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 냄새와 함께 시작된 전학의 기억
우리 가족은 점심때가 지나서야 철산동 아파트에 도착했다. 이삿짐 트럭은 긴 사다리를 이용해 우리 집에 들어갈 짐들을 블록 쌓기 하듯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나는 그 장면이 하도 신기해서 베란다가 보이는 주차광장에서 온종일 쳐다보기도 하였다. 우리가 살게 될 아파트단지는 철산주공 아파트 12단지였는데 단지는 꽤 넓었다. 우리 동 바로 옆에는 새로 만든 그럴싸한 놀이터가 있었고 그 바로 옆은 아파트 주민들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조성한 낮은 언덕의 근린공원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단지 내에는 큰 상가가 있어서 그 상가 안에는 의류 잡화 매장부터 대형 마트까지 없는 게 없었다. 봉천동 후진 동네에 살다 온 우리 가족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곳저곳을 구경 다녔다.
아파트 1층 공동현관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내려 맨 끝집인 308호가 우리 집이었다. 12층짜리 아파트여서 조금 더 높이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3층도 복도에서 내려다보면 엄청 높아서 이 정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파트는 이제 막 지어진 탓에 곳곳에 아직 마감이 안 된 자재들이 복도에 나와 있기도 하였고 시멘트 냄새가 여기저기서 진동하였는데 나는 그 시멘트냄새가 아직도 코끝에서 느껴진다.
집은 22평형 정도로 현관에 들어서면 왼쪽에 부엌과 다용도실이, 오른쪽에는 작은 방이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죽 들어가면 넓은 거실이 있었는데 거실에 붙박이로 달려 있는 거실장이 꽤나 고풍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안방과 욕조가 있는 화장실까지 알찬 구성으로 그 네모진 평면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았던 건 우리 집에 드디어 소파가 생겼다는 거다. 내 맘에 썩 드는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연한 블루 계열의 패브릭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낭만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가 가고 나와 동생들은 철산국민학교로 전학수속을 밟아야만 했다.
그러나 전학은 쉽지 않았다. 당시에 광명시에 분양된 아파트는 넘쳐나다 보니 기존 재개발이 안된 하안동 지역아이들을 비롯하여 전학생들을 수용할 학교가 턱없이 부족하였던 것이다. 동생들은 무사히 1학년 교실로 입학이 가능하였지만 내가 문제였다. 4학년 전 교실에 자리가 없다고 교무부장선생님이 다른 학교(거리가 훨씬 먼)로 갈 것을 권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살던 12단지와 철산국민학교도 4학년이 도보로 걷기에는 그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엄마는 복도에서 사정사정하였다.
“선생님~제발 부탁드립니다. 다른 학교도 이미 전화해 봤는데요. 그곳도 자리가 없다고 하네요..”
엄마는 몹시 흥분한 목소리로 연신 선생님께 머리를 조아리며 사정사정하였다.
학년부장선생님과 교무부장 선생님이 무언가를 고심하고 이야기를 나누더니 결단을 내린 듯 우리에게 교무실로 잠시 들어오라고 하였다.
“다행히 4학년 5반에 책상이 하나 남네요. 5반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엄마의 거듭된 인사 덕에 나도 이 일이 이렇게나 감사할 일인가 생각하며 엄마와 함께 4학년 5반 교실로 올라갔다. 4-5 팻말 앞에 서자 드르륵 문이 열리고 화장을 곱게 한 얼굴에 머리는 세팅을 말아 미용실에서 막 온 것 같이 너무나 예쁘신 선생님이 나오셨다.
‘와~다행이다. 선생님은 너무 좋을 거 같아!!’
라는 나의 생각이 무색하게도,
선생님의 표정은 약간 짜증이 난 듯 무표정으로
‘왜 우리 반에 전학생이 온 거지?’라고 말하는 듯하였다.
“너 이름이 뭐니? 교탁 앞으로 가서 너 소개하고 세 번째 줄 빈자리에 가서 앉으렴”
“.. 네~”
나는 교실로 들어가기 전에 엄마에게 인사를 하려고 뒤를 돌아다봤는데 엄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게 아닌가? 나는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니까.. 전학을 왜 온 거야.. 진짜’
나는 작은 목소리로 수줍어하며 내 소개를 하였디.
“안녕~나는 서울에서 전학 왔어. 이름은 김정민이야. 우리 친하게 지내자~”
그러자 4 분단의 뒤에 앉은 더벅머리에 촌스러운 남자아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와~~ 서울에서 왔대!! 쟤 얼굴 진짜 하얗다!”
그 말에 아이들 몇몇이 내 얼굴이 하얗다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서울에서 다리하나 건너 광명시였는데 이상하게도 애들이 하나같이 촌티가 나고 예산 할머니네 집에 놀러 가면 함께 어울리던 동네 시골 아이들의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긴장감이 탁 풀리면서 어쩐지 이곳에서 적응하는 게 어렵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렇게 수업을 마무리하고 엄마와 오전에 걸어서 왔던 길을 차근차근 기억하며 집으로 향했다. 철산국민학교 주변은 운동장을 기준으로 개발이 안 된 시골마을과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로 명확하게 구분이 되었다. 학교 후문으로 나와 5층짜리 3단지 길을 한참 걷다 보면 횡단보도가 나오고 그 건너편에 고층 아파트 단지인 우리 집이 보였다. 전학 온 첫날, 조금씩 비가 쏟아지기까지 하여 나의 마음은 스산한 바람이 불 듯이 춥기까지 하였던 하굣길이었다.
‘집에 가면 엄마가 아직도 울고 있으려나?..’
나는 괜스레 엄마걱정이 들기도 하면서 머쓱해진 마음을 다잡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3층이 떠나가도록 아줌마들이 깔깔거리고 웃는 소리가 들렸는데 문이 열려있는 것 보니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였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엄마의 친구들이 거실에서 신명 나게 화투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엄마~나왔어! 지금 밖에 비와~~~~”
“어머 비오니? 나는 비 오는 줄도 몰랐네~~~ 얼른 문 닫고 들어와!”
엄마는 새로운 화투판을 위해 전투적으로 패를 돌리며 말했다.
나를 걱정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엄마는 큰 소리로 웃으며 친구들과 신나 보였다. 나는 그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비가 오니 더욱 진하게 올라오는 시멘트 향을 맡으며 나는 아파트의 3층 베란다에 기대어 서서 바깥 광장과 놀이터 구경을 오래도록 하였다. 나는 새로 이사 온 이 동네에서의 적응이 순조롭기를 어린 맘에 바라고 또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