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단발 소녀의 소원

엄마~나도 파마시켜 줘!

by 김상궁

엄마는 어린 시절 내 생머리를 마치 자신의 신줏단지 다루듯 소중히 여겼다. 머리를 감고 나면 정성스럽게 수건으로 말리고 빗으로 살살 빗겨주면서 찰진 내 머리를 뿌듯해하며 잘 정돈해 주던 엄마의 손길이 기억난다. 하지만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부터 파마머리를 한 친구들을 진심으로 부러워했었다. 그리고 파마를 한 아이들은 대부분 얼굴도 예쁜 데다가 거기에 더해 옷도 공주처럼 입어서 나의 시선은 늘 파마머리를 한 친구들에게 머물러 있었다.
특히 2학년때 우리 반에서 가장 인기 많은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파마머리를 한 친구였고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원피스나 짧은 반바지에 짝 달라붙는 줄가라 티셔츠를 입은 그런 친구였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바로 그 친구가 파마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나도 파마를 한다면 인기가 많아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엄마에게 매일 파마를 시켜달라고 조르기 시작하였다.
“엄마~나도 파마시켜 줘! 응?‘
“아니야~~~ 네 머리는 찰랑거리는 생머리라서 그냥 단발로 푸르고 다니는 게 훨씬 이뻐! 그리고 파마하면 머릿결도 상할 건데 왜 파마를 굳이 하니?”
엄마는 항상 단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쌍둥이 동생들이 파마를 하고 내 앞에 나타났다. 집안에서는 미용실 파마냄새가 진동을 했다.
“너무해~ 엄마~왜 동생들만 파마를 시켜줘!!”
“얘네들은 머리가 곱슬이라 파마를 하는 게 더 나으니까 그렇지”
엄마는 나의 속상함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동생들이 파마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말들만 늘어놓았다.
나는 너무 속상했다. 파마를 시켜줄 거면 다 똑같이 시켜줄 것이지 왜 나만 안 시켜주는지 엄마의 알 수 없는 고집에 더욱 화가 날 뿐이었다.
동생들은 파마를 하고 똑같은 방울끈으로 머리를 묶기도 하고 촤르르 푸르기도 하였는데 뽀글거리는 머리가 그렇게나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하도 파마 타령을 해대니 엄마는 엄마만의 꼼수로 나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정민아 넌 파마 안 하는 게 훨씬 이뻐!! 정말이야~~ 그러니까 귀 양쪽으로 삔을 꽂고 다녀~이리 와봐 삔 꽂아줄게!”
엄마는 어디서 났는지 촌스러운 검은색 똑딱이 삔 두 개를 가져오더니 내 양옆의 머리를 귀 뒤로 넘긴 후 삔을 꽂아주었다.
“어머나~~ 귀가 보이니까 훨씬 이쁘네~?”
‘하아.. 진짜 뭐가 이쁘다는 거야 대체ᆢ’
거울 속 나는 너무나 촌스럽고 못생겨 보였다. 입이 삐죽 나온 채로 토라진 얼굴이 되어 삔을 빼려고 하자 엄마는 절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다시 정돈해 주었다. 그렇게 세상 촌스러운 머리를 하고 학교를 가는데 너무 화가 나서 양쪽 삔을 확 빼버렸다. 그렇게 엄마는 국민학교 4학년 때까지 나의 검은색 찰랑거리는 머리를 고이고이 기르게 하고 앞머리는 항상 집에서 가위로 정성스럽게 바가지 스타일로 잘라주었다. 말이 좋아 단발이지 그냥 검은색 바가지를 머리위에 올려놓은 꼴이다.

그많던 싱아~의 박완서작가도 서울로 상경해서 학교를 가기전 엄마가 뒷머리를 훅 밀어서 상고머리를 만들어 엉엉 울었다고 했다. 나도 딱 그 짝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4학년 여름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시장에서 머리띠를 하나 사가지고 오셨다.
“정민아~이거 머리에 한번 끼워봐~응?”
파마를 시켜주지 않는 대신 엄마만의 대안이 바로 큰 리본이 달린 머리띠였다. 이미 파마를 포기한 나는 머리띠를 꽂아도 별 감흥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파마대신 머리띠를 하고 나름 멋을 내기 시작했는데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엄마의 내 머리카락 사랑은 라푼젤의 긴 머리카락에 집착하는 새엄마와도 닮아 있었는데, 절대 잘라서는 안 되는 라푼젤의 머리를 고이고이 길러서 그것을 밧줄 삼아 올라오던 동화 속 그 장면이 자꾸만 떠올랐다.
‘엄마는 대체 왜 내 생머리에 집착하는 거지? 엄마도 내 머리를 기르게 해서 무얼 만들 생각일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동네 친구분들이 엄마에게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어머나~~~ 정민이 머리카락은 어쩜 저렇게 반짝거릴까? 머릿결이 너무 이쁘다~”
그때 엄마의 표정은 마치 자신이 칭찬을 듣는 듯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이후 국민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은 나를 보고

"정민이 머리는 꼭 클레오파트라~같단 말이지?어쩜 이렇게 찰랑거리는지 몰라~"

하며 종종 나를 클레오파트라~라고 부르셨다.

그때부터였을까? 나의 생머리에 조금씩 자부심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렇듯 나는 오랫동안 파마를 하지 않고 엄마의 소원대로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이때 친구들도 하나같이 내 머릿결을 부러워하곤 하였다. 그렇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던 생머리를 고수하며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렇다면 내 생애 최초의 파마는 언제일까? 아마도 스무 살이 지나고도 머리를 한참 기른 후였던 것 같다. 드디어 나도 세팅파마이라는 걸 하게 되면서 웨이브가 들어간 머리를 하게 된 것이다.
결국 나는 엄마의 소원대로 오래도록 파마를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깟 파마 한번 시켜주지 왜 그렇게 하고 싶다는 걸 안 해줬나 싶으면서도 사진 속 찰진 단발머리를 하고 활짝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이 모습을 오래오래 보 고싶은 엄마의 마음’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작은 나의 신앙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