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대 유니폼을 입고 걷던 단 한 번의 행진
내가 전학을 갔던 철산국민학교에는 고적대가 있었다. 고적대는 그 시절 우리 학교의 큰 자랑이었으며 고학년인 4,5,6학년 아이들로 구성된 남녀 혼합의 악단이었다. 당시 고적대의 의상은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고 볼품없다고도 볼 수 있었는데 나름 고적대에 속한 아이들은 이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뿌듯해했었다.
옷의 색깔은 대부분이 흰색이지만 빨간색과 금색의 무늬가 곳곳에 새겨 넣어져 있었다. 또 아이들은 모자를 써야만 했는데 모자야말로 서커스단의 원숭이들이 쓸법한 디자인이었다. 모자의 길이는 아이들의 얼굴보다 길었으며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그 모자는 다행히 굵은 벨트로 목에 걸게 되어 있어 모자가 바닥으로 떨어질 일은 없어 보였다. 여자아이들은 금장단추가 달린 재킷에 짧은 스커트를 입고 반스타킹에 하얀색 구두를 신게 되어 있었고, 남자아이들은 같은 디자인의 재킷에 흰 바지를 입었다.
우스꽝스러운 것 같다고는 했지만 사실 제복을 입은 군악대처럼 아이들은 꽤나 멋스러워 보이기도 하였다. 당시 고적대의 리더는 키가 큰 여학생인 김호영이라는 여자아이였는데 긴 얼굴에 키도 길쭉하니 커서 마치 빼빼로 같은 아이였다. 공부는 또 어찌나 잘하였는지 전교에 김호영을 모르는 아이가 없을 정도였다. 아무튼 호영이가 이 고적대의 리더였다. 5학년이 되어서 나는 호영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 호영이는 항상 맨 뒷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거나 반 아이들이 싸우면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맏언니 같은 친구였다.
이미 4학년 때부터 고적대 맨 앞줄에서 작은북을 치던 호영이는 5학년이 되면서 고적대의 리더가 된 것이다. 내 눈에 호영이는 정말 멋진 친구였다. 그래서였는지 ‘나도 고적대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던 어느 날, 고적대 맨 앞줄에서 멜로디언을 불던 아이가 갑자기 아픈 바람에 공연을 못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당시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고적대를 담당하는 선생님이기도 하셨기에 다른 반보다 먼저 우리 반에게 고적대를 할 사람을 추천받겠다고 하셨다.
“얘들아~다음 주 운동회 공연 때만 멜로디언을 불어줄 친구 있을까요? 혹은 추천해 줄 만한 친구 있으면 말해주겠니?”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나는 안 할 건데?’라는 분위기였다.
“선생님~저는 정민이가 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헉! 누구지?'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다보았다. 호영이가 나를 추천한 것이다. 당시 호영이는 반장이고 나는 학급의 회장을 맡고 있어서 나름 친하게 지내던 사이기도 하였다.
“정민이 너 한번 해볼래?”
선생님은 맨 앞에 앉아있던 내게 조심스럽게 말씀을 건네셨다.
“.. 아 근데 저 연습을 한 번도 안 해서 잘 모르겠는데요..”
나는 또 특유의 자신감 없는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괜찮아~너 정도면 일주일연습만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에 나는 갑자기 자신감이 생기면서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고적대의 연습은 매주 수요일 수업이 다 끝나면 운동장에 모여 각자의 악기를 들고 대열을 맞추어 걸어가며 연습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보기보다 고적대는 쉽지 않았다. 멜로디언을 떨어지지 않게 왼손으로 바쳐야 하는 데다가 오른손은 쉴 새 없이 멜로디를 쳐야만 했다. 생각보다 고난도의 훈련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게다가 발은 왼발 오른발이 틀려서는 안 되고 4줄로 선 친구들이 흐트러지면 안 되기 때문에 앞줄에 멜로디언을 든 아이들이 발을 잘 맞추어 걸어야만 했다. 손가락은 잘 돌아가지도 않고 숨이 찬 데다가 발을 맞추는 것 또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잠시 쉬는 시간이 오자 호영이는 완전히 탈진 상태가 된 내게 다가왔다.
“정민아 어때? 할 만해?”
“아니~~~ 너무 힘들어 못할 거 같아..”
“아니야 할 수 있을 거야~너 멜로디언도 너무 잘 불던데?”
라고 하며 나를 격려하는 것이 아닌가?
마치 호영이의 말투는 선생님 같기도 하였으며 고적대의 코치님과도 같았다. 그리고 호영이는 지휘봉을 기가 막히게 휘두르며 행진을 진행하는 맨 앞줄의 리더였는데 한 치의 실수도 하지 않으려고 지휘봉을 야무지게 돌리는 호영이를 보며 나는 다짐했다.
‘리더까지는 안 되어도 멜로디언 불고 왼발 오른발 맞추는 정도를 어렵다고 하는 건 너무 부끄러운 일인 거 같아. 끝까지 열심히 해보자!’
우리가 연습하는 곡은 학교 교가와 간단한 행진곡이었다. 곡의 큰 흐름은 큰북과 작은북을 치는 친구들이 기본 박자를, 멜로디언이 메인 멜로디를 연주하고 심벌즈와 탬버린 등이 흥을 돋워주는 형식이었다. 우리는 일주일 후 멋지게 고적대 유니폼을 맞추어 입고 운동장의 한가운데 섰다. 모두가 다 같이 같은 옷을 입고 연주를 하는 우리들을 보니 너무 감동적이어서 나는 연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단 한 번의 고적대 연주를 경험하였지만 계속 고적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힘들기도 하거니와 매주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연습하는 일이 무척이나 고역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적대 옷을 나도 한 번은 입어봤고 맨 앞줄에서 멜로디언을 들고 당차게 연주하는 내 모습이 중앙현관 유리에 비칠 때는 정말 뿌듯하고 감격스러워 이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