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거북이

삭제되지 못하고 박제된 거북이이야기

by 김상궁

나는 국민학교 입학을 앞두고 엄마와 함께 집으로 배달 오던 일일 시험지를 했었다. 한 장 짜리 시험지는 앞뒤로 빼곡하게 여러 개의 문장 완성이라던가 계산 문제가 골고루 섞여있었다. 나가 놀 수 없을 정도로 추운 겨울이면 우리 세 자매는 그 좁은 집에서 이것저것 놀궁리를 하며 놀다가 금세 싫증이 나기도 하였는데 시험지가 배달되어 오면서 새로운 놀거리가 생겨 신이 났던 기억이 있다.
시험지라는 것이 처음에는 매우 쉬운 단계의 문제들이어서 5분도 채 안되어 다 풀기도 하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난이도가 올라가는 단계별 구성이었다.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 시험지를 풀다가 엄마에게 혼쭐이 났던 어느 날의 기억을 꺼내본다.

밥상을 꺼내어 시험지를 올려놓고 설거지를 마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던 나.
그날의 시험지는 O, X로 답하는 문제들이 앞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시험지를 푸는 방식은 엄마가 질문지를 읽고 나서 내가 보기를 읽은 후 답을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사건은 앞면의 왼쪽 마지막 단락 즈음에서 발생했다.
“거북이는 어디에 살까요?”
답이 너무 뻔했기 때문에 엄마는 다정한 목소리로 질문지를 읽어주었고, 나도 야무지게 보기를 주르륵 읽어 내려갔다. 앗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리 보아도 내 눈에는 시험지 보기 안에 답이 없었다.
“.... 엄마~여기 답이 없는데?”

나는 천진한 표정으로 엄마에게 되물었다.
“어휴~왜 답이 없니? 바로 보이는구먼! 너 거북이 몰라?”
“거북이는 알아~”
“아니 그런데 왜 답을 못 골라~~!”
엄마는 특유의 큰 목소리를 내며 나를 다그쳤다.
문제의 선지에는 1번이 바다였고 2번이 육지였으며 3번은 바다와 육지였고 4번은 산이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원하는 정답은 3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 생각하면 참 희한하게도 얌전하게 생긴 꼬맹이였던 나는 무슨 생각만 꽂히면 은근 고집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너 빨리 말 안 해??”
엄마는 곧 터져 나올 화산의 분화구 입구의 입모양이 되어 부글부글 끓는 용암이 내뿜어질 기세였다.
“아니 텔레비전에서도 봤고 동화책에서도 나오잖아~~~ 거북이가 어디에 사느냐고!!”
드디어 엄마는 참을 인을 깨부수며 꽥! 하고 소리를 질렀고 나는 조용히 대답을 하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 거북이는.. 거북이는 바다랑 육지에 안 살아...”
“..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봐! 왜 거북이가 바다랑 육지에 안 살아! 그럼 어디 사니? 응? 말해봐!!”
난 드디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흑흑.. 거북이는... 흑흑.. 거북이는 큰 엄마네 집 거실 벽에 붙어살아!!”
으앙~~~ 하고 나는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엄마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더 이상 화도 내지 못하고 우는 나를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이건 화를 낼 문제가 아니었던 거다. 나의 엉뚱한 세계에 초대된 이상 엄마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 당시에 발산동에 살던 현정언니의 집은 큰 2층 양옥집이었는데 당시 잘 사는 집들은 현관입구나 거실벽면에 박제된 동물을 걸어놓는 것이 한참 유행이었다. 어느 집에 가보면 산장에서나 볼 법한 사슴 대가리가 걸려 있었고 또 어느 집에 가보면 박제된 독수리 상을 천정 꼭대기에 걸어 놓기도 하였다. 80년대인데 왜 다들 그렇게 토템적인 생각으로 집안을 장식했는지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튼 나의 큰집 벽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거대한 거북이가 떡 하니 현관 벽에 붙어 있었다. 그 크기는 국민학교 입학을 앞둔 내 몸집과 거의 비슷한 크기로 마치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나 잡아왔을 법한 초대형 바다거북이의 형상이었다.
이후로 엄마는 이 이야기를 재미 삼아 친척을 만나든 동네 아주머니를 만나든 천의 이야기꾼이 되어 신나게 거북이 일화를 풀어놓으셨다. 덕분에 사람들은 나를 만나면 제일 먼저 물었다.
“정민아~거북이가 어디에 산다고? 호호호호”
‘치.. 엄마가 나를 또 우스갯거리를 만들었어..’
나는 사람들의 그런 반응이 너무 싫어서 이 이야기를 내 머릿속에서 삭제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박제된 거북이가 벽에 붙어있었던 것처럼 이 일화는 내 머릿속에도 영원히 박제되어 지천명이 된 지금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꼬맹이 정민아~~ 네 말도 맞아! 어떤 거북이는 바다로 가지 못하고 인간과 함께 박제되어 살기도 한단다^^ 고마워~ 니 더분에 추억할 이야기들이 지금도 늘 풍성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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