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야~오늘 일은 우리만 아는 거다?
시집온 외숙모에게 태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할머니~태기가 뭐야?”
“이~~ 이제 외숙모 뱃속에 애기가 들어앉았다는 거여~”
할머니는 연신 웃으며 내게 이야기를 했다.
‘아~그럼 이 집에 나보다 더 어린 아기가 태어나는 거구나?’
그런데 이상하게도 좋지만은 않았다. 어린 나였지만 내가 이곳 간양리 장 씨 집안에서 최고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숙모는 하루가 다르게 배가 나왔고 무뚝뚝한 큰 외삼촌은 외숙모의 남산만큼 불러오는 배를 볼 때마다 흐뭇하게 웃곤 하셨다.
나도 가끔 외숙모의 배를 만져보기도 하였는데 그 안에 어떻게 아이가 숨을 쉬고 있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외숙모~외숙모 배안의 애기는 누가 만들어 준거예요?”
나의 도발적인 질문에 외숙모는 배시시 웃으며
“이~~ 삼신할매가 만들어서 보내줬지?”
“삼신할매가 누구네 집 할매여요?”
“나도 만나본 적은 없어~~ 그런데 그 할머니가 집집마다 애기들을 점지해 주시지~”
당최 알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아무튼 아가는 머지않아 태어날 낌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시골에서 살다 보니 돼지가 새끼를 친다거나 소가 송아지를 낳는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으며 자랐다. 그랬지만 우리 집에 새 식구가 이렇게 태어나는 건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며칠 후 외숙모는 무사히 출산을 하였고 삼칠일 동안 방안에 꼬박 계시다가 한 달이 좀 지나서 아기를 데리고 안방으로 건너오셨다. 시골집의 모든 식구들은 온통 이 아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아이였다. 얼굴은 아직 빨간 기운이 가득하여 이쁜지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외숙모 젖을 많이도 먹는다는 얘기를 들어서였을까? 아기의 얼굴이 큰 호빵처럼 퉁실퉁실해보였다. 온몸은 마치 애벌레처럼 꽁꽁 싸매놔서 손과 발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아직 이 아기는 이름이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온통 고심을 해서 이름을 짓고 있다고 하셨고 모두가 기다리는 눈치였다.
‘할아버지가 이쁜 이름을 지어주시겠지? 그런데 내 이름보다 더 이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할아버지는 삼촌 내외를 안방으로 불러 놓고 아이의 이름을 말씀하셨다.
“요 녀석 이름은 부자여~ 부자. 장부자!”
‘부자? 이름이 부자라고? 부자 되라는 건가?’
내 이름보다 이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자라는 이름이 영 탐탁지 않았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를 '부자야~' 라고 부른다는 건 너무도 어색하지 않은가?
나도 이런데 삼촌과 외숙모는 어떨까? 하고 눈치를 보았는데 다들 덤덤하게 그 이름을 받아 쓸 모양이었다.
바로 그 순간, 할아버지는 아가를 품에 안으시고는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아이고~~ 우리 장 씨 집안 첫 손주 장부자!!!!”
‘우리 장 씨 집안? 그럼 나는? 나는 김 씨인데.. 왜 나는 장 씨가 아니지?’
문득 부자라는 이름보다 부자가 갖게 된 장 씨 성을 나도 갖고 싶어졌다. 이 집에 그래도 부자보다 몇 년은 더 있었고 울 엄마가 첫째니 내가 일등 손녀인데 부자는 장 씨라는 이유만으로 특급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그렇게 부자는 집안 어른과 동네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아장아장 걷는 돌쟁이가 되었다. 부자가 걷기 시작하니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너무나 행복해하시며 부자의 걸음마를 기특해하셨다. 그런데 당시 살던 할머니 집은 문지방도 높고 툇마루가 있었던 데다가 난간이 따로 없어서 부자가 걸어 나오다가는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었다.
부자가 마루로 나오려고 할 때마다 나는 큰 소리로 외치며 부자를 위험에서 구출해주곤 했다.
“엇~~ 부자가 밖으로 기어 나와요~~~~”
그러면 어느샌가 누구라도 먼저 들으면 부자를 휘익 안아서 방으로 들어가곤 하셨다.
어느 날이었던가.. 내가 할머니한테 혼이 나고 완전히 토라져서 마루에 앉아 있었는데 부자가 배시시 웃으며 날 향해 걸어 나오는 게 아닌가? 그때 문득 내 마음에 못된 생각이 들어왔다.
‘잡아주나 봐라.. 치. 어른들한테도 말 안 할 거야!’
부자는 이제 겨우 아랫니 두 개만 나서 침을 흘리며 좋다고 캭캭 거리면서 안방의 문지방위에 오른발을 올려놓았다. 부자는 계속 나를 보며 연신 웃어대며 나올 기세로 오른발을 디딘 후 다시 왼발을 문지방에 올려놓는 것이 아닌가?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나는 입을 꽉 다문채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때 부자는 결국 무게 중심을 잃고 마루 쪽으로 고꾸라져 넘어지고 말았다.
“으아~~~~~~~~~앙~~”
아이의 울음소리가 네모난 중정을 가득 메우고 이 방 저 방에 메아리를 남겼다. 모두들 깜짝 놀라 허둥지둥 마루로 나오고 외삼촌이 부자를 번쩍 들어 보였는데 피가 나거나 크게 다치진 않은 것 같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내 맘속 양심은 지금 갈갈이 찢어져 부자가 넘어진 마룻바닥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나도 위기를 모면해야만 했다. 혹여라도 부자가 넘어지는 걸 보고도 모른 척했다는 걸 누가 알까 봐 나는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나만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야만 했다.
“저도 방금 들어왔어요~밖에서 놀다가요...”
“그려 그려~~ 어서 들어가자! 저녁 먹을 준비허게~~”
외숙모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나는 두근대는 가슴이 서서히 진정되었다. 방 안으로 들어오니 엉엉 울던 부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색색 대고 자고 있었다. 나는 몰래 부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래도 안 다쳐서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부자 옆에 누웠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정민아~~ 어서 일어나~ 저녁 먹어야지?”
할머니의 부름에 눈을 비비며 일어났는데 어느새 일어난 부자는 여느 때처럼 배시시 아랫니 두 개를 보이며 할머니가 먹여주는 밥을 야물딱지게 먹고 있었다. 부자도 자고 일어나서 아까 있었던 일들을 새까맣게 잊고 있는 모양이었다.
‘부자야~오늘 일은 너랑 나만 알고 있는 거다! 알았지? 아까는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