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미터는 지옥, 10킬로미터는 취미
나는 어릴 적부터 체육을 무지 싫어했다. 체육시간만 기다렸던 친구들은 믿을 수 없겠지만 나는 비가 오는 날이 너무 좋았다. 그러면 체육복으로 갈아입지 않아도 될뿐더러 여유 있는 자습시간으로 대체된 체육시간이 내게는 너무나도 달콤했기 때문이다. 또 체육을 싫어한 이유 중 하나는 달리기였다. 그런데 매 학기마다 달리기 100미터는 기본테스트로 꼭 뛰어야만 했고 운동회 때에도 달리기는 빠지지 않는 인기 종목이었다.
나는 꾸준히 키가 작았기 때문에 4명씩 뛰면 꼭 첫 번째 순서에 뛰어야만 했는데 이것도 마음의 큰 부담이었다. 특히 달리기 전에 먼저 선생님께서 그어 놓은 흰색 밀가루 선에 발을 딱 대고 서 있던 순간이 최고 긴장의 순간이었다. 주먹을 쥔 손에서는 연신 땀이 흥건해지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하였다.
100미터 전방에서 선생님이 흰 깃발을 들고 계시다가 내리면서 호루라기 휘슬을 불게 되면 나는 ‘무조건 앞만 보고 뛰어야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호루라기 소리 혹은 운동회 때는 권총으로 바뀌는 그 탕! 소리가 그렇게나 무서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의 스타트는 항상 시작부터 깜짝 놀라 2초 정도 멈칫하다가 발이 미끄러지면서 달려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뛰다 보면 점점 내 옆 친구들이 멀리 달려 나가고 마치 나만 슬로 모션에 걸린 사람처럼 천천히 뒤로 빠져드는 듯한 모습으로 친구들과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렇게 3명의 친구들이 도착을 하고 나서야 나는 겨우 도착선 안으로 발을 집어넣다 보니 꼴등은 따놓은 당상 꼴이었다.
국민학교 졸업이후 중고등학교 시절이 되어서도 나는 꾸준히 체육을 싫어했고 여전히 달리기를 가장 싫어했다.
그래서 대체 기록이 몇 초냐면 100미터 기록이 평균 23~24초다. 이 기록은 반에서 거의 마지막에 달하는 기록이었다. 나는 우선 달리는 폼이 문제였다. 내가 달릴 때 가장 신경 썼던 건 바로 넓디넓은 나의 이마였다. 나는 이마가 매우 넓어서 늘 앞머리를 내리고 다녔는데 달리는 시간이 되면 이 앞머리가 뒤로 훌러덩 넘어가면서 이마가 드러나면 마치 입고 있던 옷이 벗겨지는 듯한 부끄러움이 나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한 번은 중학교 때였던가? 내가 달리고 있을 때 구령대에 앉아있던 몇몇 남학생들이
“우하하하하 쟤 이마 봐! 만주벌판이야~~~~”
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 이후로 달릴 때마다 이마를 신경 쓰느라 기록은 더욱 안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청소년기는 한참 성장기일 때라 얇은 옷이 바짝 붙어버리면 그 조차도 달리는데 큰 지장을 주었던 것 같다.
내가 달리기를 못해서였는지 나는 각반 달리기 계주대표였던 남학생들을 멀리서 흠모하였다. 특히 압도적으로 잘 달리던 친구들은 거의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국가대표급으로 자신이 속한 반을 무조건 1위로 만들기 위해 뛰는 모습은 가히 난세영웅에 가까워 보였다.
4학년 때 우리 반 남학생 중에 강재근이라는 친구를 소환해 본다. 그 친구는 평소에는 전혀 멋진 친구가 아니었다. 하지만 반 대항 계주경기가 있는 날이면 그 아이의 얼굴 뒤에서는 후광이 번쩍였고, 모든 반 아이들이 강재근의 이름을 외치며 우리 반을 무조건 1등으로 만들어주기를 고대했었다. 나는 4학년 내내 강재근이라는 친구의 달리기 실력을 동경하며 속으로 좋아하기도 하였다.
사실 외모는 내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다. 강재근의 얼굴색은 완전히 까맣게 탄 색깔이었고 얼굴 모양은 역삼각형이었으며, 눈도 옆으로 쪽 찢어진 데다가 입술도 초콜릿색깔이었다. 그리고 키는 세 번째 앉는 정도의 작은 키로 깡마른 몸에 다리가 매우 가늘었다.
‘저렇게 얇은 다리로 어떻게 빠르게 달릴 수가 있지?’
나는 흰 반바지 체육복을 챙겨 입고 온 재근의 다리를 보며 늘 궁금해하곤 했다.
그 친구는 항상 계주의 마지막 주자였는데 경기를 앞두고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앞에서 뛰는 친구들은 바통만 놓치지 말고 뛰어!! 그럼 내가 마지막에 다 따라잡을 수 있어!”
‘와... 너무 멋지다~저렇게 달리기에 자신이 넘치는 모습이라니’
나는 자신감 넘치는 재근의 모습에 감동을 받고야 말았다.
계주 대회날 우리 반 친구들은 다른 반에 계속 뒤처지고 있었지만 우리 반은 ‘이겨라! 강재근!’을 외치며 목이 터져라 응원을 했다. 결국 역삼각형의 얼굴을 한 재근이의 손에 바통이 쥐어지자마자 부스터를 단 것처럼 재근이는 전력질주하여 우리 반에게 역전승을 안겨 주었다.
이긴 걸 확인하고 마치 국대가 된 것처럼 포효하던 재근! 지금도 어디선가 여전히 잘 달리고 있겠지?
그렇게 세월이 흘러 달리기를 싫어하던 나는 주 3회 이상은 달리기를 하고 있다. 어린 시절 울며 뛰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중년이 되어서야 달리기를 시작한 나의 달리기는 나름의 서사가 있다.
코로나가 오기 전에는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며 나름 운동을 꾸준히 해왔는데 코로나 이후 실내 운동이 불가해지면서 대체운동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걷기였다.
처음에는 집 앞 천변을 한 두 바퀴 걷는 것으로 시작하였고 이후 앱을 깔고 본격적으로 만보를 채우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부터는 10킬로미터를 걷는 것으로 변경하여 꾸준히 걷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2년 정도를 걷다 보니 다리에 근력이 조금씩 생기게 되고 구간별 달리기도 시도해 보다가 그 구간을 점차 늘려가는 방식으로 전체 구간 중 절반정도를 뛸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이렇게 시간을 갖고 천천히 달리기에 도전하여 지금은 10킬로미터를 1시간 2분 안에 뛸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어린 시절에 그렇게나 싫어하던 달리기를 취미로 삼게 된 나의 모습이 기특해서 웃음이 나기도 하면서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사실 그토록 싫어하던 달리기가 나의 ‘숨구멍’이 되어 줄 거라는 건 상상도 못 한 일이다. 어린 시절 100미터도 달리기 싫어서 울며 뛰던 아이가 지금은 10킬로미터를 웃으며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