1 분단의 두 번째 자리였다. 나는 1학년때도 친구가 거의 없었던 터라 2학년이 되어서도 쉬는 시간마다 자리에 앉아 운동장 쪽을 보는 게 그냥 유일한 즐거움 같은 거였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빠져나와 놀던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운동장의 풍경을 보는 것도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당시 창원에 사는 외삼촌이 선물로 보내준 5단 필통이 내게는 최고의 자부심이기도 하였다. 버튼을 1에서 5까지 누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를테면 1번을 누르면 지우개통이 튀어나오고 2번을 누르면 필통의 하단부가 쓱 하고 빠져나오는 식이었다. 나의 이런 신식 필통은 친구들 사이에서 “나도 한 번만 눌러봐도 돼?”라는 간곡한 부탁을 듣는 기쁨을 주기도 하였다.
나는 함께 뛰어노는 친구는 별로 없었지만 나의 친구는 교실 안에 비치된 몇 권의 동화책들이었다. 혼자 멍하니 운동장을 보는 것이 점점 지루해질 즘 책꽂이에 꽂힌 책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그렇게 빨리 간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던 때인 것으로 기억한다. 책들은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 먼지도 수북이 쌓여 있었고 상태도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책들을 하나씩 꺼내고는 내 자리로 돌아와 쉬는 시간마다 즐겁게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보니 나의 상상력은 내가 잠이 들면 어느 나라의 공주님인 것으로 뒤바뀌는 나름의 상황을 설정하기 시작하였다. 지금 교실에 있는 나는 꿈 속인 것이니 친구가 없다고 해도 크게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이름이 2학년 전체에 소문이 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때 당시 2학년 학기 초에 치러진 국어 낱말 시험이 바로 그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내 기억으로 시험지는 앞뒤로 빼곡하게 문제가 출제되어 있었고 모든 단어들은 바둑칸처럼 네모 안에 써야 하는 형식이었다.
아이들은 시험지를 받자마자
“정말 쉬워~~ 그렇지 그치?”
라고 하며 신나게 써 내려가는 몇몇 친구들도 보였다. 나 또한 자신 있었다.
‘책도 많이 읽었고 낱말 그까짓 거 다 맞을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문제를 다 풀었는데 '가을걷이'라는 말을 한자어로 바꾸는 건 전혀 알 수가 없어서 빈칸으로 두었다. 나를 고민에 빠트린 문제는 '언니'의 반대말을 쓰라는 문제였다.
‘언니의 반대라고? 그럼 누나인가? 아니면 동생? 인가?’
‘답이 이렇게 나뉠 리가 없잖아.. 그렇다면 언니를 뒤집으면 그 반대가 확실하겠군!’
나는 자신 있게 답을 써냈다.
‘니언’
다음날 민틴 원장을 닮은 담임이 이미 복도에서부터 허리를 붙잡고 깔깔 마녀처럼 웃으며 교실로 들어왔다. 아이들도 덩달아 웃어대며
“선생님~~ 왜 웃어요? 뭐가 웃긴대요?”
선생님은 손을 내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면서도 계속 웃어댔다.
‘웃으니까 더 못생겼고 더 뾰족한 마귀할멈 같다’
나는 도통 선생님이 왜 그렇게 웃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이
“김정민~~ 호호호호호”

하고 내 이름을 부르며 또 웃으시는 게 아닌가?
“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얘들아~이번 국어 시험에서 언니의 반대말을 다들 뭐라고 썼니?”
“아우~” “동생” “누나” “형님” 이요!!
그러자 갑자기 선생님이
“김정민이 언니의 반대말을 뭐라고 썼는지 아니? 글쎄 ‘니언’이라고 썼어 ‘니언’~~ 호호호~
그런데 전교에 ‘니언’이라고 쓴 아이는 정민이 밖에 없단다 호호호”
우리 반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고 나는 졸지에 언니의 반대가 동생인 것도 모르는 바보가 되어 버렸다. 이놈의 ‘니언 소동’은 한동안도 식을 줄을 모르고 옆반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회자될 정도로 큰 이슈였다.
당시에 나는 입도 뻥긋 못했지만 나는 아직도 이 시험 ‘문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도대체 언니의 반대말이 왜 동생이나 아우인가? 그렇다면 언니, 누나, 오빠, 형과 같은 단어들에 반대되는 대상을 쓰라고 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 말이다.
그런데 다행인 건 커가면서 이 이야기는 나에 대해 말할 때 아주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되어 주었다는 사실이다. 40년도 더 된 이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니 또 이렇게 쓸 수 있지 않은가?
어릴 적 내가 했던 모든 크고 작은 행동들이 하나 둘 쌓여 지금처럼 쓸수 있는 이야기감이 되어주고 있어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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