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 가장 빛나던 시간
내가 4학년 2학기에 접어들 무렵의 이야기다.
“엄마~우리 집도 이제 아파트로 이사 가는 거야?”
“와~~ 우리 집 몇 층이야? 엘리베이터도 있어?”
동생들과 나는 아파트로 이사 갈 생각에 무척 들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4학년 담임선생님과 헤어지는 게 너무 슬프기도 하였다. 4학년이 되어서야 나는 드디어 친구들도 많이 생기면서 학교생활이 정말 즐거워졌었기 때문이다. 특히 담임선생님은 내가 노래를 잘한다고 무척 칭찬을 해주셨다.
“정민아~너 동요대회 나가볼 생각 있니?”
“제가요??.. 아니요.. 못할 거 같아요..”
나는 무대에 설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빨갛게 타들어가는 듯했다. 처음에는 선생님께서 그냥 하시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이후로도 풍금을 치시면 꼭 나를 불러다 놓고 노래를 샘플로 불러보게 하셨다. 처음에는 친구들 앞에 서는 것이 어찌나 부끄럽던지 머쓱해져서 제대로 부르지 못했지만 선생님은 꾸준히 나를 앞세워 음악시간을 이어나가셨다. 신기한 건 선생님의 그런 제안 덕분에 나는 친구들 앞에서 이전보다 더 당당해지면서 거의 임원에 준하는 수준으로 아이들에게 인정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험도 곧잘 보게 되면서 엄마는 이전에는 안 사주던 꽤나 멋스러운 원피스를 몇 벌 사주기도 하였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원피스가 한 벌 있다. 흰색의 어깨를 덮는 둥근 카라에 양쪽 어깨는 앤이 그렇게도 소원하던 봉긋한 부푼 소매가 달린 원피스였다. 허리는 레이스로 묶을 수 있게 되어 있었고 치마모양도 마치 튤립과도 같은 모양으로 전체적인 컬러는 연한 오렌지빛에 아주 작은 땡땡이가 잔잔하게 무늬로 어우러지는 그런 고급 원피스였다. 이건 정말 웃긴 이야기인데 내가 얼마나 이 원피스를 좋아했냐면,
‘내가 만약에 죽으면 이 원피스는 누가 갖는 거지? 동생들이 입으면 어떡하지?’
라고 생각하면서 마치 소나기의 소녀처럼
‘나 죽으면 이 원피스를 입혀서 묻어달라고 해야지' 라고 속으로 몇 번의 다짐도 했었더랬다.
당시 나는 이 원피스에 엄마가 사준 왕 리본의 머리띠를 하고 레이스 반 스타킹에 흰색 샌들을 맞춰 신은 모습으로 학교에 가면 모두가 나를 쳐다볼 거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아무래도 이쁘게 꾸미고 다니니 나 좋다는 남자아이들도 생기기 시작했고 나름 학교생활에 만족을 하며 다닌 때가 4학년 때이다.
무엇보다 담임선생님은 굉장히 낭만을 좋아하던 나이가 있으신 선생님이셨는데 재미있는 영화이야기를 전기수처럼 신명 나게 해 주셨다. 아마도 내가 영화를 좋아하게 된 건 이 선생님의 구성진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였을 것이다.
그때 들은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영화는 ‘사랑의 스잔나’, ‘아이스캐슬’이다.
‘사랑의 스잔나’는 철부지 여주인공이 죽을병에 걸리게 되면서 철이 드는 이야기인데 주인공이 뇌에 문제가 생겨 쓰러지는 장면은 선생님이 온몸으로 연기하며 우리들에게 들려주셨다. 그리고 ‘아이스캐슬’은 피겨스케이트 선수가 눈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스케이트를 포기하자 남자친구가 끝까지 코치를 해주어 결국 무대에 서게 되는 이야기다. 참고로 ‘아이스캐슬’은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기억을 하고 있다가 찾아본 영화로 메인테마 'Through the eyes of love'는 내가 지금도 즐겨 듣는 음악이다. 이처럼 사춘기 때부터 영화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깊은 정서가 형성되었던 건 분명 4학년 때 담임선생님 덕분이다.
선생님은 노래, 영화, 연극처럼 다양한 장르의 수업을 진행하시면서 우리의 교실을 늘 밝고 신나게 만들어주셔서 내게 4학년의 교실은 늘 햇살 가득한 교실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러던 어느 날, 2학기가 되어 전학을 가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느라 엄마가 교실에 찾아오셨었다.
“어머나~~ 어머님 정민이 전학 간다니까 제가 너무 슬픈데요. 정민이는 제가 정말 예뻐하는 학생이에요. 학습태도부터 글씨도 잘 쓰고요 그림도 정말 잘 그려요~게다가 노래도 너무 잘 부른답니다~”
엄마는 한 번도 학교를 방문한 적이 없었지만 자신의 딸이 이렇게 선생님의 칭찬을 받으니 몹시 우쭐해진 모양인지 엄마의 얼굴에도 전에 없는 화색이 돌았다. 선생님도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시며 자꾸 아쉬워하시니 나는 선생님 앞에서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그리고 걱정이 되었다.
‘이사 가고 싶지 않아.. 이제 겨우 적응해서 친구들도 많아졌는데 왜 또 전학이야..’
나는 이사를 결정한 엄마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아파트로 이사 간다고 들떴던 요 며칠의 기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아이가 되어 집에 와서도 계속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며칠이 지나 이삿날이 되었다. 동네 사람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용달차에 짐을 가득 실고 곧 떠날 채비를 하였다. 나는 텅 빈 마루와 우리 집구석구석을 신발을 신은 채로 살펴보고 나와 동생들이 뛰어놀던 정든 마당을 바라보며 눈물이 날 것만 같아 딴소리를 하였다.
“엄마~왜 동네 이름이 철산동이야? 철이 많아?”
나는 또 특유의 쓸데없는 소리를 하였고 이사로 분주한 엄마 아빠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우리는 이제 새로 분양을 받았다는 광명시 철산동 새 아파트로 이동하였다. 광명시 철산동은 서울도 아니고 경기도라고 하였다. 도착하고 보니 아직도 여전히 농가와 논밭이 공존하는 그런 시골 같은 곳에 아파트가 거인처럼 우뚝 서있었다. 낯설고 어쩐지 정이 가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동네였다.
철산동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