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찾습니다

보고 싶은 친구 세희

by 김상궁

세희는 나와 같은 초ㆍ중ㆍ고를 나온 친구로 같은 학원도 다녔고 종종 문화생활을 함께 즐기던 동네친구였다.

먼저 중학교 1학년 같은 반이 되어 내가 처음 본 세희의 인상을 적어보려고 한다. 나도 이마 하면 한 이마 하는 넓은 이마였는데 세희의 이마는 나못지 않은 넓은 이마를 자랑하였다. 그리고 피부는 약간 까무잡잡하였고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 안에는 총기가 가득해보였다. 그리고 세희의 목소리는 매우 얇고 맑아서 중학교 때 방송반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중학교 입학했을 당시는 1989년 노태우정권 시절로 학생들이 교복대신 사복을 입던 때다. 나는 정말 교복이 입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교복은 근처에도 못 가봤다. 그렇게 각자 멋을 낸 옷을 입고 중학교 입학식을 마친 후 교실로 모두 들어왔는데 나는 유독 세희의 복장이 눈에 띄었다.

원단은 마치 아버지 양복의 옷감을 제단 한 듯한 것으로 색감은 보라와 자줏빛 중간에 걸쳐진 듯하고 반질반질 윤이 나는 자켓과 바지 정장이었다. 안에는 목까지 올라오는 검은 목폴라 티셔츠를 입었는데 사실 내 눈에는 세희의 옷이 여간 어색해 보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정장을 맞추어 입고 온 학생은 딱 세희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알았지만 세희 아버지께서 유명 모직 회사에 다니신 덕분에 값이 꽤 나가는 원단의 정장을 입을 수 있었다고 세희는 훗날 그 옷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였다. 그제야 나는, 내가 느꼈던 그 ‘어색함’이 사실은 낯섦과 부러움이 섞인 감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같은 분단 앞뒤로 앉게 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는데, 세희는 특히나 내게 친절했다. 먼저 상냥하게 이름을 불러준다거나 부족한 것이 있어 보이면 선뜻 빌려주겠다고 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친구가 분명해 보였다.

게다가 우리는 번호가 앞뒤로 붙어 있다 보니 청소당번을 하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같이 책상을 뒤로 밀고 바닥을 쓸면서 대걸레질도 하고 화장실청소까지 담당하면서 우리의 긴긴 수다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또 집도 같은 아파트여서 같이 집에 걸어오는 길에 나누던 수다가 너무나 행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세희야말로 정말 말을 재미나게 하던 친구였고 나는 그저 세희가 해주는 영화나 책의 이야기를 쏙 빠져서 듣기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반면에 세희는 자신의 이야기에 잘 웃어주는 나를 더없이 좋아해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세희는 영리한 친구여서 공부도 정말 잘했고 나는 그녀의 영특함이 항상 부러웠다. 역사수업을 하던 날로 기억하는데, 사회선생님이 루이 14세의 업적을 이야기할 때 루이 16세라고 말씀하며 마리앙트와네트가 루이 14세의 부인이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다른 친구들은 그 사실조차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세희는 손을 번쩍 들고 용감하게 외쳤다.

“선생님~마리 앙트와네트는 루이 16세의 부인인데요?”

선생님은 아주 조용한 성격에 차분하게 수업하던 젊은 여선생님이셨는데 얼굴이 귀까지 빨개져서는 자신이 잘못 말했다고 인정하셨다. 하지만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던 사회선생님에게 세희가 무안을 준거라며 몇몇 친구들이 수군대기 시작한 것이다. 친구였던 나도 ‘그렇게까지 수업시간에 손을 들고 선생님께 함부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래도 나와 세희는 학교와 집을 오가며 지칠 줄 모르고 수다를 떨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세희네 집에 놀러 갔는데, 세희가 사과를 깍둑 모양으로 잘라서 가지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엥 이게 뭐야? 누가 사과를 이렇게 잘라먹어?”

“아~~ 나는 한입에 쏙 넣어 먹는 사과가 어쩐지 더 맛있게 느껴지거든~”

나는 그런 세희의 생각이 너무나 기발하다고 생각하며 이후로 나도 종종 사과를 깍둑썰기로 먹기도 하였다.

그리고 세희는 특히 영화를 정말 재밌게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데 ‘시네마천국’을 먼저 보고 온 세희의 설명이 너무나 생생해서 이미 영화를 보고 온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세희는 당시 일본 어린이 영화 시리즈 중에 ‘후레쉬맨’이라는 작품을 매우 좋아라 하여 나도 덩달아 좋아하게 되었던 기억도 있다. 우리는 종종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와 ‘후레쉬맨’을 계속 돌려보며 잘 생긴 배우를 함께 흠모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어느 장면에선가 아름다운 선율의 피아노 곡이 흘러나올 때였다.

“정민아~ 지금 나오는 피아노 곡~ 너 혹시 칠 수 있어?”

세희는 나의 피아노실력을 궁금해하며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 피아노 앞에 앉아 보이며,

“두세 번만 더 들어보면 멜로디는 따볼 수 있겠어~”라고 하였다.

몇 번을 듣고 얼추 그 연주곡과 비슷하게 쳐내는 나를 보며 세희는 너무나 감동받은 표정으로 박수를 쳐주었고 환호했다. 그 시절 나는 청음으로 음을 따서 반주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고 조금씩 칠 줄 알았었는데 나의 연주가 세희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 나 또한 너무 행복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시간이 꽤나 흐른 지금도 그 멜로디를 정확히 기억하고 칠 수 있다.

이후 중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는 고 3이 되어서도 같은 반이 되었다. 중학교 때처럼 매우 친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취향을 어느 정도는 너무나 잘 아는 그런 편한 친구였던 세희를 기억한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된 세희는 수업시간에 자신의 의견을 별로 내보이지 않고 조용히 수업을 듣기만 했다. 세희는 어쩐지 중학교 때만큼 생기가 넘치는 모습은 아니었고 그저 공부만 하는 얌전한 학생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렇게 입시가 끝나고 우리는 각자 이사를 가게 되고 동네에서도 못 만나며 서로를 잊고 있다가, 내가 둘째를 낳아 키우던 때였나보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세희였다.

“어머~~ 세희야 너무 반가워~~”

“정민이 목소리 여전하네~~ 우리 한번 만나자!”

내가 둘째를 낳고 집에서 아이를 보느라 외출도 힘들 때였는데, 세희는 우리 집까지 와주어서 함께 옛날이야기를 하며 그 시절을 추억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때까지도 세희는 결혼 전이었고 누구를 만나게 될지와 결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게 세희와 두세 번 전화와 만남을 갖고는 1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는 세희의 연락처도 모르고 어디서도 세희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이 언제라도 세희에게 닿길.. 더 늦기 전에 꼭 한번 만나고픈 친구의 이름을 불러본다.




“세희야~잘 지내고 있지? 마지막 너와 봤던 뮤지컬 ‘미녀와 야수’를 본 날이 기억난다. 왜 요즘 네가 계속 생각나고 보고 싶은지 생각해 보니 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와 음악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였기에 더욱 그리운 것 같아. 네 이름을 이니셜로 할까 하다가 언젠가는 네가 꼭 이 글을 보게 되길 바라며 이름을 그대로 넣어봤어. 언젠가는 꼭 만나게 되길~보고 싶은 친구 정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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