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야, 안녕?

깜시라 불리던 밤톨 같은 아이

by 김상궁

4학년 때 내가 철산국민학교로 전학을 간 후 몇 주 있다가 또 한 명의 전학생이 우리 반에 오게 되었다.
그 친구의 이름은 ‘김경희’, 얼굴은 정말 까무잡잡한 데다가 눈은 아주 동그랗고 키는 나와 비슷해 몸집이 아담한 친구였다.
“여러분~오늘 우리 반에 또 새 친구가 전학을 왔네요! 자~친구들에게 자기소개하자!”
그러자 경희는 부끄러움은 태어나서 한 번도 안 겪어봤을 얼굴로 이렇게 인사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저는 김경희입니다. 보시다시피 얼굴이 매우 까맣죠? 그래서 별명은 늘 깜시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편하게 깜시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하고는 인사를 꾸뻑하고 씩씩하게 자기 자리로 가서 앉는 게 아닌가?
‘자신의 콤플렉스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한다고?’
나는 경희의 소개말에 한동안 정신이 멍했다.
그렇게 1교시가 끝나고 친구들은 아니나 다를까 경희를 궁금해하며 다 같이 경희 책상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어디 살다 왔어?” “너 진짜 깜시라고 불러도 되냐?"
친구들에 둘러싸인 경희는 친절하게 대답해주기도 하고 웃어주기도 하며 반 친구들과 빠른 속도로 친해졌다. 당시 나는 전학 와서 친구들과 아주 매끄러운 사이가 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경희의 붙임성 좋은 성격 덕에 경희를 포함한 무리에 끼어서 다니기도 하였다.

며칠 후 나와 경희는 번호가 앞뒤로 붙어있었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 청소당번을 함께 하게 되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집도 같은 12단지 아파트였던 데다가 등하교를 함께 하면서 나는 4학년 2학기를 정말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4학년이 끝나고 봄방학 하는 날, 선생님께서는 친구들의 반 배정을 불러주셨다.

나와 경희는 서로 두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시늉을 하며 '제발 같은 반 되라~~제발~~'을 속으로 외쳐댔다.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시며 웃으셨다.
“김정민~5학년 2반”
“김경희~5학년 2반”
“와~~~~~~~~우리 같은 반이래!!!!”
우리 둘은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라 하였다. 나는 5학년이 되어도 경희랑 계속 같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꿈만 같았다.
우리 둘은 나름 5학년이 되면서 공부도 곧잘 하였는데 서로 선의의 경쟁자라고 생각을 하였던 거 같다. 그리고 당시 우리 학교는 한 반에 반장과 회장을 동시에 선출하였는데 경희가 반장, 내가 회장이 되면서 우리 둘은 전체 학급 임원회의도 동참하며 우정을 돈독히 쌓아갔다.
나는 그때 경희의 반장 선거 출마의 변을 잊을 수가 없다. 그만큼 누구보다 막강했고 강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반장 후보 김경희입니다. 여러분~혹시 루스벨트 대통령을 아십니까? 루스벨트는 살아생전 소아마비를 앓았고 나중에는 휠체어를 타면서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했던 인물입니다. 저는 루스벨트 대통령을 매우 존경하는데요. 이렇게 자신이 어렵고 힘든 상황에 몰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루스벨트처럼 저도 무슨 일이 있어도 저희 5학년 2반을 끝까지 책임지고 돌보는 반장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와.. 정말 멋지다. 반장은 이런 아이가 되어야 해’
나는 무조건 경희를 찍어주었다. 이처럼 경희는 연설가로서도 또 반의 리더로서도 그 임무를 잘 수행해 나갈 수 있는 멋진 친구였다.
그런데 5학년 2학기가 되면서 우리 반에 크고 작은 소동이 시작되었다. 열두 살 정도 되면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대척점에 맞서 작은 일로도 패를 나누어 싸우는 등 갈등이 점점 깊어질 나이다 보니 우리 반에도 적잖은 소동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고 있었다.
반장이었던 경희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어 했고 남자 부반장과 급기야는 말싸움에 몸싸움까지 하게 되었다. 경희는 한번 화가 나면 부르르 떨며 화를 내고야 마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남자애들이라고 절대 봐주거나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너희들이 자꾸 이런 식으로 여자애들을 괴롭히면 나는 선생님께 다 말씀드릴 거야. 너희들 이름 다 적어서 선생님께 제출할 거니까 그런 줄 알아!”
그런데 그때 갑자기 돌아서는 경희를 남자아이 중 키 큰 아이가 경희의 머리를 쑥 잡아당겨 뒤로 넘어뜨렸다. 당연히 경희는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고 우리는 모두들 우왕좌왕 하며 경희 머리가 괜찮은지 살피러 모여들었다.
한 일 이십 분이 지나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경희는 담판을 짓자며 남자 부반장을 교실로 불러들였다. 이건 거의 서희의 외교담판 아니 '경희의 외교담판' 분위기였다.
“그럼 우리 약속하자! 서로 편 가르고 함부로 누구를 욕하거나 먼저 시비 걸면 그건 선생님께 당연히 알려드리는 걸로!! 하지만 장난으로 서로 웃어넘길 수 있으면 그건 나도 반장으로서 그냥 넘어갈게”
이렇게 해서 우리 반의 분위기는 예전보다 훨씬 더 부드러워졌고 게다가 가을 운동회 때 1등까지 하면서 서로가 매우 돈독해졌다. 이 모두가 반장인 경희의 리더십 덕분이었다.
그렇게 6학년이 되면서 경희는 상계동으로 전학을 갔고 나는 신림동으로 전학을 갔다.
우리는 그래도 꾸준히 펜팔을 하며 편지와 사진을 보내주면서 우정을 이어나갔다.

1995년 2월의 어느날, 입시가 끝나고 우리는 신림동카페에서 만났다.
“어머 경희야~~ ”
“와~~ 정민아 진짜 오랜만이다~~”
어릴 때부터 똑똑했던 경희는 명문여대에 진학하여 정치외교를 공부하게 되었다. 하지만 20살 이후 우리는 서로 갈길이 너무 달랐었던 걸까?
그때 이후로는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고 지금껏 서로의 소식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경희의 그 야무진 언변과 똑 부러지는 행동, 그리고 늘 포기할 줄 모르는 근성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어디에서 살든 아주 잘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경희야 안녕?
나 정민이야~기억나지? 너는 까맣고 나는 하얗고^^해서 아이들이 많이 약 올리기도 했었는데
벌써 그때의 시절을 추억하고 글을 쓰려니 4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구나. 그때의 철산동 12단지 놀이터, 철산국민학교 운동장, 네 동생 식우도 모두 다 내 기억 속에는 생생하다. 어디에 살든 어느 곳에 있든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난 너를 꼭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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