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자매

그때는 몰랐던, 셋이서 하나였던 우리

by 김상궁

내게는 두 살 터울의 쌍둥이 여동생이 있다. 둘은 일란성이고 40 후반인 지금도 여전히 꽤나 닮아 있다. 내가 시골에 내려가 살았던 이유도 바로 쌍둥이 동생들이 태어나고 나서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이 있다.
시골에 엄마와 함께 내려온 똑같이 생긴 두 아이가 나의 동생이라고 할머니께서는 귀띔으로 일러주셨다. 아주 작지만 똑같이 생긴 이 친구들은 계속해서 손을 잡고 다녔다. 그리고 나에게 와서 질문을 하는데 말을 큰 아이처럼 너무 똑 부러지게 해서 작은 키가 오히려 어색해 보일 지경이었다.
“넌 몇 살이야?”라고 동생 하나가 내게 물었고 한 명이 또 똑같이 되물었다.
“넌 몇 살이야??”
나는 이 조그만 것들이 나에게 보자마자 반말을 하는 것도 괘씸했는데 두 녀석은 늘상 그렇게 붙어 있다 보니 세상 무서울 것이 없어 보였다. 만약 내게도 이런 쌍둥이가 한명 더 있었다면 기세있게 몰아부쳤을 텐데 이미 둘은 합체된 인격체였기에 나혼자 감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세등등한 쌍둥이 동생은 마치 따로 떨어져 있는 로봇의 신체일부들이 날아와 결합하면 더 강력한 파워를 갖게 되는 모습으로까지 보였다.
그렇게 시골을 떠나온 나는 쌍둥이와의 서울살이를 하게 되었다.
동생들은 늘 합체된 상태의 모습이었기도 하였고 나와는 2:1로 붙었기 때문에 아무리 싸워대도 제대로 시원하게 요 녀석들을 기선제압해봤다거나 이겨 먹어본 적이 없었다. 즉 어릴 때부터 머리수로 이미 졌기 때문에 카리스마 있는 언니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당시 동네에서 내 존재는 몰라도 쌍둥이의 존재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만큼 동생들은 동네 유명인사였다.
이를테면 놀이터에서 놀다가 누구 하나가 쌍둥이라고 약을 올려버리면 둘은 힘을 모아 자신의 편을 여럿 만들어 그 상대를 이겨내는데는 당할 자가 없었다.
나는 시골에서나 서울에서 온 장씨집 손녀로 통했지 서울에 와서 보니 별볼일 없는 쭈구리 모드일 수밖에 없었다.
앞서 썼던 글처럼 쌍둥이 동생은 파마도 하고 엄마가 똑같은 옷과 신발을 신겨 키웠기 때문에 어딜가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명절이면 큰집에서 동생들의 쇼케이스가 벌어지는데 나는 그저 큰집 쇼파에 앉아 어른들이 동생들을 향해 박수치고 노래하라는 소리나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늘 시골 외할머니와 외갓집이 그리워질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거기에 있다면 내가 그나마 주인공이고 온 사랑을 독차지하였을텐데 서울에서 다시 살게 되면서부터 난 마치 뒷방에 던져놓은 '딱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동생들의 쇼는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막을 내렸다.
“정민이 니도 한번 노래해봐라 어디~~~”
“.. .. 싫어요...”
“왜~~~ 니도 한번 해봐~~~ 용돈 줄 테니~~”
“......”
이미 노래 대잔치는 동생들만의 독주무대였고 어린 나는 단단히 삐치고 토라져서 어른들이 아무리 불러대도 앞으로 나가지 않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하다.
그때부터였을까? 내가 동생들보다 잘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지는 못했지만 나가 노는 걸 좋아하던 동생들에 비해 아무래도 책상에 앉아있는 것 하나는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앉아라도 있으면 공부하는 것처럼 보여 칭찬도 받았고 책이라도 한 권 더 읽고 있으면 쇼맨십으로 당당한 동생들과는 또 다른 나만의 영역이 생기는 것 같아서 나는 나만의 컨셉을 잡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시험을 잘 봤다고 엄마가 핑크색 리본이 달린 에나멜 구두를 사가지고 오셨다. 구두는 양쪽으로 후크에 끈을 걸게 되어 있는 메리제인 형태의 구두였는데 너무나 이쁜 구두를 갖게 된 나는 자기 전에도 몇 번을 신었다 벗었다 하며 신이 나 있었다. 그 구두는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처음으로 ‘언니인 나’가 인정받은 증표 같았다. 그런데 쌍둥이 동생 중 막내가 그 구두를 보고 화가 잔뜩 나서 가재미 눈이 되어버린 것이다. 동생은 계속 퉁퉁 대면서 엄마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나도 사줘~~ 왜 언니만 사주는데? 나도 신고 싶다고!!”
“알았어~너도 사줄게~~ 알았어~~~”
하지만 이미 심술이 가득해진 동생은 양볼에 사탕을 문 듯이 뾰로통해져서 방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문제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다. 아침에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신발을 신으려던 찰나!
신발 안에 물이 가득 부어져 있는 게 아닌가? 누구의 짓인지는 불 보듯 뻔했다.
“으앙~~~~~~엄마~~~~~~쟤가 내 신발에~~~ 물 부어놨어!!”
나는 현관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다. 엄마도 당연히 화가 잔뜩 나서는 소리 지르며 동생에게 혼을 내고 있었다만 내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신발을 오늘 학교에 신고 갈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 분하고 화가 나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쌍둥이 동생들과 나는 서로 다른 모습과 기질덕에 아웅다웅 다투며 긴긴 성장통을 겪어야만 했다.



며칠 전 집 근처 대형마트가 곧 폐업할 거라는 전단지에는 수십 개의 세일 품목이 적혀있었다. 나도 얼른 뭐라도 살까 해서 부랴부랴 마트로 달려갔다. 곳곳의 매대에는 2+1이라는 품목이 제법 나와 있었다. 나는 누가 먼저 집어갈까봐 얼른 2+1 상품들을 카트에 담기 시작했다.
그때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어린 시절의 생각들이 2+1이라는 글자에 수렴하는 것을 느꼈다.

즉 우리는 세 자매다. 하지만 동등한 여느 세 자매와 같은 세 자매는 아닐 것이다. 우리의 관계야말로 바로 마트에서 본 2+1이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이다. 2+1.. 늘 둘은 하나였고, 나는 그 옆의 하나였다.
2개의 상품에 하나를 더 붙여 테잎으로 묶여있는 형태처럼 결국, 우리 셋은 언제나 하나였던 것이다.


다 큰 어른이 된 우리ᆢ

지금은 2+1? 하며 피식하고 웃을 수도 있는 이 이야기를 쌍둥이 동생들에게도 얼른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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