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는 한 아이의 얼굴
국민학교 3학년때의 이야기다.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노총각 선생님이었는데 큰 키에 목에는 항상 세련된 스카프를 매고 나름 멋을 좀 아는 선생님이었다. 평이 그닥 좋은 선생님은 아니었으나 유일하게 국민학교 입학후 처음으로 나를 칭찬해 주신 선생님이셨다. 앞서 써두었던 대로 나의 국민학교 1, 2학년 시절은 거의 등 떠밀려 학교를 다닌 터라 좋았던 기억도 없다시피 했는데 신기하게도 담임 선생님이 음악시간에 동요대신 즐겨부른 노래가 지금도 기억난다. 제목은 비목!
'초연이 쓸고 간 깊~~ 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대체 무슨 말인지원~
어렸던 우리들은 대체 우리 반은 왜 교과서에 없는 이상한 노래를 선생님의 풍금반주에 맞추어 신나지도 않고 구슬프기만 한 비목을 불러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저 선생님이 풍금으로 비목의 전주를 갑자기 치시면 목청이 터져라 비목을 불러야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10살짜리 꼬맹이들에게 비목이 웬 말인가 싶다.
아무튼 담임선생님은 한 명씩 이 비목을 부르게 하는 음악시험을 보게 하였는데 내가 바로 이 비목을 구성지게 불러냈던 것이다. 늘 썩은 동태눈알을 하고 퀭하던 선생님은 나의 노래를 듣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손뼉 쳐 박수!! 와~~ 정민이가 노래를 잘하는구나?”
그렇게 나는 선생님의 칭찬 속에 국민학생 3학년에 걸맞은 말투와 행동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친구들도 생기기 시작하였다. 친구들은 내 옆에 와서 무언가를 묻기도 하고 같이 화장실을 가자고도 하며 팔짱을 끼는 아이들도 생기기 시작하여 이때부터 슬슬 학교 다닐 맛이 났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글의 주인공인 내 짝꿍은 다른 친구들과는 뭔가가 특별한 친구였다. 키는 당연히 나의 짝이었으니 매우 작은 축에 속하는 남자아이였다. 행색은 그 시절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낡은 티셔츠와 코르덴 문양의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티셔츠의 왼쪽 가슴에 아주 작은 포켓이 달려있는 옷이었다. 그 아이는 주말에 실내화도 빨지 않은 채로 학교에 오곤 하였으며 머리도 잘 감지 않는 것 같았고 공부도 이해력이 떨어지는 건지 간단한 시험에서도 항상 나머지 공부를 해야 하는 수준의 점수를 받곤 했다. 그런데 대체 뭐가 다른 아이들과 달랐느냐고?
바로 눈동자였다. 그 아이는 왼쪽 눈동자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 아이의 왼쪽 눈은 흰자위에 검은 물감이 풀어진듯한 형태의 눈이었다.
그래서 반 아이들은 외눈박이라며 놀리곤 하였는데 신기하게도 이 친구는 그런 일에 그렇게 크게 연연하지는 않았다. 사실 나도 내 짝꿍에게 친절하게 굴지 않았고 쉬는 시간이 되면 다른 친구들에게 가서 노느라 내 짝이 항상 혼자 앉아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걸 멀리서 지켜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 아이와 친해지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63 빌딩’이었다. 그해 그러니까 1985년 7월에 서울에서 제일 높은 빌딩인 63 빌딩이 개관을 앞두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나에게 길쭉한 빌딩사진이 박혀있는 브로셔를 내밀었다.
“너 이거 가질래? 우리 집에 이거 대따 많아~~”
“이게 뭐야?”
그 아이는 그제 서야 가슴을 활짝 펴며 자신 있게 말했다.
“음~~~ 이건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될 육삼(63) 빌딩이라는 거야!”
“육삼? 육십삼이 아니고?”
“응, 이 빌딩은 육십삼이라고 읽지 않고 육삼이라고 읽는 거야. 그리고 왜 63이냐면 63층이기 때문인데 사실은 60층이래. 나머지 3층은 지하층수야! 그리고 지하에는 수족관도 있어서 물고기가 정말 많대~~ 상어도 있대! 그리고 엄청나게 큰 화면으로 영화도 보는 아이맥스 영화관도 연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나에게만 말해주는 듯 그 아이는 의기양양했으며 한편으로는 꽤나 멋져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그 아이를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우리는 쉬는 시간에도 머리를 맞대고 육삼 빌딩 브로셔를 뚫어져라 보며 계속 육삼 빌딩의 이야기를 줄곧 하였다.
“이 빌딩이 거의 다 지어졌고 조만간 문을 열거야. 그럼 나는 여길 공짜로 놀러 갈 수 있어.”
“왜?? 왜 너는 왜 여길 공짜로 들어가?”
이제야 그 녀석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헤헤. 우리 누나가 20살이거든? 누나가 여기서 일하게 됐어. 이 빌딩의 엘리베이터 안내양을 하게 된대. 그래서 그 가족들을 초대한 다나 봐~정말 부럽지?”
“우와~~~ 좋겠다!”
“우리 누나는 정말 키도 크고 예쁘거든. 그래서 뽑힌 거래!”
그 아이는 연신 히죽대며 자기 누나 자랑도 하며 가족들이 얼마나 화목한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때 그 친구의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 얼굴 각도를 왼쪽 눈이 안 보이게 살짝 틀어보면 굉장히 잘 생긴 얼굴을 가진 아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리고 정면의 그 아이 얼굴을 보니 두 눈에서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정말 신기한 장면이었다. 그때 나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근데 너 왜 한쪽 눈동자가 없는 거야?”
“아~~~ 이거? 나 어릴 때 엄마가 눈에 넣는 약인 줄 알고 어떤 약을 내 눈에 잘못 넣어서 이렇게 되었대.. 그런데 엄마가 내년에 눈동자 이식하는 수술 해준다고 했어!!”
“와~~ 정말이야? 너무너무 잘됐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눈동자가 제대로 자리를 잡아준다면 이 아이는 더없이 빛이 날게 확실하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붙어있는 우리 둘을 아이들은 그냥 지나갈 리가 없었다.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외눈박이랑 정민이는 좋아한대요~~ 좋아한대요~~~”
나는 그런 놀림이 너무 싫어서 짝꿍과 즐겁게 이야기 나누는 것을 더 이상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내 짝은 전학을 가게 되었고 우리는 한때 다정한 친구사이였지만 서로 잘 있으라는 인사 한마디도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 아이가 전학을 간 뒤로도 한동안 그 아이와 63 빌딩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고 한 달 정도 지났을까? 텔레비전 광고부터 신문이나 잡지에도 63 빌딩이 한국의 서울을 대표하는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광고가 연일 이어졌다.
“아빠~~ 저 빌딩 몇 층 이게?”
“당연히 63층지~~”
“아냐~~63층 중에 3층은 지하고 실제는 60층이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 어.. 친구가 말해줬어..”
‘그 아이는 누나를 따라 63 빌딩 꼭대기까지 올라갔겠지? 그리고 서울을 다 내려다보면서 웃었겠지? 수족관도 구경했겠지? 그리고 반짝이는 두 눈동자를 갖게 되어 더 멋진 얼굴이 되었겠지?’
나는 이런 생각들을 오래도록 떨칠 수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