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동 골목, 같은 모양의 집

뒷집 살던 지윤이

by 김상궁

내가 국민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우리 집은 드디어 독산동 셋방살이를 벗어나 봉천동 단독주택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당시 봉천동 골목에 있던 집들은 같은 업자가 지었는지 나란히 붙어 있는 집들이 모두 똑같아 보이기도 하였다. 우리 가족은 다른 것보다도 집안에 화장실이 있다는 점에 가장 큰 감동을 받았다. 물론 전셋집이었지만 번듯하게 우리 집만 사용하는 네모반듯한 철제 대문이 달려있었고 나름 작지만 시멘트 바닥의 마당도 있었다. 그리고 담벼락을 따라 아주 조금 흙을 퍼다 가꿔놓은 야트막한 화단도 있었다. 이사 당일 날 나와 동생들은 분주히 집 마당과 집구석구석을 구경 다니기 시작했다. 4개의 계단을 오르면 불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현관문이 있었고 그 문을 들어가면 신발장과 현관이 반듯하게 있었다. 바로 정면에는 욕실이 있었는데 나름 작은 창문이 뒷집을 향해 나 있었다. 그리고 왼쪽으로 방 두 개가 있었는데 이곳은 또 다른 집에 세를 주도록 되어 있어 그 문은 늘 잠겨 있었다.

'저 방들까지 다 우리가 쓰면 진짜 좋을텐데ᆢ'

나는 속으로 방 욕심을 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욕실 오른쪽에 붙어있는 방은 나와 막내이모가 함께 쓰게 될 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방에도 뒷집이 바로 보이는 형태로 큰 창문이 있었다.

그때였다. 창문을 열고 뒷집을 바라보는데 그 집 거실 창문에서 나를 바라보던 한 소녀와 눈을 마주친 게.. 그런데 그 아이는 부끄러웠는지 얼른 커튼을 치고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 아이가 궁금해졌지만 집 구경을 해야 했기 때문에 다시 집 탐방을 시작하였다.

내 방에는 작은 다락도 있어 오르락내리락하며 동생들과 놀이를 하기에는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우리 엄마의 로망을 실현시켜 줄 부엌이 있었다. 나름 옥색의 긴 싱크대가 있었고 아직은 곤로를 쓰고 있지만 곧 가스레인지를 살 거라며 엄마는 가스레인지가 놓일 자리를 가리키며 뿌듯해했다. 부엌이 꽤나 넓은 공간이어서 식탁을 놓아도 될 거라고 아빠와 이야기하는 걸 듣기도 하였다. 부엌에는 또 다른 작은 문이 달려 있어 그 문을 빠져나가면 다시 마당과 이어지는 구조였다. 나는 이 집의 지붕이 빨강머리 앤이 사는 집처럼 초록지붕이면 어떨까 상상하였고 더불어 2층이었다면 더없이 완벽하였을 거라 생각하며 아쉬워하였다. 이어서 안방은 빛이 잔뜩 들어오는 정남향이었고 안방의 창은 마당방향의 꽤 큰 이중창이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불투명한 재질의 세로로 길죽한 또 하나의 창이 나 있었는데 나는 우리 집에서 이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가장 맘에 들었다. 안방도 매우 넓었지만 거실도 꽤나 넓어 무엇이 들어와도 제법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하기도 하였다.

"엄마~~~우리 거실에 소파 놓을꺼지?"

"아니야~~~당분간은 그냥 넓게 쓸거야!"

'치..소파 놓으면 정말 멋진 거실이 될텐데'

나는 속으로 엄마가 진짜 인테리어에 관심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아쉬워했다.

이렇게 봉천동에서의 우리 집은 각자의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당곡국민학교로 전학을 하였고 동생들은 근처 유치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제 본 뒷집 사는 그 여자아이가 나와 같은 학년의 친구라는 걸 알게 되었다. 키가 꽤 커서 언니인 줄만 알았는데 나와 같은 학년의 친구였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그 아이는 눈도 동그랗고 머리도 약간 컬이 들어간 파마를 해 살짝 묶어서 늘어뜨리고 옷도 제법 세련되게 입고 있었다.

“안녕~너 우리 앞집에 이사 온 아이 맞지? 내 이름은 하지윤이다? 나 계속 봤는데 너랑 네 동생들~ 너 동생들은 쌍둥이더라? 나는 언니가 있어”

“.. 어~안녕~?

“우리 동네에는 놀이터가 없어서 조금 심심하긴 해. 놀이터를 가려면 길을 건너야 하거든”

“아~~ 그럼 어디서 놀아?”

“어~~ 내가 나중에 알려줄게, 그럼 오늘 너 우리 집 놀러 올래?”

갑작스러운 지윤이의 초대에 조금은 놀랐지만 또 반갑기도 하였다. 학교 적응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바로 뒷집에 친구라니 더없이 반갑고 또 고맙기까지 하였다.

지윤이의 집은 우리 집과 똑같은 모양의 주택이었다. 대문의 위치와 마당의 크기, 그리고 세를 주는 방의 모양까지 쌍둥이처럼 꼭 닮아있는 집이었다. 나도 으레 우리 집 같겠지 하고 들어섰는데.. 이런! 지윤이의 집은 내가 상상 속에서 꿈꾸는 그런 아름다운 집이었다.

마당도 어머니가 정성스레 가꾼 손길이 느껴지는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정원이었다.

“어서 들어와~~~”

나는 지윤이를 따라 지윤이의 집으로 들어갔다.

“와... 집 되게 좋다!!”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야 말았다.

거실에는 앉으면 몸이 푹~들어가 버리는 푹신한 소파가 있었는데 소파의 배치는 평소 내가 꿈꾸던 스타일이었다. 창문으로 등을 붙이는 형태가 아닌 거실창과 마당을 바라보도록 1인용 소파가 배치되어 있고 그 양옆으로 2인용 소파의자가 배열되어 있었다. 거실의 커튼도 마치 로코코 양식의 비단감으로 만들어 드리워진 핑크색의 커튼이었는데 정말 황홀한 거실의 모습이었다. 매일매일 마당의 어여쁜 꽃들을 바라보며 이 의자에 앉을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이라는 상상도 곁들이면서 나는 지윤이의 방도 구경하였다. 역시나 지윤이의 방도 내가 원하는 아름다운 공주풍의 침실과 가구들이었다. 마치 소공녀 세라가 다락방으로 쫓겨나 매일 밤 상상하던 그 공주님의 방과도 같았다. 그런데 지윤이는 매일 집에 혼자 있어서 너무 심심하다고 하였다. 언니는 성인이었으며 부모님은 매우 바쁘다고 하였다. 하지만 집이 이렇게나 좋으니 뭐가 문제인가 싶었다. 그리고 지윤이네 집에는 특별히 풍기는 향이 있었는데 그 향은 지윤이의 옷에서도 늘 은은하게 풍겼다. 지윤이는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노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 지윤이네 엄마가 늦게 오시는 날에는 우리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집에 가곤 하였다.

우리는 집이 정말 가까웠기 때문에 내 방 창문에서 지윤이를 부르면 지윤이는 언제나 어김없이 얼굴을 빼꼼 내밀고 나와 대화를 하였다. 그렇게 창문 사이로 말을 건네고 웃던 순간이 있었기에 나에게 모든 것이 낯설던 봉천동에서의 시간들이 외롭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봉천동의 그 집과 뒷집이 보이던 창문, 그리고 지윤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내 맘 속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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